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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7살이라니요?

미움에는 나이가 따로 없다

뭐든지 싫다고 하고 말썽을 가장 많이 부린다는 나이, ‘미운 7살’. 그런데 생각해 보니 미운 4살도, 미운 6살도 들어본 듯하다. 갑자기 헷갈린다. 그래서 미운 1살부터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미운 2살, 3살, 4살... 이럴 수가! 미운 10살까지 모두 검색어에 걸린다. 


도대체 언제가 가장 미운 나이지? 


정답은 바로 이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씽큐베이션 추천 책으로 읽은 토드 로즈의 명저 <평균의 종말>


독서모임 씽큐베이션 10번째 책!


이 책은 정말 ‘인생 책’이라 손꼽을 수 있다. 나는 내가 알던 상식이 뒤집어질 때 희열을 느끼는 편(?)인데 이 책이 그렇다. <평균의 종말>은 그동안 우리가 무심코 써왔던 '평균'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평균에 속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학창 시절에 “이번에 평균 몇 점 받았어?”라는 말 한 번 안 해 본 사람 있을까. 연령별 평균 몸무게와 키는 마치 ‘정상’의 기준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아기의 '배밀이'도 평균 개월 수를 따진다. 그리고 평균과 우리 아이가 맞지 않으면 걱정한다. 이를 증명하듯 배밀이의 연관검색어는 이렇다.


“아기가 배밀이를 안 해요.”     


그런데 아기가 1) 배밀이를 하다가 2) 기고, 3) 기다가 걷는다는 평균 순서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러한 개념은 문화적 산물이라고 한다. 기다가 걸을 수도 있고 걷다가 갑자기 길 수도 있다는 게 과학자 캐런 아돌프의 주장이다. 실제로 그는 28명의 영유아를 기어 다니기 전부터 걸음마를 떼는 날까지 발달과정을 추적했다. 그 결과, 절반은 배밀이 단계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아기 개개인의 발달과정을 분석한 후 이런 결론을 내렸다. 


모든 아기는 몸 움직이기 문제를
저마다 독자적인 방식으로 풀어간다.     


파푸아 뉴기니의 한 부족 아이들은 기는 단계가 없이 바로 선다고 한다. 아기 띠에 업혀 생활하거나 바닥에 내려도 절대 엎드리거나 눕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란다. 이유는 서구와 달리 땅에서 기생충에 감염될 수 있어서다. 이처럼 인간의 발달은 단 하나의 정상적인 경로(평균)라는 게 없다는 게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평균적’인 사람들처럼 ‘평균 주의자’였다. 평균은 매우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 같았다. 그리고 편리한 도구이기도 했다. 왜 그렇게 피곤해 보이냐는 친구의 질문에 “나는 평균 9시간 잠을 자야 해.”라고 대답한다. 이 얼마나 편리한가. (좀 많이 자긴 한다.) 그런데 이 잘난 평균 때문에 우리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그동안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었다!


어서 와, 평균적인 친구들아

저자는 우리가 평균주의 늪이라는 수렁에 빠지게 된 계기를 풀어간다. 평균주의는 약 150년 동안 모습을 달리하며 진화해왔는데, 개개인성을 무시한다는 점은 일관적이다. 과학자 '아돌프 케틀레', 그는 병사 5738명의 가슴둘레 평균 내었고 평균치에 해당하는 병사만이 참된 병사이고 가장 이상적이라 믿었다고 한다. 그 외의 사람은 오류이며 기형, 질병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주장은 당시 큰 호응을 얻었고 평균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굳히기에 들어간 두 번째 인물 ‘프랜시스 골턴’은 그의 이름처럼 더 골 때렸다. 그는 영국 상류층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평균은 하층민 같은 평범하고 천한 것이라 믿었고 때문에 평균을 최대한 향상하려 힘쓰는 게 인류의 의무라고 믿었다. 요즘 시대로 말하면 '상향평준화' 정도 되려나? 그는 인간을 우월층·평범층·저능층 등 14개 층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우월층은 어느 한 부분이 뛰어난 게 아니라 지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모든 게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그들의 유산은 한 세기가 훨씬 더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 아돌프 케틀러, "평균이 정상을 판단하는 기준" 

   -> 현재의 교육시스템, 채용, 업무평가 방식



* 프랜시스 골턴, "한 가지에 탁월하면 대다수의 일을 잘한다" 

   -> 우등생에 대한 편견, 평균을 넘어야 한다는 경쟁적 교육시스템     


그리고 이들보다 더 무서운 인물이 등장하니 그 이름은 '프레더릭 윈슬로 테일러'다. 그는 기업, 학교와 같은 조직에서 인간보다 평균적인 시스템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테일러의 표준화 시스템은 '평균 방법이 오류를 최소화한다'라고 믿는다. 그래서 일하는 방법에 있어 자율이나 다양성은 철저하게 배재한다. 창의적 장인보다는 표준화된 인간로봇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장식 표준화 시스템은 우리가 잘 아는 기업들도 채택했던 방식이다. 프랑스 르노의 자동차 제조, 미쉐린 타이어 제조도 테일러 주의를 응용했다. 


'학교 종이 땡땡땡' 그 기원은?

이러한 테일러 주의는 능률을 높여야 하는 산업주의에 걸맞았다. 그리고 교육계까지 장악하게 된다. 천재보다는 평균적 학생을 키워내는 표준 교육의 시작이다. 관심사나 적성이 아닌 나이별로 나눠 표준화된 시간 동안 모두 똑같은 수업을 받게 된다. 1920년대 미국 대다수 학교는 테일러 주의 교육 비전으로 독창성을 억눌러 개개인들을 똑같은 안전 수준으로 기르는 것이었다. 재능이 있는 애들한테 '몰아주기' 위해 학생을 등급 화하는 표준화 시험을 마련했다. 지금의 영재, 우등생, 특수반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학교의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는 테일러 주의의 흔적이다. 직장생활에 대한 정신적 준비 차원으로 공장의 종을 흉내 내었다는 슬픈 비하인드 스토리다. 이렇게 교육이 분류화, 등급화 되면서 지금의 교육시스템이 고착됐다. 평균만 남고 개인은 사라졌다.


그런데 이러한 표준화 제도가 왜 호응을 얻었는지 따지고 보면 더욱 화가 난다. 관리자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직원이 시스템에 잘 맞추지 못한 탓'이라고 허물을 씌우면 간단하기 때문이다. 맛이 없으면 네 입맛이 문제지, 평균적인 레시피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잘못된 조직문화는 언제나 ‘관리자가 편리한 방식’에서 비롯된 듯하다. 


'득점왕'만 모였는데 농구팀이 망한 이유

하지만 인간에 평균의 잣대를 들이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NBA 스타 출신 감독인 아이제이아 토마스의 농구팀은 그 한계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는 최고의 농구 팀을 만들기 위해 '득점 평균이 높은 선수'만 모아서 팀을 꾸렸다고 한다. 하지만 전략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농구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요인은 득점뿐만이 아니다. 리바운드, 공 가로채기, 어시스트, 블로킹 등 다양한 개개인의 능력이 필요하다. 득점 평균이 높다고 다른 능력이 뛰어나란 법은 없다. 책에서는 이를 ‘들쭉날쭉 원칙’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의 능력을 일차원이 아닌 다차원적으로 봐야 한다는 거다.     


평균이 같다고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커피는 없다

과연 평균은 최고의 선택일까? 하물며 드립 커피 한 잔을 내릴 때도 원두의 종류, 분쇄도, 물 온도나 내리는 시간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그뿐인가. 누구와 함께 마시느냐도 중요하다. 사랑하는 연인과 마주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과 대표실에서 마시는 좌불안석 커피는 맛이 같을 수 없다. 평균에 대한 맹신은, 원두의 종류에 관계없이 똑같은 분쇄도와 물 온도로 커피를 내려놓고 '이 정도면 어디에서 누구랑 마셔도 모두가 만족할 맛'이라는 말과 같다그 말은 반대로 말하면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맛이기도 하다. “이 집에서 어떤 메뉴가 제일 맛있어요?”, “평균적으로 다 맛있어요.” 도무지 신뢰가 안 간다. 


평균 아니면 안 보련다~

다행인 점은 평균주의의 오류를 발견하고 이를 고치려는 사이다 같은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길은 역시 쉽지 않았다. 평균의 오류를 주장해봤자, 대다수의 평균 주의자는 이를 무시했다. 유형, 등급, 평균 중심의 기준을 그동안 편리하게 사용해왔는데 이제 와서 주장을 엎기 싫었을 터.


지금 혼란 상태로
다시 돌아가자는 얘깁니까!


하지만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과학자들이 있었다. ‘포동포동한 허벅다리 실험’은 나에게 감명을 줬다. 

아직 걷지 못하는 아기의 몸통을 잡아 세우면 아기는 파닥파닥 다리를 움직이며 걷는 시늉을 한다. 보행 반사 작용이다. 그런데 아이가 어느 정도 더 자라면 다리를 안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다 일정 시기가 지나면 다시 움직여 걷게 되는데 이러한 아이의 보행 반사의 비밀을 풀기 위해 과학자들이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평균 주의자들은 종합 후 분석하는 방식을 택했다. 수많은 아이들 보행 반응을 살핀 후 보행 반사가 사라지는 평균 연령을 계산했고 이 평균 연령을 신경 발달상 여러 지표의 평균 연령과 비교했다. 결국 뇌 발달과 관계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 연구결과는 '아전인수'였음이 곧 드러난다.

'에스터 텔렌'은 평균 대신 개개인에 주목했다. 기간이 더 걸리더라도 분석 후 종합 방식을 택한 것이다. 2년 동안 각각의 아이를 관찰한 결과, 보행 반사가 체중 증가와 관련 있다는 걸 깨달았다. 뇌 발달과는 관련 없이 허벅지에 살이 붙어 포동포동해지는 바람에 다리를 움직이지 못했던 거였다. 아이를 물속에 넣자 모든 아이가 다리를 다시 움직인 게 그 근거다. 이렇게 평균의 함정에 빠지면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된다.


하지만 분석 후 종합 방식은 막대한 자료 수집 처리가 필요해 그 정확성에도 불구하고 외면당했다고 한다. 다행인 점은 지금은 디지털 시대! 우리가 ‘평균주의’라는 눈가리개만 벗어던지면 얼마든지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해 연구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당연하다 믿어왔던 것에서 오류를 발견했을 때의 당혹스러워한다. 그래서 보통 그것을 무시하려고 한다. 나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평균의 오류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한 과학자들의 이야기에서 깊은 감동을 느꼈다.     



분명 놓친 인재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굴지의 기업들이 최근 평균주의의 눈가리개를 벗어던지고 있다고 한다. ‘평균 이상의 사람을 채용한다’라는 활용하기 쉽고 객관적으로 보였던 채용기준이 폐지되고 있다. 과거 평균주의 개념을 따랐던 구글 역시 인재 채용법을 이렇게 바꿨다. 300가지 이상의 차원 목록을 우선 만든다. 예를 들어 ‘컴퓨터에 처음 흥미를 가진 나이는?’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성공적인 직원 발굴과 결부된 요소들을 분석하기 위해 검증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 성적이나 출신학교는 지표가 못 된다는 사실을 인식했고, 다양한 부분이 작용한다는 걸 깨달아 평균주의 방식의 채용을 버렸다고 한다. 그 결과는? 구글의 현재 위상이 증명한다.     


평균은 가고 개인이 온다

저자는 평균주의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4년만 채우면 나오는 대학 학위 제도 대신 자격증 취득 졸업 방식을 추천한다. 성적이 아닌 실력으로 평가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관련 지식, 기량, 능력을 숙지하는데 유용한 교육 진로를 스스로 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용주들이 지금처럼 졸업장이나 학위를 중심으로 채용한다면 대학이 변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평균주의의 종말은 개개인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출발할 것이다. '들쭉날쭉성'을 인정하고 내가 어떤 부분에 흥미 있고 잘하는 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다음은 나의 강점을 펼칠 수 있는 맥락(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이를 통해 평균의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정한다. 개개인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먼 길을 돌아왔다. 다시 미운 7살로 돌아가 보자. 이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정답을 얻었다. 미움에는 ‘평균’ 나이가 없다고. 그리고 이왕이면 미운 점에 주목하기보다는 개개인의 다양성과 속도를 인정하고 기다려주자고 말이다.





*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Q. '평균주의'의 함정에 빠져 곤란을 겪은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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