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벨트를 잘 매는 남자가 좋다
지극히 제 취향입니다
남편과 강남행 좌석 버스에 탔다. 약속이나 한 듯 우린 안전벨트부터 맨다. 둘 중 한 사람이 혹시나 깜박하면 다른 한 사람이 챙겨준다. 나는 안전벨트를 알아서 잘 매는 남자가 좋다.
이러한 취향은 아마도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 때문일 것이다. 나의 설익은 20대 시절 연애는 맹목적이고 억지스러운 면이 많았다. 나는 알 수 없이 그에게 빠졌고, 사귀는 내내 불만과 강요를 지속했다. 그는 '콜라 중독자'였다. 식사를 한 후에는 어김없이 콜라를 마셨고, 냉장고에는 물 대신 콜라를 채워놓곤 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뱃속이 시커먼 '설탕물'로 채워지는 게 진심으로 속상했다. '왜 물 대신 몸에 해로운 콜라를 먹지?'라는 작은 의문은, '콜라를 좀 줄이는 게 어때?'라는 권유에서 '콜라 좀 그만 마셔!'라는 윽박지름으로 바뀌었다. 나는 마치 내 몸이 상하는 거처럼 걱정을 했다. 본인의 취향이고 선택인 것을. 게다가 나는 그의 엄마도 아니고, 와이프도 아닌데 말이다.
그는 나와 참 달랐다. 차를 타면 나는 안전벨트부터 맸지만 그는 내가 매어주는 안전벨트도 약을 올리듯 풀어버렸다. "왜 풀어?", "답답해." 그의 말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찔렀다. 물론 안전벨트 한번 안 맨다고 차 사고가 나서 위험에 처할 확률은 0.0001%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렇게 행동할 때면 금방이라도 사고가 날 것 같은 망상에 빠졌다. 작은 실천이 귀한 생명을 담보하는데 청개구리처럼 행동하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싸움의 이유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나는 왜 그렇게 자신에게 해로운 짓만 하냐고 잔소리하였고, 그는 자신의 행동에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나에게 넌덜머리가 났을 것이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힘들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지적을 하는 일은 옳지 않다. 어떻게 보면 내 맘 편하자고 하는 이기적인 행동이다. 나는 왜 그랬을까. 천생연분을 만나 결혼을 한 후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길 바랐던 거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다. 그리고 남을 사랑하는 법을 잘 안다. 자신이 소중한 만큼 상대방도 소중한 존재라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의 남편에게 나는 뭔가를 바꿔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 그는 스스로 본인의 건강을 위해 주 4회 수영을 한다. 살이 좀 찐 듯하면 간헐적 단식을 하고, 내가 말하지 않아도 매일 밤 자기 전에 영양제를 챙긴다. 양가 부모님의 생신이 되면 이미 아침에 연락을 드렸단다. 나는 그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나를 안심하게 만든다. 가끔은 그의 '안전제일주의'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함께 도전해보고 싶은데 그는 위험한 행동이라며 꺼려했다. 나는 강요하는 대신 포기하거나 혼자 한다. 그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그에게 요청을 한 것은 '필사 습관'이었다. 싫다고 하면 기분 상해하지 않고 나 혼자 할 생각이었다. 동기부여를 위해 함께 좋은 글을 필사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나의 제안에 그는 흔쾌히 응했다. 우리 부부는 두 달 전부터 밤 11시가 되면 나란히 책상 앞에 앉아 세상에 널려있는 좋은 글을 채집하여 필사를 한다. 그리고 도란도란 함께 생각을 나눈다.
비슷한 가치관과 취향은, 행복한 연애와 결혼에 필수요건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지만 괴로움에는 이유가 있다. 과연, 사랑이라는 포장으로 괴로움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