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에고이스트지. 에고이스트가 아니면 글을 못 써. 글 쓰는 자는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쓰는 거야. 자기 생각에 열을 내는 거지. 어쩌면 독재자하고 비슷해. 지독하게 에고를 견지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만인의 글이 되기 때문이라네. 남을 위한 에고이스트로 사는 거지.
- 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왜 글을 쓰는가. 글이라고 불릴만한 것을 쓰고부터 가끔 받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무엇이 나를 쓰게 만드는지. 없는 시간을 쪼개서, 스스로 마감일을 만들어가면서까지 글을 쓰는 이유가 뭘까. 이렇게 글을 쓴다고 해서 당장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시작은 정보성 글이었다. 글을 쓰는 목적은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단순히 무언가를 알리고 소개하는 데 그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쓰는 글 속에 내가 드러나기를 바랐다. 나만의 언어, 나만의 색깔이 있는 글이면 좋겠다 싶었다.
신기하게도 글을 쓰면 쓸수록 내 생각, 내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글을 잘 써서 돋보이고 싶은 욕심은 없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할 말이 있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정리된 생각들은 쌓여 내 지향점, 가치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브런치 매거진 <친애하는 문장들>에 글을 쓰기 위해 문장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매주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내 얘기, 내 생각을 쓰고 싶어 문장을 고르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문장은 단지 거들뿐이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먼저 고르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주제의 이야기에 걸맞은 문장을 반대로 찾아보는 식이다. 예전 책에 밑줄 그은 문장 중에 없는지 찾아보고 독서 노트를 뒤져보면서 말이다.
이어령 선생님은 지독하게 에고를 견지해야 만인의 글이 된다고 한다. <친애하는 문장들>의 작가들이 뽑은 문장들과 그들이 쓴 글 역시 자기 얘기와 생각을 담고 있다. 각자의 개성이 묻어난 글이어서 매력적이다.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에 감응한다. 그러니 글을 쓸 때만큼은 남을 위한 에고이스트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