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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Aug 10. 2023

책 쓰기, 미룰수록 손해인 이유

책 쓰기도 습관이 될까

책을 쓴다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나를, 혹은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책을 쓴다. 책 쓰는 고통을 온전히 홀로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의 결과로 책이라는 자식을 낳게 된다. 자식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를 걱정해서 자식을 안 낳진 않는다. 모든 자식이 유명인이 되고 효자효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자식은 그 자체로 기쁨이고 축복이다.

- 강원국, 『강원국의 글쓰기』, p. 266



버킷리스트에 ‘내 이름으로 책 내기’를 담아둔 사람이 많다. 광활하고 까마득한 우주에 미세 먼지 한 톨도 되지 못할 나라는 존재.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건 존재의 흔적을 남기려는 애씀이다. 거창한 의미를 담지 않더라도 유일무이한 나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 멋진 일이 분명하다.


강원국 작가의 말대로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걸까. 2020년, 운 좋게 첫 책을 출간하고 벌써 다섯 번째 책을 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책에도 효자효녀가 있고 효를 다하지 못하여(?) 컴컴한 서가에 쪼그리고 앉아 울상을 짓는 녀석도 있다. 


나는 자식이 없다. 한때는 조심스레 “아이는 언제 가질 계획이세요?”라고 묻는 이들에게 더 조심스럽게, 남의 일인 듯 “그러게 말입니다”라고 답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쾌하게 답한다. “애 대신 책을 낳았어요. 책 넷맘입니다.”


‘실패를 걱정해서 자식을 안 낳지 않는다’, ‘자식은 그 자체로 기쁨이고 축복이다’라는 말을 무자식인 나는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이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과 진짜로 생기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오랜 기간 싸웠다. 가장 큰 갈등의 원인은 내가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내가 낳은 자식이 올바르게 크지 못하고 속을 썩이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면 어쩌지? 그래서 아이를 미워하게 되고, 아이 낳은 것을 후회하면 어쩌지? 먼 미래까지 앞서서 걱정했다. 


육아와 살림에 치어 사는 친구가 전화로 한 시간 동안 신세 한탄을 하며 육아 하소연을 털어놓는다. 전화를 끊기 직전 “그래도 아이가 주는 행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 너도 꼭 그 기쁨을 알게 됐으면 해” 이렇게 말했을 때는 ‘나만 당할 수 없지, 너도 당해보렴’으로 들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자식 대신 책을 낳았고 강원국 작가가 쓴 오늘의 필사 문장을 이해하게 됐다. 
 
책이 실패할까 봐, 팔리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것만큼 쓸모없는 걱정이 없다. 내가 열심히 쓴다고 판매가 잘 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본다고 무조건 좋은 책이라고 하기에도 어렵다. 그렇다고 ‘다 잘 될 거야’ 대책 없는 긍정도 아니다. 


젊음을 바쳐 공들여 키운 자식도 내 맘대로 크지 않듯 책도 마찬가지다. 내가 쓴 책을 누가 읽어줄까, 무슨 효용이 있을까를 고민하기보다 내가 가진 ‘사랑’을 거침없이 꺼내 놓는 것이 낫다.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책을 쓴다는 말은 참으로 설렌다. 특별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누구나 가슴 깊이 사랑하는 것이 있다. 단지 묻어두었을 뿐이다. 그것을 드러내고 고백할 용기가 부족했을 뿐이다. 혹은 잊고 살았다. 


책 쓰기는 용기가 필요하다. 외로움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일이다. 첫 책을 쓸 때의 막막함을 기억한다.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무인도에 갇힌 기분이었다. ‘이렇게 쓰는 게 맞나?’ 누군가에게 물어보고도 싶었다. 물음표를 담은 유리병을 수백 개쯤 해수면 위로 띄워 보냈다. 누군가 나를 구조해 주기를 바랐다. 불안에 잠식당한 나는 익사 직전에 겨우 탈고를 마쳤다. 


편집자의 답장을 기다리며 초조했다. 혹시 이런 글은 책이 될 수 없다고 하면 어쩌지. 나는 무인도에 갇힌 채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일까.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책이 나왔을 때는 만세를 불렀다. 드디어 무인도를 탈출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첫 책을 완성하고 또다시 자발적으로 무인도행을 택했다. 다시 아무도 없었다. 집필에 몰두하는 동안 사람도 잘 안 만났다. 외로워도 습관처럼 책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좋다는 걸 알아서다. 누군가 ‘자기 계발의 끝판왕은 책 쓰기다’라는 말을 했다는데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책은 글과 달랐다. 에피소드 하나하나마다 의미를 찾아야 하고, 그것이 책 전체를 관통해야 한다.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나만의 감상이 아닌 서로 향유할 만한 메시지가 필요했다. 나의 행적을 돌아보고 무의미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그것이 책 쓰기의 본질이었다. 책을 쓰면서 성장한다. 책을 쓸 때마다 나의 부족함을 마주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애쓴다. 애쓴 만큼 나는 자란다. 책이 나오면, 내가 내뱉었던 말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한다. 책을 쓰면 더 좋은 삶을 살게 된다. 


책에는 물성이 있다. 종이 책은 만질 수 있다. 나의 창조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건 뿌듯한 일이다. 자식이 배 밖으로 나와 울고 기고 걷고 뛰며 자라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것과 같다. 매일 ‘더 멋진 나’를 만드는 과정, 책 쓰기는 즐거운 작업이다. 사랑에 빠지는 일이다. ‘내가 무슨 책을’, ‘내가 낸 책이 팔리기나 할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하고 지체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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