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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정 변호사 Apr 04. 2023

우리의 긴긴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노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내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 노든은 나를 알아보고 내게 다가와 줄 것이다. 코뿔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른 펭귄들은 무서워서 도망가겠지만, 나는 노든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코와 부리를 맞대고 다시 인사할 것이다.

- 루리, <긴긴밤>



내가 이 책을 펼친 건 앞표지의 그림 때문이다. 코뿔소의 코와 펭귄 부리가 서로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 그저 예뻐 보였다. 코뿔소와 펭귄은 무슨 조합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머리를 식히고자 가볍게 펼쳐 든 책은 뭉클하고 깊은 울림을 전해주었다. 책 중간중간 나오는 삽화는 글과 어우러져 진한 감동과 여운을 준다. 슬프지만 따뜻하다.      


이 책은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어린이 책이지만 나는 어른을 위한 동화로도 손색이 없다고 여겼다. 책 말미에 있는 심사평을 들여다보면, “이 작품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의 고통과 두려움, 환희를 단순하지만 깊이 있게 보여준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향해 있던 모든 이의 긴긴밤을, 그 눈물과 고통과 연대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제 어린 펭귄은 자기 몫의 두려움을 끌어안고 검푸른 바다로 뛰어들 것이다.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낼 것이며,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라고 한다. 심사평은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뭔가 거창한 이야기를 하는 건가 싶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우리’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나는 지극히 개인주의자이면서도 ‘우리’라는 말에 이끌린다. 이 단순한 이끌림이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는 브런치 매거진 <친애하는 문장들>에 매주 한 편의 글을 쓰고 있다. 우리가 발견한 책 속의 문장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단상을 적는다. 다섯 명의 작가가 일주일에 한 번 돌아가면서 각자의 개성이 담뿍 담긴 글을 배달하고 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편 정도야, 단상이니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마감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는 나에게 강제성을 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고단한 일주일을 보내고 내 차례가 다가오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혼자는 때론 외롭고 힘겹지만, 함께하면 든든하다. 주어진 일이 크든 작든 연대의 힘은 강하다는 걸 매번 느낀다. 글쓰기를 하면서 좋은 글벗들을 만날 수 있는 건 큰 행운이다. 서로의 글에 공감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나아간다. 이제 이 매거진에 글을 쓰는 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글을 쓰기 위해 가끔은 긴긴밤을 보내기도 했다. 하루의 일과를 끝마치고 모니터 앞에 앉아 골몰히 생각해 봐도 도무지 할 말이 없을 때도 있다. 그래도 무엇이라도 끄적이기 위해 애쓴다. 왜 그래야 할까를 생각해 보면 혼자가 아닌 ‘우리’에 속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친애하는 작가님들과 뭉쳤습니다. 책 속의 문장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요?

5인 5색 개성 넘치는 브런치작가가 연재하는 공동매거진 <친애하는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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