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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un 30. 2023

고시원과 달걀프라이

글쓰기의 책무

유성고시원 화재기


(전략)

공동 주방에서 부치는 달걀 냄새가 온 방실을 점유하고 

있었죠 스탠드가 꺼지고 소방벨이 울린 것은 그때였습니

다 누전이나 방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단지 그

동안 울먹울먹했던 것들이 캄캄하게 울어버린 것이라 생

각됩니다만,

(후략)


 -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고시원이란 공간은 큰 꿈을 가진 배짱 좋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들어가 사는 곳이라 생각했다. 스물넷, 방송작가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렇게 세상에 무지했다. 


글 쓰며 사는 직업을 찾고 찾다가 발을 붙인 곳이 휴먼 다큐 ‘막내 작가’ 자리였다. 막상 출근하니 ‘작가’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글 쓰는 시간보다 말하는 시간이 업무 대부분을 차지했다. 나의 오른쪽 귀와 어깨 사이에는 늘 돼지 꼬리 같은 선이 달린 유선 전화기가 두툼한 패티처럼 끼워져 있었다. 귀로는 출연자 후보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손가락을 바쁘게 두드려 모니터로 내용을 옮겨 적었다.


당시 나는 극 빈곤층이나 기초생활수급자가 출연하는 휴먼 다큐의 취재를 맡았다. 유튜브도 없던 시절, 연예인도 아닌데 TV 화면에 얼굴을 비출 결심을 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안 그래도 일반인 섭외는 힘든데, 감동적인 사연까지 있는 취약계층을 카메라 앞에 서게 하려면 극진한 정성이 필요했다. 출연료나 방송 후 후원금을 들먹이며 겨우겨우 설득에 성공하는 치사한 일도 마다치 않았다. 


취약계층을 찾으려면 어디를 수소문해야 할까. 선임이 인수인계한 취재처 목록에는 뜻밖의 장소들이 적혀 있었다. 동사무소(지금의 주민센터)나 장애인복지재단, 미혼모센터, 가출청소년 쉼터, 인력사무소, 쪽방촌은 그나마 예상 가능한 곳이었다. 동춘서커스단, 대학로 극단, 찜질방, 특히 고시원! 도대체 그곳은 어떤 알고리즘을 탔단 말인가. 고시원에서 사는 사람은 4년제 대학을 나와(로스쿨 없던 시절) 권력의 끝이라 칭하는 사법부를 지망하는 야심 가득한 청년들 아닌가,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취재를 거듭하면서 고시원에는 고시 준비가 목적이 아닌 사람이 꽤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월세가 밀려 쫓겨나 어린 아들과 함께 들어온 가장(아내는 도망갔단다), 극단에서 일하다가 빚쟁이를 피해 숨어 있는 이십 대 개그맨 지망생(주말에는 돌잔치 사회를 본다), 일자리가 안 구해져 일용직으로 먹고사는 전과 10범, 이들이 개미굴 같은 고시원 복도 좌우로 방을 나눠 쓰고 있었다. 


그들은 화장실 문 옆 2구 가스레인지 하나가 덜렁 놓인 공간을 부엌이라 불렸다. 모두가 공유하는 부엌에서 해 먹는 식사는 보온밥통 속 오래된 밥, 계란 프라이, 중국산 김치가 전부였다. ‘공동 주방에서 부치는 달걀 냄새가 온 방실을 점유’한다는 박준 시인의 시구는 근거 없이 나온 것이 아니었다. 시를 쓰려고 두 달간 고시원에서 살았다는 박준 시인의 취재 정신이 느껴졌다.


요즘은 뉴스에서 거의 보지 못했지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고시원 화재 사고가 보도되던 시절이었다. 가난한 청년들, 갈 곳 없이 궁지에 몰린 끝방 사람들, 몸 하나 간신히 누일 창문도 없는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이들. 터졌다 하면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졌는데 이유는 자명했다. 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글에는 영향력이 있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자문에 정치적 이유라고 답했다. 내 생각과 지향을 알리고 함께 공감하고 더 나아가 행동까지 변화를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다. 글은 목소리다. 잘못된 시스템에 일일이 항거하거나 직접 나가서 싸우지는 못해도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글로 기록한 참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위로하며, 스러지는 기억에 다시 불을 지피기도 한다.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그래, 그곳에도 사람이 있었어.’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며 글이라는 도구를 양팔 삼아 어깨동무한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책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혐오와 차별, 고정관념을 양산하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이 소극적인 책무라면, 나와 관계없는 타인의 아픔을 함께 끌어안으려는 글쓰기는 적극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박준 시인은 ‘그건 단지 그동안 울먹울먹했던 것들이 캄캄하게 울어버린 것이라 생각됩니다만’이라며 말을 아꼈지만, 알 것만 같다. 왜 울먹울먹했고 결국에는 울음보가 터져버렸는지를. 타인의 아픔을 지나치지 않는 사람은 아름답다. 나도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그의 산문집 제목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처럼 달라지는 게 없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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