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진지합니다.
아들아!
화장실로 휴지 좀 갖다 줄래?
어린이를 감상하고 싶어 하는 것. 어떤 어른들은 어린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울리고 싶어 한다. 어린이가 우는 모습조차 귀여워서 그럴 것이다. 그저 장난으로, 어린이의 오해를 유도해서 울게 만든다. (중략) 잠깐이니까, 귀여워서 그러는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는 대상화된다. 어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p.226
존댓말을 들은 어린이는 살짝 긴장하면서도 더욱 예의 바르게 대답하려고 노력한다. 마치 그런 대화가 몸에 밴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다. 어떤 어린이는 내 인사에 야구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리며 "네, 안녕하세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절로 얼굴이 분홍색이 되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럴 때 조심해야 한다. 절대로 귀여워하는 표정을 지으면 안 된다. 매번 대단한 자제력을 요구하는 일이지만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른이니까.
- 같은 책, p.194
어린이들은 너무 긴장한 채 서로서로를 격려하며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나온 어른에게 "무섭지 않으세요?" p. 50
"드래곤나물인가 그랬어요. (잠시 고민) 맞아요, 드래곤나물. 조금 용처럼 생겼어요." p.223
'피어 보지도 못했다'는 표현이 있었다. (중략) 내가 아는 삶은 그런 게 아니다. 삶의 순간순간은 새싹이 나고 봉오리가 맺히고 꽃이 피고 시드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그런 단계를 가졌을지 몰라도, 살아 있는 한 모든 순간은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p.163
사회가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으니 주지 않겠다고, 벌주듯이 말하면 안 된다. 이 말은 곧 사회가 자격이 있으면 상으로 아이를 줄 수도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린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는 말은, 애초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그 끝이 결국 아이를 향한다. 아이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된다.
- 같은 책, p. 218
놀이터에 어린이들이 있다 싶을 때 다가가 보면 언제나 하준이가 있다. 나를 알아보고 달려와 인사할 때 보면 땀 때문에 머리카락이 이마에 딱 달라붙어 있다. 몸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날 지경이다. 때로는 공을 차느라 급해서 멀리서 내게 손만 흔들어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땐 마주 손을 흔드는 나까지도 싱싱해지는 것 같다.
- 같은 책, p.62
나는 어린이가 글을 쓰다가 모르는 글자를 물어보면 되도록 책에서 찾아서 가르쳐 준다. '책에는 뭐가 많이 있다''선생님도 책을 보고 알게 됐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 같은 책, p.69
여럿이 어울려 놀다가 억울한 처지가 되어 보고, 박수도 받아보고, 믿기지 않는 승리나 아까운 패배를 경험하는 것은 어떤가. 같은 편이 되고 싶지 않던 아이와 한편이 되어 보고, 힘을 합치고, 의외로 손발이 맞아 가까워졌다가 다시 실망하고 다시 기대하는 것도 소득이 아닐까? 복잡한 감정들을 곱씹으면 집에 갔다가 다음 날이면 모든 것을 깨끗이 잊고 어린이는 다시 놀이터로 달려 나간다.
- 같은 책, p.61
세상에는 어린이를 울리는 어른과
어린이를 웃게 하는 어른이 있다.
어느 쪽이 좋은 어른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