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언제나 설레지만 매달 마지막 주는 더하다. 다음 날 오전 독서 모임에 가기 때문이다. 보통 금요일에는 한 주간 간헐적 단식을 하느라 굶은 남편과 치킨이나 떡볶이 등을 시켜 먹으며 치팅을 하지만 독서 모임 전날은 과식도 자제한다. 야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다음 날 늦잠을 자기 쉽고 머리도 맑지 않으니. 오전 11시 모임이그렇게 이른 시간은 아니지만 모임 없는 토요일이었다면 달콤하게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있을 시간이다.
코로나의 기세가 주춤하자마자 나는 월 1회 오프라인 독서 모임을 기획해 모임원을 모집했다. 그동안은 온라인에서 화상으로 얼굴을 보며 진행했지만 직접 마주 앉아서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공감의 제스처는 입에서 나오는 말뿐이 아니다. 서로 진지한 눈빛이 오간다.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동조, 상대를 향해 돌린 어깨의 방향, 집중하며 필기하는 모습, 갑작스레 터지는 웃음소리가 만들어내는 스터디룸의 공기는 가상공간과 대체될 수 없다.
모임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독서 모임을 기획한 가장 큰 이유는 사심이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함께 읽고 대화하며 생각을 나누는 일이 즐거워서다. ‘글쓰기 코치’라는 책임감도 갖고 있다. 그래서 서평을 쓴 사람만 모임에 참여하게 하고 발제문을 직접 만드는 훈련도 하고 있다.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나처럼 얻어가는 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독서 모임은 나의 시간 관리 비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무리 십오 년 넘게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해온 사람도 강제성이 없으면 매일 글을 쓰고 책을 읽기 힘들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행위는 본능에 반하는 행위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삶에 던져졌을 뿐, 글을 쓰고 책을 읽으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호모사피엔스는 각자 인생에 의미를 만들려고 하는 신기한 동물이다. 독서 모임 하는 날을 달력에 박아두면 나는 저절로 책을 읽는다. 모임 전주에 서평을 써서 올려야 하고 모임원들과 나눌 발제문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책을 손에 잡는 날은 확실히 줄어든다. 나는 작가인데, 손에서 책을 놓으면 안 되는 사람인데,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설치해 둔 일종의 덫이다.
독서 모임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은 다양하다. 내 또래도 있지만 열 살 위 언니들도 있다. 그들에게 내가 겪지 않은 ‘엄마’와 ‘학부모’의 입장을 듣는다. 세 가지 일을 하는 사업가에게 인사이트를 얻는다. 이십 대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요즘 세대의 생각을 읽는다.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남성이라는 세계도 들여다본다. 회사 생활도 하지 않는 내가 이런 다양한 인물을 어디서 만날까. 자신의 아픔과 상실, 감격의 순간을 얼굴 몇 번 보지도 않은 서로를 믿고 털어놓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책이라는 매개로 각자의 삶이 이어진다. 서로 배우고 그것은 인생의 자산이 된다.
나는 독서 모임만 하지 않는다. 모임 중독자다. 미라클모닝 모임, 필사 모임, 독서 모임, 운동 모임,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거나 지금도 참여하고 있다. 글쓰기 모임을 예로 들어볼까. 출간계약을 하고 원고가 잘 써지지 않을 때 나는 브런치에서 ‘공동 매거진’을 만들고 함께 글을 쓸 모임원을 모집했다. 월화수목금,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이 요일 하나씩 맡아 글 한 편씩 올리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든 글을 쓰게 된다. 그 글은 내 책의 초안이 된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독자들의 반응도 미리 알 수 있다. 어떤 글에 흥미를 보이고 어떤 글에 관심이 덜 한지 댓글이나 좋아요 반응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보면서 글의 방향을 수정하기도 한다.
운동모임을 예로 들어볼까. 3년 전쯤 ‘아바매런(아무리 바빠도 매일 달리기 하는 모임)’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글 모임을 함께하던 멤버에게 리더를 맡아주시길 부탁드렸다. 부지런한 리더님 덕분에 그 모임은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나는 그곳에 속해 주 3회 운동(주로 요가)을 인증한다. 열다섯 명 인원이 각자 달리기, 만보 걷기, 골프, 헬스, 줌바댄스 등 운동한 기록이나 사진을 올리면 리더는 ‘오늘도 잘 해내셨다’며 응원해 주고 기록을 관리한 현황판을 보여준다. 나는 오픈채팅방에 쌓여가는 숫자와 멤버들의 인증을 보면서 귀차니즘을 다독인다. ‘아우, 귀찮아!’하는 내적인 외침을 ‘아니야, 다들 힘들어도 하는데 오늘은 나가야지’ 마음을 고쳐 잡는 것이다.
가끔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부지런하게 글을 쓰고 책을내느냐, MBTI가 파워 J(판단형, 계획적) 일 거라고 확신하며 묻는 사람이 있다. 나는 P(인식형, 즉흥적)인 데다 체력이 약해 부지런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강제성이 없으면 퍼질러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지금도 침대에 눕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이다. 시간 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비법이 있다. 그야말로 파워 J들은 스케줄러를 열심히 쓴다. 시간 단위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써놓고 하나하나 지워가거나 한 주를 돌아보며 다음 주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나는 그런 것을 할 사람이 못 된다. 매년 다이어리를 사도 1, 2월만 쓰다 메모장으로 사용하는 것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모임에 의지한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니까. 삶을 방치하지 않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채우려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면 나도 따라 한다. 처음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하다가 어느새 전염이 되어버린다. 마치 원래 나도 그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처음에는 그저 해야 할 일을 억지로 해내기 위해 강제성으로 이용했던 모임이었는데 더 소중한 것을 얻었다. 이제는 그 사람들이 좋아서 모임을 한다. 무엇이 먼저인가를 따질 필요가 없이 스며들었다. 행복은 거창하지 않다. 일상이 ‘좋은 습관’으로 촘촘히 채워진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