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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Feb 19. 2024

늙어가는 연예인을 보는 마음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야


결혼 후 TV를 잘 보지 않아 채널을 끊어버렸다. 영상은 주로 집에서 혼자 밥 먹을 때 손바닥 만한 스마트폰으로 예능 유튜브나 지식콘텐츠를 본다. 그러다 친정집에 가서야 TV를 보게 되는데(아빠 종일 틀어놓는다). 처음 보는 남성 패널이 오은영 박사님 옆에 앉아있었다. 목소리가 어딘지 익숙한 그는 자세히 보니, 개그맨 정형돈?


세상에. 내가 아는 정형돈의 모습이 아니었다. 단순히 살이 붙은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어떤 분위기가 그를 연로해 보이게 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뜬 '할명수'를 보았을 때도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원로 개그맨 한무 선생님이 떠올랐다. <무한도전>에서 본 형돈이와 명수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 적 무한도전이야. 검색해 보니 6년 전에 종영했다. 가만, 6년 전이면 내가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된 때구나. 그때만 해도 나는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매일 회사로 출퇴근하지 않았던가. 그제야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내 모습은 매일 보니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면 비슷한 생각을 서로 품겠구나. 다행히 나는 친구가 없다.


무한도전에서 가장 어렸던 하하가 얼마 전 예능 <라디오 스타>에 나와 Z세대들에게 '꼰대'라고 놀림을 받는다며 우는 소릴했다. 그는 심지어 '공중파 X끼'라는 댓글까지 보았다면서 황당하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함께 늙어가는 처지의 라디오스타 패널들도 한 마음으로 씁쓸한 폭소를 터뜨렸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TV는 가장 강력한 매체였다. TV 공중파(정확한 표현은 지상파가 맞다) 채널에서 얼굴을 많이 드러낼수록 인기가 많고 잘 나가는 연예인을 뜻했다. 지금은 도리어 공중파에 나오면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 취급하는 모양이었다. 멤버 중 가장 통통 튀고 힙스터였던 하하의 몰락(?)에 왜 내 가슴이 다 저린지.


물론 모든 연예인이 그런 건 아니다. 여전히 팔근육을 뽐내며 무대에서 날아다니는 가수 이승환이나 얼굴에서 눈부신 광채가 나는 배우 임수정같이 뱀파이어 인간도 간혹 있다. 허나 특별한 예외일 뿐, 대부분 나이가 들면 주름지고 살이 찌고 인상도 바뀐다.


부모는 아이들 커가는 걸 보면서 나이 드는 걸 실감한다는데, 아이가 없는 난 연예인을 보면 그렇다. TV속에서 뜨거운 인기를 끌던 스타가 아무도 모르게 어느 날부터 자취를 감춘다. 어쩌다 문득 생각이 나면 '아 맞다, 그 사람 요즘 뭐 하지?' 잠깐 호기심을 가졌다가 이내 관심 밖이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못 보던 그를 다시 TV나 기사에서 발견하면 내 마지막 기억에서 멈춘 그의 이미지와 현재 모습의 격차가 지나간 세월의 크기만큼 혼란스러움을 줬다. 마치 나는 언제나 그대로 인양.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이 가수 나훈아나 남진을 보고 열광하는 게 이상했다. 내 눈에는 그냥 느끼한 아저씨들인데 뭐가 멋지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말하자면, Z세대가 하하를 꼰대라고 부르는 그 느낌일 테다. 그렇지만 달라진 외모와 관계없이 내가 아직 무도 멤버를 보면 반가워하듯, 어르신들도 그들과 함께했던 지난 청춘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껍데기는 바뀌어도 내가 좋아했던 그 사람의 노래, 연기, 유행어는 변함이 없으니. 학창 시절 학업 스트레스로 고통받을 때, 구직이 되어 휘청거릴 때, 사랑과 이별로 감정의 파도타기를 , 그들은 배경음악처럼 항상 내 곁에 흐르고 있었으니까.  역시 소중한 내 과거의 일부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했던 연예인이 늙는 모습을 보는 기분은 묘하다. 내 가수가, 내 배우가 영원히 그대로였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욕심도 부려보지만, 그럼에도 세월이란 배에 함께 올라타 우정을 나누는 애틋함도 있다.


하나의 위안은 우리 모두 늙는다는 . 아무리 인물이 예쁘고 잘생기고 인기가 많아30년 지나면 똑같이 쭈글쭈글해진다는 것.  번도 그래본 적이 없는 나는 뭔가 통쾌하기까지 하다. '니들은 영원히 안 늙을 줄 아냐!' 누군지 모를 이에게 외치고 싶다. 그러니 유통기한이 있는 외모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글을 짓는 공을 들여야지.


오늘은 자기 전에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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