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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Nov 25. 2021

세계사라 쓰고 전쟁사라 읽는다

역사 알못도 흥미롭게 읽는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내가 역사를 읽는 이유는 나라는 존재를 더 잘 알고 싶어서가 크다. 넓디넓은 세상에 왜 하필이면 이 땅에, 이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다. 부모가 의심할 여지없는 나의 뿌리라면, 역사는 내가 한낱 씨앗으로 맺히기도 훨씬 전-하염없이 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 만나는 먼 조상, 미지의 식물이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공부할수록 나 자신은 하찮았다. 역사에 빚을 진 행운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광활한 세계사는 들여다볼 엄두가 쉽게 생기지 않았다. 도전의식이 생긴 건 저자가 유시민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사라고 쓰고 전쟁사라 읽는다. 나는 냉전의 시대에 태어나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평화 안 개구리로 살았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로 생각하기 쉬웠다. 지금의 평화(물론 여전히 전쟁을 치르는 지역은 존재하지만 세계적인 규모로 봤을 때)가 유례없는 일이며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자꾸만 잊는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20세기에 일어난 굵직한 세계사 사건을 보여주고, 각 장마다 마지막에 두 페이지 정도 사건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곁들였다. 그가 선택한 세계사 사건은 11개다. 대부분이 전쟁과 얽혀있다.


1. 드레퓌스 사건: 20세기의 개막
2. 사라예보 사건: 광야를 태운 한 점의 불씨
3. 러시아 혁명: 아름다운 이상의 무모한 폭주
4. 대공황: 자유방임 시장경제의 파산
5. 대장정: 중화인민공화국 탄생의 신화
6. 히틀러: 모든 악의 연대
7. 팔레스타인: 눈물 마르지 않는 참극의 땅
8. 베트남: 마지막 민족해방전쟁
9. 맬컴 엑스: 검은 프로메테우스
10. 핵무기: 에너지의 역습
11. 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 20세기의 폐막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 목차


대학 시절 사회과학학회를 할 때 접했던 러시아 혁명이나 대공황, 홀로코스트는 그나마 읽혔지만 중국의 대장정은 낯설고 어려웠다. 세기를 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참극은 (부끄럽게도 무관심했었다가) 이번 기회에 그 원인과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영원한 가해자도, 영원한 피해자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침략을 당했던 국가가 약한 국가를 식민지하는 일은 흔했다. 끔찍한 학살을 당했던 유태인은 시온주의를 앞세워 팔레스타인 민중을 괴롭혔다. 자유와 평화를 외치던 미군은 국가의 체면을 이유로 베트남 전쟁을 지속했다.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왜 우리나라는 늘 당하기만 했을까?" 나의 순진한 생각이 깨졌다. 베트남 전쟁 때 우리 해병대는 퐁니 퐁넛 마을에서 어린이와 여자를 포함한 민간인 70여 명을 학살했다. (1999년에 [한겨레 21] 르포 기사로 알려져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 주석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나쁘고 폭력적인 민족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모여사는 곳에, 어떤 두려움이나 혐오가 쌓였을 때 아주 작은 사건이 발생하거나 차별을 부추기는 지도자가 등장했을 때, 그것이 트리거가 되어 전쟁이 발발됐다. 너와 나의 다름(사상, 인종, 종교)은 차별을 낳았고 그것을 수호하려는 자들의 싸움이었다. 그 싸움은 무수한 희생을 낳았고, 그 끝에 얻어진 게 내가 누리고 있는 평화였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정의의 수호자와 악당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거꾸로'라 이름 붙인 이유가 아닐까. 책 초판이 출간되었던 1988년에는 거꾸로를 입에 올리기 어려웠던 시대이다. 중국 소련 베트남 사회주의 혁명을 함부로 입에 올렸다가는 '빨갱이'로 오해받던 그 시절. 그럼에도 편향되고 왜곡된 역사의식을 바로잡고자 했던 한 청년은 중년이 되어 보다 안전한 분위기에서 다양한 자료를 검토한 후 이 책을 손보았다.


세계사는 방대한 만큼 어디서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입문서로 추천한다. 기울어진 세상을 거꾸로 보면, 그나마 균형이 맞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당연히 한 번 읽고 사건을 모두 기억하기 힘들다. 여러 차례 읽어볼 생각이다. 불평불만이 가득 쌓일 때,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싶을 때 이 책을 다시 꺼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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