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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Apr 03. 2019

30대에게 남친보다 더 필요한 이것?

클라이밍에 빠지면 약도 없다

제가 운동을 시작한 건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갈 즈음입니다. 사실 저는 운동신경도 없을뿐더러 딱히 운동에 관심 있는 편도 아니었는데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던 거죠. 당시 저는 우습지만 ‘결혼’이 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제가 ‘결혼병’에 걸린 건 20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이야기는 접어두고, 남자사람을 만나기 위한 방법으로 저는 운동(물론 소개팅도 종종 했습니다만)을 택했습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면 내 이상형에 가까울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였죠.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은 ‘2030 등산 동호회’. 말이 2030이지, 저보다 한참 위인 40대가 태반이었습니다. 지금이야 함께 늙어가는(?) 처지지만, 당시 20대였던 저는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아재’들을 오빠라고 부르기가 참 불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산계에서 귀여운 ‘막둥이’ 격이었던 저는 몇 번의 썸이 있었습니다. 결혼까지 이어질 만한 좋은 인연은 만나지 못했지만요. 하지만 저는 남자보다 훨씬 치명적인 상대를 만나게 되는데요.

      

바로 클라이밍입니다. 등산을 하던 멤버 중 몇몇이 인공암벽 등반 정모를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호기심에 따라갔다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클라이밍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거죠. 여러 가지 매력이 있지만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성취감’입니다. 정해진 루트를 따라 몸을 움직여 오르다 보면 멀게 만 느껴졌던 정상이 점점 가까워집니다. ‘도저히 못 버티겠다! 여기서 포기할까’ 싶은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있는 힘껏 마지막 홀드를 터치하는 그 순간! '완등!'을 외치면 빌레이어가 아래서 줄을 내려주는데, 그럼 저는 마치 타잔이 된 듯 허공을 가르며 낙하하죠. 그 쾌감은 어떤 마약보다 강한 중독성이 있다고 단언합니다. 남자고 뭐고 다 필요 없죠.     


바로 슈즈부터 질렀습니다. 클라이밍 슈즈는 마치 발레리나 슈즈처럼 발에 밀착해서 신어야 합니다. 바위나 홀드 위를 발끝으로 흔들리지 않고 내딛으려면 힘을 잘 받아야 하기 때문이죠. 터질 듯한 신발에 발가락을 욱여넣고 홀드 위를 올라가면 이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옵니다. 처음엔 3분 이상 신고 있기가 힘듭니다. 잠깐 홀드 위에서 놀아볼까 하면 이내 고통에 신발을 벗어던져야 했죠. 불이난 발가락이 좀 식었다 싶으면 다시 벽에 오르기를 반복. 익숙해지기까지 최소 1달 이상이 걸립니다. 그런데 이 클라이밍이란 운동이 발가락만 힘들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특히 초보자의 경우, 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홀드를 본능적으로 세게 움켜잡기 쉬운데요. 그러면 팔뚝에는 필연적으로 ‘펌핑’이라는 친구가 찾아옵니다. 손목 위부터 팔이 접히는 부분까지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는 거죠. 분명 팔인데 ‘무다리’가 연상된다고 할까요. 피로물질인 젖산이 쌓여서라는데 팔을 탈탈 털어주면 회복이 좀 빠릅니다. 하지만 진정한 고통은 다음 날 찾아오죠. 벌벌 떨리는 손 때문에 양치질을 양손으로 하는 색다른 체험을 합니다. 손가락은 굽어서 잘 펴지지 않을뿐더러, 거친 홀드에 닿은 손바닥은 껍질이 벗겨지고 물집이 생겨 부풀어 오릅니다. 손바닥 살점이 벗겨지면 정말 짜증이 나죠. 아파서요? 아뇨, 그 재미있는 운동을 며칠 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버티지 못하면 클라이밍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한 두어 달쯤 견디다 보면 손바닥에는 물집 대신 굳은살이 안착하는데요. 클라이머에게 굳은살은 훈장입니다. 그만큼 열심히 연습을 반복했다는 증거니까요. 하지만 너무 굳은살이 두껍게 쌓였다가는 손바닥 살점 일부가 날아가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굳은살이 쌓이면 사포로 문질러서 없애라고들 조언하죠. 참 귀찮은 운동입니다.


그런데 이 운동은 앞서 말했듯이 중독성이 너무 강합니다. 어느 정도냐면 자려고 눈을 감으면 천장 위에 뭔가가 떠다닙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홀드들이죠. 마치 ‘당구 중독자’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눈을 감은 채 나도 모르게 클라이밍의 기본자세인 ‘삼지점’을 되새기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합니다. 내일 또 운동을 하러 간다는 사실에 설레기까지 하죠. 살다 살다 운동을 하고 싶어서 설렐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발 안쪽을 딛는 인사이드 스텝, 바깥쪽을 딛는 아웃사이드 스텝, 뒤꿈치를 거는 힐훅 등 점점 갖은 기술과 무빙을 익혀갑니다. 몸의 무브 방식에 따라 힘을 쓰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힘을 최대한 적게 써야 멀리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보단계를 지나면 점점 자세와 기술이 중요해집니다.


저는 클라이밍을 거의 쉬지 않고 3년을 했는데요. 심지어 스페인에서 1달 살기를 했을 때는 현지 클라이밍 암장 회원권을 끊어 운동을 했을 정도입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동양 여자가 혼자 벽을 타러 오니 신기하게 보더군요. 그래도 같은 운동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쉽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클라이밍을 하다 보면 종종 선배들을 따라 ‘자연암벽’을 타게 될 기회도 생기는데요.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선 안 됩니다. 실내에서 하는 스포츠클라이밍의 성취감이 10이라면, 산에서 하는 암벽 타기는 100 정도 될까요. 물론 더 많은 장비와 연습이 필요하지만 말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몬쥬익 언덕 뒤편 비밀스러운 클라이밍 동굴
독특한 모양의 홀드들


이렇게 말하면 제가 엄청난 클라이머 고수 같은데 실은 여전히 초보를 벗어난 수준입니다. 해도 해도 늘지 않는다는 표본이 바로 저죠. 요령은 생겨 힘은 덜 들지만 근력과 지구력이 부족해 몇 년째 그레이드 업이 되지 않습니다. 선배들은 클라이밍을 더 잘하고 싶으면 근력을 키우는 다른 운동을 병행하거나 몸무게를 저체중까지 빼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중력의 영향을 받다 보니 가벼울수록 유리하겠죠. 두 가지 방법 모두 다 시도해봤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자타공인 ‘저질체력’인 제 몸이 자꾸 고장이 나더라고요. 운동도 무리하면 몸에 해가 된다는 사실도 처음 깨달았네요.   

  

나 자신이 몸치라는 건 이미 알았지만, 암장을 다니면서 더 처절하게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클라이밍을 한 지 3년이 된 저보다 이제 3달 정도 암장을 다닌 동생의 실력이 더 뛰어나더라고요! 충격적이었죠.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나이 차이 때문일 거야’ 하며 애써 위로 아닌 위로를 했습니다. ‘조금 더 클라이밍을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도 들었습니다. (누가 보면 선수인 줄 알겠어요.) 그래도 전! 멈추지 않았습니다. 비록 제 실력은 보잘것 없

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운동은 앞으로도 없을 테니까요.     


라고 했던 제가 클라이밍을 못한 지 벌써 1년이 됐습니다. 핑계지만 이사를 온 후 주변에 클라이밍 센터도 없고, 함께 즐길 사람들도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팀을 지어하는 볼더링 게임, 2인 1조로 자일을 잡아줘야 하는 리드 클라이밍, 하드프리 모두 혼자서는 하기 힘듭니다. (멀티라 부르는 팀플레이 암벽등반은 끝내 체력의 한계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함께할 사람이 있다면 다시 시작할 겁니다.


요즘은 일종의 외도(?)로 요가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특히 물 흐르듯 동작을 반복하는 ‘아쉬탕가’의 매력에 빠졌는데요. 여러모로 클라이밍과 닮았습니다. 전신을 느릿느릿 끊임없이 움직이는 점. 등근육과 팔 뒷 근육과 같이 평소 잘 안 쓰는 근육을 사용하는 점. 하고 나면 둘 다 땀이 나는데, 이 땀이 유산소 운동과는 결이 다릅니다. 달리기를 했을 때의 땀을 ‘땀방울’이라고 한다면, 클라이밍이나 요가로 나는 땀은 ‘땀이슬’이라고 부르고 싶네요.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이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니지만 왠지 어울립니다. 하고 나면 또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죠. 수십 년 간 몸속에 차곡차곡 쌓여온 독소들이 비집고 나오는 기분이랄까. 타인과 함께하지만 나 자신에게 반드시 집중해야 한다는 점, 나의 한계와 계속해서 부딪치는 과정도 닮았습니다. 클라이밍을 하다가 힘이 떨어져 포기하고 싶을 때,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쥐어짜서 팔을 뻗으면 놀랍게도 홀드가 보통 잡힙니다. 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호흡을 하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빼다 보면 아무리 허리를 구부려도 닿지 않던 이마가 정강이에 가까워지죠.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 요가하우스'에서





저는 이십 대 중후반부터 10년  등산, 웨이트 트레이닝, 줌바, 복싱 피트니스, 클라이밍, 요가, 크로스핏, 기구 필라테스 등 다양한 운동을 해봤는데요. 어떤 건 재미가 없어 두 달 정도 하다 그만두기도 했습니다. 플라잉 요가는 색다르고 재밌었지만 포기했습니다. 뒤집어지는 동작이 어지럽고 해먹이 감긴 다리가 아파서 참지 못하겠더라고요. 마치 주리를 트는 느낌이었죠. 참을만한 분도 있다는 거 보면 사람마다 맞는 운동이 다른 듯합니다.


운동은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죠. 운동이 괴로우면 오래 하기 힘듭니다. 저는 다양한 운동을 한 달 이상 도전해보고 나와 찰떡인 운동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물론 모든 운동은 ‘참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그 참는 과정도 즐거운 운동이 분명 있습니다. 그것을 찾는다면 내 평생 운동으로 가져갈 수 있겠죠!


운동의 종류보다는 운동의 성격을 찾아가는 게 더 좋습니다. 그래야 질리지 않고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숨을 헉헉거리면서 하는 유산소 운동을 안 좋아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천천히 하는 운동이 잘 맞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운동을 경험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찾아내고 꾸준하게 유지해나가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특히 성장호르몬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30대 안에 반드시 ‘나의 평생 운동’을 찾으시길 추천합니다. 건강상의 이유는 말할 것도 없고, 분명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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