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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un 21. 2021

문장에도 표정이 있다?

문체의 의미


사람 얼굴보다 화면 속 글자를 더 많이 마주 보는 요즘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접속해 멍하니 브런치 글을 읽어 내려가고, 의식의 흐름대로 클릭한 다음 메인 기사를 통해 세상 일을 톺아본다. 카카오톡 창을 열면 메시지 사이마다 춘식이와 죠르디가 열심히 재롱을 부린다.


사람을 만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사람-이 쓴 글-을 만나는 격이다. 오늘 만난 문장에는 저마다 표정이 있다. 내용으로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숨길 수 없는 표정이 드러난다. 문장은 짓는 사람의 생각, 곧 그 사람 자체이기 때문이다.


표현 :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언어나 몸짓 따위의 형상으로 드러내어 나타냄.

표정 : 마음속에 품은 감정이나 정서 따위의 심리 상태가 겉으로 드러남. 또는 그런 모습.


표현은 일부러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오해를 하고 토라진 사람에게 머쓱해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표현을 해야 알지, 내가 어떻게 알아 네 속을."


반면, 표정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난다. 아무리 조용한 도서관일지라도 딸꾹질을 참기 힘든 것처럼, 표정은 참아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이 저절로 눈치챈다.



카톡 대화창을 열어보자. 보통 편한 사이라면 문장 끝에 ㅋㅋ나 ㅎㅎ가 적당히 붙어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 ㅋㅋ보다는 ㅎㅎ를 자주 쓰는 편인데, ㅋ의 반복은 육성으로 터졌을 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식으로 써줘야 제 맛이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도 '정말로', '진짜로', '너무', '굉장히'같은 부사어는 꼭 필요한 순간을 위해 아껴두라고 하지 던가.


ㅋㅋ나 ㅎㅎ가 대화 속 딱딱한 분위기를 해소하는, 당신에게 악의가 없음을 나타내는 (어색하지만) 친근한 표정이라면, 물음표나 느낌표가 세 개 이상씩 찍힌 문장에서는 파이팅 넘치는 개구쟁이 표정이 보인다.


- 앗, 정말요????

- 오늘도 어려웠지만 해냈습니다!!!!! 다 여러분 덕분이에요!!!


조금 요란한 듯 하지만 나쁜 사람으로 보기는 힘들리라. 반면 습관성 울보도 있다.


- 아ㅠ오늘 책 사러 가려고ㅠㅠ

- 지금 가고 있어ㅠ 이따가 만나자ㅠ


물론 슬플 때만 우는 표시를 하진 않는다. 상대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거나 곤란에 했을 때도 ㅠㅠ 혹은 ㅜㅜ를 쓴다. 이 역시 상대에게 잘 보이고픈 마음이 애틋하 드러나는 표정이다. 이처럼 문장부호나 이모티콘 사용은 나도 모르게 내비치는 표정에 가깝다.


문장에서 표정이 보일 때는 또 언제인가. 한두 문장 안에서 느끼긴 어렵지만 한 단락 이상 분량 글이라면 넌지시 보인다. 가슴을 활짝 펴고 확신에 찬 표정, 고민을 거듭하다가 겨우 말을 꺼내놓았지만 이내 후회하는 표정, 돌려 말하지만 그래도 나 잘난 거 알아달라는 표정, 남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내 인생만 왜 이럴까 하는 억울한 표정, 독자가 혹시나 기분이 상할까 불안해하는 표정.


이를 가름하는 건 내용뿐만이 아니다. 단문이냐 복문이냐, 경어체나 평어체냐, 구어체냐 문어체냐, 능동형이냐 피동형이냐, 어떤 조사를 선택해서 쓰느냐, 부사어 빈도의 잦음에 따라, 심지어 폰트나 여백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나만의 문체가 있다는 건, 어쩌면 표정을 표현으로 활용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애써 숨기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표정을 역으로 드러내는 일. 나만의 표정을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단계 말이다.


오늘 당신이 쓴 문장은 활짝 웃고 있는가? 혹시 맥없이 침울한 표정은 아닌가? 표정 하지 말고 표현하라. 숨기려고 할수록 더욱 또렷이 드러나는 게 표정이다. 그럴 바에야, 속 시원하게 표현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일, 캐리브래드슈 작가님은 '직장인'과 '직업인'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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