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신점 본 이야기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by 글밥 김선영

십여 년 전 신점을 본 적이 있다. 당시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방송쟁이들은 점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누가 어떤 점집을 다녀왔다고 하면 자연스레 둥글게 모여 후기를 듣고는 했다. 최근 아주 핫하다는 신점을 보고 온 메인작가 언니가 기가 막힌 후기를 들려주었다. 메인언니는 점집 문턱을 넘는 순간, 자신의 모든 과거사부터 현재 고민까지 모두 파악했다는 점쟁이의 놀라운 점사를 들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소개로 간 친구들도 모두 소름이 끼칠 만큼 정확한 점괘에 혼미해졌다고 했다. 예를 들어, 임신을 예언한다거나 과거 유산 사실을 꿰뚫었고 얼마 전 이사한 사실 등 말하지도 않은 개인사를 줄줄 읊는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사귀던 남자친구와 크게 다투고 이별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곧 삼십 대를 앞둔 만큼 심각한 결정이었다(당시만 해도 이십 대 후반 기혼자가 많았다). 인기 점집답게 두 달 넘게 기다려 드디어 예약날, 친구와 함께 주소지를 찾아갔다. 우리 집과 멀지 않은 동네였다. 골목 안쪽에 평범해 보이는 양옥집 벽에 작게 'OO보살'이 적혀있는 걸 보니 잘 찾아온 모양이다. 파란 양철대문을 밀고 들어가자 달아낸 좁은 마루가 있었고, 조금 어리숙해 보이는 한 남자분의 안내를 따라 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우린 왜인지 무서워서 함께 들어가겠다고 했다. 미닫이 문을 열자 앉은뱅이 탁자 뒤로 머리가 흐트러지고 게을러 보이는 중년 부인이 눕듯이 앉아있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방석에 나란히 앉은 나와 친구. 중년 부인 뒤로는 번쩍이는 불상과 알록달록한 도깨비 모양의 인형들, 그리고 벽화들이 꾸며져 있었는데 이상하게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듯이 보였다.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떠도 그 일렁거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살짝 현기증이 느껴졌다. 무당은 자신의 뒤에 있는 불상이 무서우냐고 내게 물었다, 그렇지는 않고 좀 어지럽다고 솔직히 답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무섭게 느껴진다며 착하게 살았다고 했다.


내 얼굴을 쓱 보더니 대뜸 "남자가 문제고만" 하는 거다. 소름이 끼치게 놀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맘때 여자들이 흔히 하는 고민일 텐데 말이다. 짐짓 놀라지 않은 척 표정 관리를 하며 사주를 말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무당은 나의 성격과 과거의 패턴을 꽤 맞추었다.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요약하자면, 나에게 '상충살'이라는 게 끼었다며 만나는 족족 남자친구와 충돌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나는 남자친구와 자주 싸웠기에 더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악담은 계속됐다. 일찍 결혼하면 이혼하게 되고, 결혼을 하더라도 남자가 바람을 피우거나 알코올중독자 거나 폭력적인 성향일 거라는 거다.


그러면서 이 운명에서 탈출할 방법은 살풀이뿐인데, 길일을 잡고 나의 오래된 속옷을 불에 태우는 의식이라고 했다. 금액은 387만 원. 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한 사람이 내 미래에 대해 악담을 퍼붓고 살풀이를 하지 않으면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다니! 절망에 휩싸여 친구의 점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모든 점사가 끝나고 다시 미닫이문을 열고 나가는데 마지막으로 무당이 한 마디 던졌다.


"집에 가서 절대로 엄마한테 점 본 이야기 하지 말거라."

"... 왜요?"

"엄마가, 딸이 이런 운명이라는 걸 알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


그 말에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를 이렇게 기구한 운명으로 태어나게 했다고 엄마가 슬퍼질 수 있겠구나. 그래, 이 사연은 나만 알고 있어야겠다. 그렇다면 그 큰돈은 내가 저축한 돈을 깨서 내야 하나. 오래된 속옷은 어떤 걸로 골라야 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져 집으로 돌아왔다.


해맑게 현관문을 열어주는 엄마. 벌써 슬프다. 그리고 그 유명한 일름보는 당연하다는 듯 엄마에게 이 모든 사실을 3초 만에 쏟아냈다.


"엄마엄마, 내가 오늘 점쟁이한테 갔는데 무슨 일이 있었냐면..."


잠자코 내 이야기를 듣던 엄마는 살풀이 이야기까지 듣고는 등짝 스매싱을 날렸다.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어. 가서 씻고 잠이나 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귀신에 씌었나,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등짝을 맞자마자 최면에서 풀린 듯, 심각하게 살풀이를 고민하던 방금 전까지의 일이 우습게 느껴졌다.


'아, 이래서 엄마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고만. 용하긴 용하네.'


살풀이는 하지 않았지만, 그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그 불쾌함이 나의 운을 오히려 잡아먹는 꼴이 되었다. 나는 상충살이 있어서 싸울 수밖에 없어. 저놈은 알코올중독자가 될 상이야. 상황을 미리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식이었다.


그즈음, 어릴 적 친구를 만나게 되어 이러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 무당이 너무나 내 과거를 잘 맞추어서 그가 한 말을 안 믿기도 어렵다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귀신은 있고 너의 과거도 볼 수는 있어. 그런데 미래까지는 알 수 없어. 너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말로 장난치는 거지."


명쾌했다. 예수나 귀신의 존재를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장난칠 수 있다는 그 이야기가 왜인지 모르게 크게 와닿았다. 나는 그때 친구의 말을 듣고 찜찜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말처럼 느껴졌다. 지나간 과거에 더이상 발목 잡히지 않고, 앞으로의 날들을 내 힘으로 잘 꾸려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남자를 만나 9년 동안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는 바람기는커녕 술도 즐기지 않는다. 9년 동안 싸운 적이라고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니 이 정도면 살풀이 없이 운명을 개척한 셈 아닌가.


기억하라. 누가 엄마한테 이르지 말라고 하면 부리나케 달려가 꼭 일러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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