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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Apr 05. 2023

글쓰기와 달리기의 공통점

나는 둘다 좋더라

사랑, 행복, 슬픔은 모두 ‘젖어드는’ 감정들이다. 때로는 폭우처럼 우리를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가랑비처럼 어느새 정신 차려보면 푹 젖어있게 한다. 피한다고 피할 수가 없고, 잡는다고 잡혀지지도 않는 증발성을 띄기도 한다.

-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p.60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완연한 봄이라고 느끼기 전까지 패딩점퍼를 장롱에 집어넣지 않는다. 경칩이 지났건만 나의 외투는 여전히 패딩이었다. 동네 한 바퀴만 가볍게 걸을 요량으로 밑창이 얇은 단화를 신었다. 아파트 밖으로 나왔는데 웬걸, 내가 몰랐을 뿐 며칠 사이 봄이 성큼 와있었다. 물비린내를 내며 재빠르게 흐르는 천변에는 성미 급한 매화 꽃잎이 팝콘처럼 터져있었다.     


갑자기 어떤 에너지가 땅을 딛은 발바닥부터 단전을 거슬러 정수리까지 꿈틀거리며 관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달려야겠다.’ 나는 아파트 후문으로 향하던 발길을 거두어 아파트 공원 옆 트랙으로 향했다. 봄가을, 날씨가 맑을 때면 나는 운동 삼아 그 트랙을 뺑뺑 돌며 달리곤 했다. 보통은 15분 알림을 맞추고 달렸는데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30분을 돌 때도 있었다. 그러고 나면 상쾌한 기분이 온종일 갔다. 마침내 찌뿌둥한 겨울이 끝나고 달리기의 계절이 온 것이다.     


트랙 앞에 서니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겨우내 트랙 위에 돌덩이처럼 굳어 있던 눈 얼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낙엽 한 장 없이 깔끔한 것을 보니 누가 방금 비질을 한 모양이다. 나는 정오의 볕을 만끽하며 우선 한 바퀴 천천히 걸었다. 시작점에 돌아오자 다리에 힘을 주어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세 바퀴 정도 돌자 양 겨드랑이가 척척해지면서 불쾌해졌다. ‘나중에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나와서 달릴까.’ 패딩을 입고 달리다니, 아무리 충동적인 사람이지만 미욱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땀이 난다는 건 이제 막 워밍업이 끝나고 진짜 운동이 시작된다는 뜻인데 멈추기 아까웠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다시 마음 잡기가 쉽지 않은 걸 안다. 계속 뛰기로 결정했다. 아니, 달리는 발을 멈춰 세우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겨드랑이에서 포문을 연 땀줄기는 가슴팍과 목덜미로 빠르게 영역을 넓혀갔다. 호흡이 가빠지고 몸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고목처럼 굳어 있던 몸이 유연하게 풀리면서 몸이 점점 가벼워졌다. ‘역시 뛰기 잘했다니까.’      


사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 체력장에서 100m 달리기를 하면 23초 기록으로 항상 여유 있게 꼴찌였다. 글벗들 중에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들과 친해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흥미가 생겼다. 달리기 모임에 속하고 주 3회씩 트랙을 나가면서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달리기를 싫어하지 않게 됐다. 몇 달이 흐르자 날씨가 좋으면 기꺼이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몸이 풀린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또 고비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러닝화를 신었어야 했는데.’ 당연히 뛸 계획이 없었으므로 매일 신는 단화를 신었다. 아무래도 쿠션이 없으니 딱딱한 지면에 닿는 충격이 발에 온전히 전해지는 것이다. 스마트폰 앱을 확인하니 달리기 시작한 지 12분이 지났다고 떴다. 목표했던 3분을 더 채울 것이냐 말 것이냐.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 3분은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달리기 3분은 결코 짧지 않은 걸 알기 때문에 고민됐다. ‘어떡하지, 그만둘까. 조금만 더 뛸까.’ 고민하는 사이 15분 완주를 축하한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나 녀석, 해냈구나.’      


고작 15분가량 짧은 달리기라도 완주의 기쁨은 작지 않다. 그만두고 싶은 수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목표한 바를 이뤘기 때문이다. 김이나 작가는 사랑, 행복, 슬픔의 공통 속성을 '젖어든다'는 것을 꼽았다. 나는 달리기가 글쓰기와 비슷한 점을 찾아냈다.      


<글쓰기와 달리기의 공통점>

1. 꾸준히 훈련해야 는다.

2. 어느 날 갑자기 견딜 수 없이 하고 싶을 때가 있다.

3. 즐기는 사람 곁에 있으면 나도 따라하게 된다.

4. 하기 싫은 순간, 고비를 넘기면 또 할만해진다.

5.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마음으로 진행한다.

6. 결국에는 완주의 기쁨을 누린다.

7. 완주의 기쁨은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


글쓰기와 달리기의 공통점들을 하나둘 찾아가면서 나는 글쓰기를 하면 달리기 실력도 늘고, 달리기를 하면 글쓰기 실력도 는다는 평행이론설을 완성했다. 아는 만큼 공통점을 추출할 수 있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은 어쩌면,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즐기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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