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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un 24. 2019

서른여섯, 영정사진을 찍다

잠깐 눈물 좀 닦고요


펜을 잡은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눈앞이 뿌예지고 콧물이 자꾸만 흘러 유서를 쓰기 힘들었다. 유서 앞에 세워놓은 나의 영정사진은 너무나 해맑다. 내가 죽으면 나의 지인들이 보게 될 나의 모습을, 제3자가 되어 바라보니 낯설었다. 그리고 벅차오르게 슬펐다. 잠시 후면 나는 어두컴컴한 관 속으로 들어간다. 빳빳하게 다려진 수의(壽衣)의 감촉이 오히려 산뜻하다. 관에 누울 때 혹여 등이 배길까 뒤쪽에 있던 허리끈 매듭을 앞으로 돌렸다. 관 뚜껑을 열어 내 발로 들어가 누웠다. ‘어좁이’라 관은 넉넉했다. 눈물이 자꾸만 흘러 손수건을 눈 위에 덮었다. 쿵! 몇 초 후 뚜껑이 닫혔다. 관 뚜껑에 못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영화 <워낭소리>에서 들어봄직한 맑은 종소리가 몇 번 울렸다. 그리고 나는 어둠 속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새까만 우주 속에 홀로 떠있는 기분이랄까. 지독하게 외로웠던 10여분. 나는 관 속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나중에 내가 진짜로 죽으면 절대 매장을 하지 말아 달라고. 매장은 산자가 죽은 자를 추억하기 위함이지, 죽은 자가 원하는 바는 아닐 수 있다고. 죽은 육신이지만 알 수 없는 시간을 홀로 땅속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견딜 수 없게 외로운 일일 거라고.    




나는 지난주 내내 죽음을 곁에 두고 지냈다. 죽음의 과정을 느껴보는 ‘임종체험’이라는 것을 했다. 타고난 울보였기에 미리 손수건을 준비했다. 장소에 도착해 ‘묘비명’을 지을 때 만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함께 온 동료의 빨개진 눈을 보고 놀려대기 바빴으니 말이다. ‘웰다잉’을 주제로 한 강연이 끝나고, 본격적인 체험을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터진 눈물샘은 마를 새가 없었다.


유서의 시작은 고민의 여지없이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 가족 한 명 한 명을 떠올릴 때마다 미안한 감정만 복받쳐 올랐다. 신기하게도 못해본 일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었다. 나는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을 갖고 살아왔다. 가상의 죽음이긴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세계 일주를 못해본 것도, 원하는 커리어에 도달하지 못해도, 씽큐베이션 그룹장을 아직 시작도 못해 본 것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만 떠오를 뿐이었다. 나는 중요한 깨우침을 얻었다! 후회 없이 살고 싶다면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걸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두려움을 이기고 임종체험에 나선 이유는 ‘샐리 티스데일’의 에세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읽고 느꼈던 바를 각인하고 싶어서였다. 저자는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십 년 간 해온 간호사로서, 누구보다 죽음과 죽어감을 많이 지켜본 사람이다. 책은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곁에 둔,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사기그릇’ 같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죽음을 앞둔 마지막 몇 달, 몇 주, 며칠, 순간을 나누어 예리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죽음을 그려간다. 그리고 시신을 대하는 태도나 남은 자들의 애도를 통찰력 있게 담았다.      


씽큐베이션 1기_마지막 책


세밀하고 아름다운 묘사 때문에 한 편의 문학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용 전반에 저자의 친한 친구였던 '캐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관통해서 더 그런 듯하다. 이 책을 완독 하기까지 세 번을 울먹거렸다. 내가 유독 눈물이 많은 건지, 이 책이 슬픈 건지 모르겠다. 가령 이런 문장을 읽으면 나는 감정이입이 되어 주체할 수가 없다.     


내가 절개한 것이 살아있는 손이었음을 깨달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몸에 붙은 소중한 손처럼 유연하고 활기차게 살아 움직이던 손이었다. 펜을 쥐고, 삽질을 하고, 아이를 씻기고, 누군가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해부생리학 수업을 듣던 저자의 에피소드 中


있지도 않은 잔을 집으려고 손을 뻗었다가 허공만 가른다.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두 팔을 허우적거린다. 열쇠를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열쇠가 없다.

'어, 뭐지?'

애통은 바로 '어 뭐지?' 하면서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상태이다. 너무나 익숙했던 것이 사라졌다.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나눴던 일상까지 전부 다 사라졌다.     

우리는 흔히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한다. 그녀가 수건을 접던 방법, 현관을 올라오던 발자국 소리, 어머니의 필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애도’ 中     




한편, 이 책은 실용서이기도 하다. 책의 마지막 10%는 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내용에 할애했다. ‘죽음 계획서’와 ‘장기와 조직기증’ 등 사후를 위한 가이드 부록을 넣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나 타인의 죽음을 앞두고 해서는 안 될 말, 행동을 알려준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시신은 물론, 임종장면을 본 적도 없다. 그래서 사람이 죽어갈 때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생각건대 죽음은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필수 교육과정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죽음의 과정을 이토록 생생하게 그린다.      


환자는 음식물을 점점 덜 먹고 덜 마시다가 결국엔 다 끊는다. 음식을 그만 먹겠다고 선택하는 게 아니라 먹겠다는 욕구가 없어지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오래 지켜보면 자꾸 오그라드는 게 느껴진다. 살이 빠져서 수척해졌을 뿐만 아니라 몸에서 기가 빠져나간 것 같다.     

임종을 앞둔 사람이 작별 인사를 하면 정말로 떠날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당신도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     

소리를 지르거나 울부짖거나 돌발적인 행동을 한다. 절박한 순간에 격한 감정을,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꽃을 일시에 발산하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목에서 가래 끓는 듯한 소리가 난다. 크르렁 크르렁 가래 끓는 소리가 시작되면 하루 안에 사망한다.     

죽음은 신체의 모든 조직이 참여하는 과정이다. 근육이 늘어지고 턱이 축 처진다. 피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형체로 변한다. 수없이 쳐다봐서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낯선 타인처럼 보인다. 가면을 쓴 것 같다. 죽은 몸은 세상 어떤 것과도 같지 않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죽음을 묘사한 부분



‘죽어감’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운 건 나에게 큰 수확이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무지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해야 할 일]
죽어가는 사람을 방문할 때는 가능한 범위를 설정하는 것이 좋다.
"한 시간 정도 머물 수 있어"라거나 "저녁때까지 있을게"라거나 "메리가 오면 일어날 거야"라고 미리 말해둔다. 설정된 범위는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여유공간을 제공한다. 아울러 떠날 때는 언제 다시 방문할지 알려줘라. 그래야 막연히 기다리지 않는다.     


[하면 안 되는 말]
“너를 위해 기도할게”
“이건 위기가 아니라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거야.”
“이것도 다 하늘의 뜻 일거야.”
“내가 너라면...”      


저자는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를 ‘사기그릇은 깨지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빗대었지만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인생도, 사기그릇도 그저 존재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백미는 죽음의 개념을 재정립하도록 해준다는 점이다. 죽음은 아무래도 공포스럽다. 그리고 나와는 무관한 일로 느껴지며, 또 그렇게 믿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전보다 죽음을 좀 더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게 됐다. 세상 만물에게 똑같이 적용되므로 극히 자연스럽다. 죽음만큼은 평등하다는 말은 매력적이다.  끔찍한 비유지만 아래 글은 '죽음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구더기는 노출된 시신의 무게를 몇 주 만에 50퍼센트로 줄일 수 있다.
<중략>
유충은 부화해서 먹이 활동을 시작한다. 죽었던 몸이 새 생명의 탄생지로 거듭나는 것이다.     
"구더기 앞에선 누구나 평등하다. 동물과 인간, 거지와 왕이 모두 똑같다. 거기서 당신은 진정한 평등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평등을 얻는다."  -파브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시신' 中



그리고 죽음은 우리가 실제로 그 일에 참여하므로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는 점, '멀찍이서 구경만 하거나 어떤 일이 닥쳐오길 막연히 기다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일을 직접 거행한다'는 저자의 의견이 믿음직스러웠다. 나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마지막으로, 책에 인용된 시를 소개하고 싶다.



마침내
누군가가 당신의 구두끈을 절대로 풀리지 않게 묶어주었다.

마리 하우 <죽음, 마지막 방문> 中




*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Q. 죽음을 떠올렸을 때 가장 두려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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