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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Nov 16. 2020

유시민이 크라잉넛을 부러워한다고?

어떻게 살 것인가


제목을 보고 ‘역시 유시민 했네’ 싶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하품이 절로 나오는 제목을 갖다 붙여도 팔린다는 자신감! 보란 듯이 그 책은 스테디셀러가 됐다. 이름 석 자만으로도 믿고 사는 그의 책. 호불호를 떠나 논란의 중심으로 살아온 인물. (나는 극호!임을 먼저 고백한다.) 그런 사람은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게 좋다고 이야기할까.


예상 밖이었다. 그는 지난 삶을 후회하는 듯했다.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설계하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산 것은 아니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p.38


지금은 작가로 더 익숙하지만 정치인 이미지가 강한 사람.  정치 지식이 짧은 나조차 그 이름을 들으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몇 있다. 면바지를 입고 국회에 나타나 센세이션을 일으켰고(지금은 그 옷이 논란이 된 게 더 센세이션 하지만), 손석희 님 전에 100분 토론 진행자였으며, 진행자에서 내려온 후 진보 논객 출연자로 주로 신해철, 진중권과 함께 자주 앉았다.


논리적이고 사이다 같은 말로 가슴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그를 응원했다. 늘 약자 편에 서왔던 그의 인생을 찾아보며 존경했다. 나는 항상 내가 더 중요한 사람이기에 그렇게 살지 못했고, 그런 길을 걷는 그가 위대해 보였다. 스스로 택한 삶이고 후회 없이 살아왔을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그는 남들의 시선, 사회적 성공이나 책임과 관계없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청춘을 보내고 롱런하는 인디밴드 '크라잉넛'이 부럽다고 고백했다.

 

2013년, 그가 정계를 은퇴하며 쓴 책이다. 7년이 지난 지금은 그가 하고 싶은 일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하며 살고 있을까.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삶과 죽음은 분리하기 어려우니 2장의 구성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이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는 그가 지향하는 잘 사는 방식이니 이 책의 정수다. 마지막 장은 살면서 빠지기 쉬운 함정, 주의해야 할 점을 정리했다.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에세이


이 책은 에세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다고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 제목처럼 다루는 스펙트럼이 넓다. 그가 걸어온 길이니 한국의 정치사와 노동자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논거를 중요시하는 유시민이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정에 뇌과학, 철학, 심리학, 세계사가 등장한다. 개인 가족사도 나온다. 유시민이 걸어온 궤적을 함께 밟아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 고민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고민 과정에 여러 분야를 횡단하며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정치 이야기가 나온다고 정치적 의도가 담긴 메시지가 나온다는 뜻은 아니다. 말 그대로 '정치 사史'이다. 게다가 전혀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그가 살면서 깨달은 통찰, 그리고 살아가는 노하우를 챙겨보았다.


유시민이 말하는 잘 사는 법


1. '자유의지'가 먼저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많은 시련을 극복하는 힘은 자유의지에서 나온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살면서 상처를 받는 일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데 그 힘은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라는 것.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대다수 사람이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살면 되겠지로는 잘 살 수 없다. 심지어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하니까 이렇게 살 거야'도 잘 사는 방법은 아니다. 개인의 인생은 당위가 아닌 스스로 내린 선택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유의지'로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는 더 있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p.56


신체는 자유롭지 못해도 자유의지를 갖고 삶을 이어가는 스티븐 호킹도, 육체적 사랑이 불가능하다면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다고 자살을 택한 스페인의 한 남자도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죽음도 그가 내린 자유의지이므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힘으로 살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을 안타까워하며 탓하는 사람들이 많다. 용기만 있다고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 의지'는 인간의 존엄한 삶을 지속시키는 필수 동력이다.


2. 삶의 불안정한 속성을 인정하라

살면서 맞닥뜨리는 부정적 사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와 고통은 순전히 내 몫이니 말이다. 냉정하지만 그는 ‘좌절과 슬픔,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한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지?'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자책하는 대신, 인생이 마냥 꽃길만 펼쳐져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원망은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다. 행운이 찾아오면 감사하되, 불운은 원망하지 않는다. 방법이 없기 때문에.


3. 신념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방법

아무리 '다수를 위한다, 정의를 구현한다'는 이상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어도 그 방법이 부당하다면 잘못된 것이다. 민중을 해방시켜 평등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었던 폴 포트, 하나님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신념을 지켰던 칼뱅이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사람을 희생시켰는지가 사례로 나온다. 그에게 뼈아픈 사건으로 새겨졌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부정부실 경선 사건'도 언급한다.


자신의 신념이 중요하면, 타인의 신념도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타인의 것을 망가뜨리면서 까지 지키는 신념은 옳지 않으며 때론 위험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의 신념이 훌륭한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는 그 신념 덕분에 나 자신과 내 삶이 더 훌륭해지는가를 주의 깊게 살핀다다.


'나, 정치 그만 할래!'

직업 정치인 옷을 벗은 이유


그는 직업 정치인을 그만둔 이유 중 하나가 대중의 시선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하는 말, 모든 행위가 정치적 이해타산으로 규정당해서 ‘기쁜 마음으로 사회적 연대에 참여할 수 없어서’ 행복을 찾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연대는 아픔과 기쁨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손을 잡는 일이다. 좋은 인생을 살려면, 일, 놀이, 사랑, 연대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연대하고 싶어 정치를 시작했지만 책 전반의 내용을 봤을 때 그 기저에는 죄책감이 도사리고 있던 듯하다. 그가 대학 시절  몇 시간 과외 알바를 하면서 버는 돈이 쉬는 날 없이 종일 일해서 버는 여공들의 돈보다  십배 많아서 죄책감을 느끼고 야학 교사를 시작했듯 말이다. 게다가 유연하지 못한 성격 탓에 인간관계에 충돌이 잦았고, 위에서 말했듯 사사건건 논란의 중심이 되며 오해를 받는 일도 괴로웠을 터.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야' 좋은 인생인데 정치인으로 살려면 눈치를 봐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힘들었을 것이다.


이젠 정치적 자기 검열 없이 정직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정치의 일상이 요구하는 비루함을 참고 견디는 삶에서 벗어나 일상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 야수의 탐욕과 싸우면서 황폐해진 내면을 추스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이 아니라 내면이 의미와 기쁨으로 충만한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p.195


그가 말하는 진보


자타공인 진보주의자로 불리는 그가 말하는 진보가 궁금했다. 그는 '연대가 이루어내는 아름답고 유쾌한 변화'를 진보라 이해한다. 진보를 가르는 다양한 기준, 이를테면, 자본주의를 타파하는 것(체계론적 접근법), 불합리한 제도와 낡은 사고방식에서 해방(철학적 접근법) 등을 예로 들었지만, 자신은 생물학적 접근법으로 진보를 가름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진보는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을 뜻한다.


가령, 우리 가족, 나와 가깝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모습을 한 사람과 유대하려고 하며 그와 다른 사람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보호하고 계승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어쩌면 나와 무관한 동성애자, 빈민,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지키려고 애쓰는 일은 진화적으로 봤을 때 어색한 일이다. 진보 사상은 유전적 생물학적인 흐름을 거부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나이가 들수록 옅어지는 게 일반적이라는 게 그의 의견이다.


보통 젊은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보수적으로 변한다. 그는 관용이 있는 진보주의자였다. 누구보다 세대 갈등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대로 살 자유가 있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해주자고 한다.


'글쟁이'가 답이었다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남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그가 택한 일은 놀랍게도, 그리고 반갑게도 '글쟁이'였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은 그가 택한 일이 글쓰기라니! 뿐만 아니라 그에게 글쓰기는 일이자 놀이, 정치 대신 택한 연대 방식이기도 다.


어쨌든 글을 써서 밥을 먹고사는 나의 직업이 참 좋은 직업이로구나, 다시 한번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몸이 약한 것을 빼고는 큰 불평불만 없이 살고 있다. 한 마디로 행복감을 느끼는 기준이 꽤 낮은 편인데 글을 쓰고, 글 쓰는 사람들을 가까이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쓰려면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스스로 느껴야 한다. 쓰는 일은 비우는 동시에 채우는 작업이다. 배움과 깨달음이 따라온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p.237


유시민의 탁월한 글 실력은 구치소에서 나왔다고 한다. 젊은 시절, 데모를 하다 잡혀서 매일 같이 구타를 당했는데 진술서 쓸 때만 맞지 않아, 맞기 싫어 맹렬히 썼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계엄사 합수부 조사실’에서 태어난 글쟁이라고 했다. 블랙코미디 같지만 그는 재능을 발견했고 인생 후반의 즐거움을 글쓰기로 채워나갈 수 있었다.




이십 대에 영문과를 가서 철학을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조언 대신 취직이 잘 될 거 같은 법대에 간 걸 후회했다는 유시민. 인생 후반전은 진짜 하고 싶었던 일, 쓸모 있는 글쟁이를 꿈꾼다.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쓸모’가 있어야 한다면서, 지금도 훌륭하고자 열심히 배운다고 다. 폐 끼치지 않고 살기를 인생의 지향점으로 삼기는 '유시민 치고' 너무 소박하지 않은가 싶기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를 응원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들어서 존엄과 품위를 지키며 살려면 돈, 건강, 그리고 삶의 의미가 받쳐줘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곱씹어본다.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노력 여부에 달린 일이니 다행 아닌가. 나는 내 직업 전문성을 발전시키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주 3회 운동을 수년째 실천했고, 요즘은 요가와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앞으로는 유시민처럼 더 많은 사람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그들과 연대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 품위를 지키며 늙고 싶어 진다. 하루라도 어릴 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 유시민이 말하는 잘 사는 법이다. 그 밖에 또 무엇이 있을까?


- 인간은 이기적이고, 배타적으로 살아온 한 편, 서로 협력하고 유대하기도 했다. 그것 역시 생존 전략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진보의 정의에 모순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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