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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Apr 15. 2019

아침엔 역시 쏘맥이지

'터는 맛'을 아시나요

이곳은 사무실인가, 화생방 훈련장인가


담배연기로 자욱한 이 공간은? 그렇다, 사무실이 확실하다. 당시엔 실내 금연법이 엄격하지 않을 때였다. 나를 뺀 모든 PD, 작가들의 컴퓨터 앞엔 종이컵이 놓여있었다. 재떨이다. 특히 방송 전날이면 마치 실내가 안개 특수효과를 뿌린 듯 흐려졌다. 그들이 동시에 뿜어대는 담배연기는 치열한 포격이 일어나는 전쟁터를 연상시켰다.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비흡연자였던 나는 지독한 담배냄새의 고통을 오롯이 홀로 견뎌야 했다. 게다가 나는 공기질에 민감한 알레르기 체질이었다. 기침이 나오고 피부가 가려웠다. 하지만 그 역시 나만의 괴로움이었다.

  

나는 다행히 오늘 후드티를 입고 출근했다. 후드로 머리를 덮어 감쌌다. 후드 앞쪽에 달린 양 줄을 힘껏 잡아당겨 리본으로 묶었다. 눈만 내놓고 일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담배연기는 빈 공간을 쉽게 파고들어 내 콧구멍으로, 눈으로, 피부로, 기어이 폐 속으로 침투했다. 따갑고 숨이 막혔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해 마스크를 꺼내 썼다. 일도 힘든데 서러웠다. 방송 바닥에서 일하면서 담배를 배우지 않은 게 죄였다.

메인 언니는 그런 내가 좀 안쓰러웠는지, 하지만 그녀 역시 흡연자였고, 다수 팀원의 입장을 고려해야 했기에 '작은' 규칙을 정했다. '한 번에 세 사람 이상은 담배 피우지 맙시다!' 단, 방송 전날은 빼고.


시간에 쫓기는 아침 생방송을 만들려면 잠을 쫓아야 했고, 굳어있는 머리를 3배는 빨리 돌게 해야 했고, 그러려면 아마도 담배가 고급휘발유쯤 되려나. 나는 담배 대신 커피를 수혈하며 머리로 피를 올렸다.

     

그렇게 밤을 새워 담배연기와 싸우며 촬영 테이프를 프리뷰하고 편집구성안과 대본을 썼다. 촬영 테이프를 보며 리포터와 출연자의 멘트 중 쓸 만한 것들을 우선 골라낸다. 멘트는 내레이션이 들어갈 부분과 내용이 겹쳐선 안 된다. 구성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매거진 프로그램은 보통 몇 가지 패턴을 보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궁금증을 하나씩 벗겨가는 방식

팩트를 하나하나 소개하는 1,2,3 병렬식 구성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원인이나 과정을 보여주는 식 등이다.     


중요한 건 시청자가 계속 보게 만드는 거다. 매거진 방송은 피드백이 명확한 편이다. 방송 다음날 나오는 시청률을 1분 단위로 잘라 어디에서 하락하고 어디에서 최고점을 찍었는지 그래프로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한 프로그램에 작가가 6명씩 되다 보니 나의 코너만 시청률이 낮으면 어쩌나 하는 은근한 조바심도 생긴다.

     

방송 당일 새벽 1시쯤 시작된 편집구성안 작업. (10분도 안 되는 구성물에 편구가 꼭 필요했을까?) 시간이 없으니 '쪽편구'로 넘긴다. 짝지 피디는 쪽편구를 받아 편집을 해나간다. 새벽 2~3시쯤 되면 슬슬 속이 쓰리다. 배가 고픈 건지, 잠을 못 자서 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한약과 커피를 번갈아 마시며 버텼다. 피디의 1차 편집본이 나오면 함께 영상을 다듬고 메인작가와 팀장의 내부 시사를 거친다. 그들의 피드백을 받은 후 다시 영상을 뜯어고친다. 더 좋은 멘트는 없는지 촬영본을 재차 뒤진다. 이쯤 되면 벌써 새벽 5시. 이제는 원고를 써야 한다.


방송은 오전 8시. 늦어도 7시 반까지는 방송국 본사에 도착해서 리포터와 리딩을 하고 바로 생방송에 들어가야 한다. 아무래도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원고다. 보통은 각 영상 컷의 길이가 몇 초인지를 대본에 적고, 그 분량에 맞는 내레이션 멘트를 써야 한다. 그래야 리포터도 대략의 길이를 가늠해 대본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아침 생방송에선 영상 길이를 체크할 시간이 없다. 그냥 영상을 틀어놓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내레이션을 중얼거리면서 길이에 맞춰 쓴다. 그렇게 혼돈의 카오스로 완성된 원고 다발을 들고 우린 떡진 머리로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님, 여의도 ABC요!”     


본사 대기실에 도착하면 미리 도착해 있는 메인 언니에게 최종 검수를 받아 원고를 수정한다. 분칠을 마친 깔끔한 모습의 리포터들이 하나둘 도착한다. 떡진 머리에 다크서클과 잔주름이 가득한 작가들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편집 영상을 모니터에 플레이하고 리포터는 리딩 연습을 한다. 리포터는 본인의 발음에 편하게 일부 수정을 하거나 끊어 읽을 곳을 표시한다. 시계를 본 리포터가 스튜디오로 황급히 달려간다. 곧 생방 시간이다. 각 코너 작가들도 달려간다. 리포터에게 큐사인(멘트 시작 시점을 손을 들어 알려주는 일)을 줘야 한다. 산뜻한 아침을 여는 오프닝 음악이 흐르드디어 생방송이 시작됐다.

    

피디, 작가, 카메라 감독, 아나운서, 리포터, 카메라, 조명, 소품까지. 스튜디오 안의 모든 것이 긴장하는 순간이다. 지금 이 시간을 위해 밤을 새우고 일주일을 달려왔다. 리포터는 가끔 발음이 꼬여 실수를 한다. 영상과 멘트 속도가 맞지 않아 당황하기도 한다. 작가는 TV에선 절대 보이지 않는 어두운 스튜디오 구석의 한편에서 손짓을 하며 리포터의 타이밍을 잡아준다.

 

메인 언니와 팀장님이 알면 속 뒤집어질 일이지만 난 가끔 이런 상상을 하기도 했다. 생방 중인 지금 이 순간, 저 스튜디오로 뛰어올라가 이렇게 외치는 거다.

"엄마! 나 완전 었어!"




 

무사 방송이 끝났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우리는 다시 떡진 머리에 반들거리는 얼굴로 본사 회의실로 향한다. 본사 CP에게 방송 피드백을 받고 설교를 듣는 시간이다. 사실 이쯤 되면 정신이 탈탈 털려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는다. 어떻게 1시간이 흘렀고, 눈을 떠보면 우린 ‘팔미식당’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 팀은 매주 방송을 '털면' 이 식당에서 햄이 듬뿍 들어간 부대찌개에 쏘맥을 마셨다.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다. 부대찌개도, 쏘맥도 별로 안 좋아하는 나였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국물은 달큰했고 술은 청량했다. 이건 분명 방송을 털었기 때문이다.


‘터는 맛’은 방송쟁이들에게 다시 일어날 힘을 준다. 일주일간 피똥을 싼 후 방송이 나가고 나면 ‘드디어 끝났다’하는 안도감과 함께 성취감이 우르르 몰려온다. 이 중독성에 취해 생방송을 선호하는 작가도 있다고 한다. (내 주변에선 못 봤다.) 아침 생방송이 ‘터는 맛’의 최고봉인 이유는 제작기간이 일주일 텀으로 짧은 면도 있다. 방송 날을 빼고 나면 6일이 되고, 하루 쉬는 날이나 아이템을 찾는 날까지 빼면 사실상 4~5일 안에 방송을 찍어내야 한다. 이 사이에 정말 많은 사건들이 벌어진다. 어제까지 연락을 던 출연자가 갑자기 증발하는가 하면, 천재지변으로 아이템을 접기도 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사례자가 안 잡혀 아이템을 급히 바꾸기도 한다. 이렇게 피를 말려 마침내 방송이 나갔는데, 무엇을 먹은들 맛이 없으랴. 이러한 고행을 일주일 텀으로 반복하니, 아침 생방은  중의 맛이라는 '터는 맛'을 폭식하는 셈이다.


변태 같지만 제작진은 ‘터는 맛’의 극치를 느끼며 아침 10시 댓바람부터 쏘맥을 따르기 시작한다. 술이 술술 들어간다. 꼴딱 밤을 새운 상태라 이내 하나둘 쓰러진다. 다행히 이 식당은 좌식이고, 그 시간에 손님도 거의 없다. 누구는 코를 골며 잠을 자고, 누구는 술잔을 돌리며 스트레스를 털어낸다. 점심때쯤 쏘맥 파티가 끝나면 작가들만의 두 번째 의식이 시작된다. ‘풋 마사지’ 거행식이다.


1시간에 2만 원, 돈을 더 추가하여 등 마사지는 필수다. 일주일간 긴장감으로 땅땅하게 뭉쳐버린 나의 불쌍한 목과 어깨를 풀어주지 않으면, 다음 주에도 어김없이 다가올 전투를 치를 수 없다. 침대에 눕자 졸음이 잠식해온다.


 ‘잠들면 안 돼! 이 시원함을 온몸으로 맛볼 테야!' 하지만 어느새 한국말이 서투른 안마사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마사지 끄나씁니다.”


우리는 왠지 집에 가기가 아쉽다. 스타벅스로 향했다. 천근만근 눈꺼풀을 애써 부릅뜨고 끝도 없는 수다를 이어간다. 90%는 피디 욕이다. 어느새 해가 넘어간다.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든다. 이제는 진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털려면’ 다시 뭉쳐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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