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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May 15. 2019

방송작가는 어떻게 자연인을 찾을까?

사람, 어디까지 찾아봤니?

이번에 아이템 뭐 잡았어?


게임 이야기가 아니다. 방송은 7할이 아이템 빨이다. 아이템은 그 프로그램의 소재이고 출연자다.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아이템은 보통 높은 시청률을 보장한다. 아무튼 ‘먹히는’ 아이템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가령 산속에 홀로 외떨어져 살고 있는 일명 ‘자연인’을 찾아야 한다면?

     

정해진 기간은 약 2주. 그 안에 무조건 찾아내야 방송 일정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아무 산이나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 우선 그가 살 만한 곳을 떠올려보자.


'자연인 하면 역시 지리산이지!'      


지리산을 안방처럼 누비는 약초꾼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군. 3년 이상 교양 프로그램 구성작가를 했다면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스마트폰에는 이미 전국 약초꾼들의 번호가 빼곡히 저장돼 있다. 열에 아홉은 ‘산삼’ 프로필 사진. 우선 그들에게 이번 방송의 목적, 찾고 있는 출연자의 특징, 촬영날짜, 출연료 등의 정보를 써서 카톡을 뿌린다. 그다음 섭외처는 ‘약초 카페’. 카페 운영자에게 대략 이런 내용의 쪽지를 보낸다.

     

“안녕하세요. ABC 프로그램 000 작가입니다. 저희 방송에서 지리산에서 혼자 살고 계신 자연인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특별한 사연으로 산속에서 사시는 분을 알고 계실까요?
자세한 사항은 010-6789-1234로 문자 주시면 전화드리겠습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여기서 멈춰 선 안 된다. 최대한 뿌릴 수 있는 데까지 씨를 뿌려야 '상품성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약초 카페에 무작정 검색어를 넣어본다.

   

검색어:

‘자연인’, ‘암 치료’, ‘지리산 거주’, ‘오두막’, ‘이혼’, ‘아파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검색어를 넣다 보면 운 좋게 관련 글이 뜨기도 한다.


글 작성자: 꾸지뽕

지리산에 온지도 벌써 5년이 다 돼 가네요.
6년 전 아내와 이혼을 하고, 술로 세월을 지새웠죠.
불행은 꼭 함께 오더군요.
암 진단에 세상이 무너지는 거 같았습니다.
세상 모두가 나를 버렸는데 지리산이 안아줬네요.
6개월밖에 못 산다던 의사, 가서 혼내줄까요? ㅎㅎ      

댓글 1: 노루궁뎅이

겨울에 버섯 캐러 갔다가 꾸지뽕님을 처음 뵀었죠.

그때 나눔 해주신 겨우살이 지금도 잘 먹고 있습니다.


댓글 2: 자연농원

형님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까? 자주 찾아봬야 하는데...

그 의사 완전 돌팔이네요!     


댓글 3: 복분자 미인

꾸지뽕님 사연 너무 안타깝네요. ABC프로에 나가보심이?

출연료도 주는 거 같던데.     



나는 카페 글 중 ‘작성자’ 메뉴 검색창에 '꾸지뽕'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5년 전 그가 처음 썼던 글부터 댓글 하나하나까지 모두 읽어가며 그에 대한 단서를 찾기 시작한다.


'간암 3기셨구나. 가족은 아들이 하나 있는데 연락은 안 하나 보네. 오호 [지리산 약국]에 종종 내려가시는구먼. 찾았다 찾았어!'     


나는 초록창에 지리산 약국을 검색한다. 전화번호가 나온다. 주저 없이 번호를 누른다.

     


“안녕하세요 ABC 프로그램 작가인데요. 지리산 약국이죠. 저희가 이러저러해서 자연인 꾸지뽕님을 찾고 있는데..  이 약국에 가끔 내려오신다고 해서요.”

“아 예예”

“출연자로 모시고 싶은데 연락할 방법이 있을까요?”    

“그 형님, 폰이 없을 건데.”

“혹시 사는 위치는 아세요?”

“저는 모르죠. 아마 가시나무님이 아실 거예요.”

“가시.. 나무요?”      


나는 다시 약초카페에서 '가시나무'를 검색한다. 젠장! 탈퇴한 회원이다. 일단 카페 운영자의 쪽지를 기다려보는 수밖에.


카페 운영자가 연결을 해주면 다행이지만 방송 자체를 싫어하거나, 본인이 출연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도와주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럴 땐 멀어도 지리산 약국을 찾아가야 한다. 최대한 사는 곳에 대한 정보를 얻고, 마을 이장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 농촌이라면 이장님, 어촌이라면 어촌계장님이 진리다. 하도 많은 방송 섭외 요청을 받기 때문에 적당한 캐릭터를 알아서 척척 꼽아주시기도 한다.


최근에는 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위성지도를 활용해 출연자를 찾기도 한다.  마치 내가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라도 된 양,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며 검지 손가락 하나로 자연인이 살만한 한적한 장소를 뒤지는 거다. 녹음으로 우거진 산속에 덩그러니 자그마한 나무집이 하나 보인다! 이건 필시 자연인의 집? 확인 결과, 개집으로 드러났다.


적당한 주인공을 만날 때까지 약초꾼 블로거, 한약재 판매상, 대한민국약초협회 등에 무턱대고 전화를 걸어 제보를 부탁한다. 이 과정에 보이스피싱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억울하다.


"보이스피싱이 왜 무소유 자연인을 찾겠습니까?!"

     

2주가 다 되도록 출연자를 못 찾으면? 그럴 리는 거의 없다. 방송작가는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찾아낸다. 주말에도, 집에서도, 차 안에서도 찾는다. 애꿎은 지인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야, 그때 너네 삼촌 지리산에서 무슨 산장하신다고 하지 않았나?”     


급하면 주변 작가들이 발 벗고 도와준다. 날짜가 정말 코앞인데 못 찾으면 어쩔 도리 없이 기존 방송에 나왔던 인물을 설득해 재탕하기도 한다. 시청자는 ‘어? 저 사람 다른 방송에서 본 적 있는데?’ 할 때가 종종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땐, ‘작가가 며칠 밤을 새워도 출연자를 못 찾았나 보네.’ 하고 너그러이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그래서 꾸지뽕 님은 찾았냐고?

안 알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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