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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Nov 26. 2021

에세이, 어디까지 공개해야 할까

두렵다면 아직 때가 아닐지도


글쓰기 코치로 활동하다 보니 가끔 글쓰기와 관련된 상담이 들어옵니다. 에세이를 쓰려고 브런치까지 만들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라 어디까지 오픈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종종 듣습니다. 특히 누군가와 얽혀있는 이야기일 때 그러한데요. 상대방에게 일일이 "당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써도 되겠습니까?"하고 허락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예전에는 이렇게 조언했어요.


"생각보다 사람들은 당신한테 관심이 없어요."


여전히 유효한 말이에요. 글을 쓸 때는 마치 온 세상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가락만 바라볼 것 같죠. 내가 쓴 이야기를 당사자가 보고 눈치챌 것 같고, 혹시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세요. 살면서 남의 글을 읽다가 '어? 이 글은 나를 저격한 거잖아?'하고 느낀 적이 있나요. 에세이는 굉장히 개인적인 글 같지만 재미있게도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때가 더 많아요. 사건은 개인적 일지 몰라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에서 누구나 겪는 상황일 때가 많고, 보편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는 뜻이지요.


예를 들어, 내 상사만 남의 공을 가로채는 나쁜 상사일까요? 나의 시어머니만 아들을 지독하게 사랑할까요? 아닐 거예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에세이를 보지 않을 거예요. '아, 나 같은 사람 여기 또 있구나.' 공감하려고 읽는 거잖아요. 억울함, 분노, 슬픔, 자기 연민, 그럼에도 희망! 모두 내 이야기이기도, 당신의 이야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어요. '그 사람(혹은 그 사람을 아는 사람)이 내 글을 보면 어쩌지?' 하는 불안은 왜 생기는 걸까요. 그 사람의 좋은 면을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좀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험담'일 경우가 많죠. '그 사람은 이러저러하여 비합리적이고 또라이 같다, 나는 그 때문에 상처를 너무 많이 받은 피해자다, 나 좀 위로해주세요.' 하는 마음은 아닐까요.


이런 마음이라면 아직 그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쓸 때는 잠깐 속이 후련할지 몰라도 곧 후회하게 될 거예요. 쓰는 사람도 찝찝하지만, 읽는 사람에게도 하소연 이상의 감응을 주지 못합니다. 독자는 저격당한 사람보다 그 글을 쓴 사람을 더 딱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공개해야 할까요. 어떤 억울하거나 상처 받았던 일을 떠올렸을 때, 상대방의 입장까지 헤아려질 때, 그때 쓰는 게 좋습니다. 소재가 무르익었다고 표현할까요. 상대방이 100% 잘못했더라도, 10% 정도는 상대의 입장이 헤아려질 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으면 거의 무르익었다고 봅니다.


소재가 무르익으면 '주제'가 피어오릅니다. 그저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었다는 에피소드 나열이 아닌, '메시지'가 생기는 것이죠. 그 사람(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았다거나,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거나 독자들에게 공유할만한 거리가 생겼을 거예요. 그것이 하고자 하는 말이고 주제입니다.


저는 글을 꾸준히 쓰면 지금보다 더 잘 살고, 좋은 사람이 된다고 말합니다. 성찰의 과정이 반복되기 때문인데요. '정말 짜증 나는 하루였어'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삶에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것. 내가 쓴 글이 어제보다 더 잘 살아낼 거라고 어깨를 토닥입니다. 오늘도 당신이 키보드 앞에 앉이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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