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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ul 12. 2019

'나쁜 남자'에 빠지면 위험한 진짜 이유


네가 그 사람을 구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늪으로 너를 끌어당기는 거야!

친구가 내 등짝을 내리쳤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 친구에게 감사하다. 내가 '나쁜 남자'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뼈아픈 조언을 해줬기 때문이다.


도전정신이 강하던 20대 시절, 나는 흔히 말하는 ‘나쁜 남자’에 끌리곤 했다. 나쁜 남자의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특히 빠지는 유형은 ‘불성실’한 사람이었다. 나는 일종의 연민을 느꼈다. 연민도 사랑의 한 종류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좋은 영향력을 미쳐서 그를 꽃길로 이끌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했다. 조던 피터슨의 저서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그때 읽었다면 좀 더 빠르게 손절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누군가를 구해 주려는 사람 상당수는 순진무구하거나 허영심과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정말이다. 나는 순진무구한 데다 허영심에 빠져있었다. 나 자신도 스스로 바꾸기가 쉽지 않은데, 누가 누굴 바꾼단 말인가. 저자의 말처럼, 바꾸는 건 본인의지가 중요하다.


구남친이 된 그의 마지막 멘트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때 내 성격의 한 부분이 마음에 안 들어서 고치고 싶었고, 그것을 그에게 솔직히 터놓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뭐 하러 네 성격을 고치려고 해. 평생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게 쉬운 지 알아? 나도 내 성격 안 좋고 이기적인 것 아는데 나는 그냥 이렇게 살 거야. 바꾸는 게 힘든 걸 아니까.”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알지만 바꾸기가 싫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그와의 관계를 끝냈다.   

  

“안 고치면 당신처럼 되는구나. 나는 그렇게 되기 싫으니 힘들어도 바꿔야겠어.”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수'

조던 피터슨은 살면서 알고 있으면 좋을 ‘12가지 법칙’을 책 속에 담았다. 그중에 가장 와 닿았던 법칙은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이다. 저자는 자신을 바꿀 생각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려는 건 시간낭비라고 말한다.

   

자신의 가치를 낮게 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삶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려고 한다.
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둔다.
자신의 고통을 무력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자신의 고통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까지도 일부러 키워서 세상의 부당함에 대한 증거로 내세운다. 순간순간 가장 쉬운 길을 택할 뿐이다. 장기적으로 지옥으로 향하는 길이다.
    
- 조던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中


그러면서 너무도 차갑게 이런 말을 한다. ‘당신에게 간절히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그 지경에 이른 것은 사실 늘 쉬운 길만 걸었기 때문이 아닐까? 연민보다 경멸이 상대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뼈를 때리다 못해 갈아버린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냉정하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감정적으로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그들은 고통으로 세상의 부당함을 입증하려는 게 목적인 사람들이다. 잘못된 걸 알아도 변할 생각이 없다. 변하지 않고 머무르는 게 편하고 쉽기 때문이다. 그것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라고 믿는다. 반면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 가려는 사람을 곁에 두면 서로에게 유익하다. 나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내가 나태해지지 못하도록 하는 ‘좋은 환경’이 된다. 그래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고, 그런 모습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씽큐베이션 2기 세 번째 책!


저자가 내세운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다.     


법칙 1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법칙 2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

법칙 3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법칙 4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 하고만 비교하라

법칙 5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말라

법칙 6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법칙 7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법칙 8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

법칙 9 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을 들려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라

법칙 10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하라

법칙 11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법칙 12 길에서 고양이와 마주치면 쓰다듬어 주어라     


바닷가재가 왜 거기서 나와?

가장 처음 나오는 법칙 1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는 누구나 공감하고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서열 싸움에서 이긴 바닷가재는 어깨를 활짝 열고 집게발을 추켜올려 위풍당당하게 걷는다고 한다. ‘승자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적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보다 쉽게 암컷의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저자는 힘과 권력을 좋아하는 인간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어깨를 당당히 펴고 자신감 있게 다니면 불행이 쉽게 달려들지 못한다는 것. ‘내가 누군가를 물어뜯을 수 있다면, 물어뜯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공격적으로 살라는 소리가 아니다. 부당한 일 당했을 때 단호히 거부 의사를 밝혀야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책임을 지고 적극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천사가 날려면 OO이 필요하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필독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법칙 5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말라>이다. 저자는 폭력성을 인간의 본성으로 본다. 그래서 천사 같은 아이일지라도 3살 무렵이 되면 부모를 괴롭히는 사악함이 드러난다고 한다. 그런데 내 아이가 상처 받을까 봐 제대로 된 훈육을 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아이에게 피해가 돌아간다고 한다. 아이가 부모를 짜증 나게 하고 괴롭히는 이유는 ‘자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백지와 같은 상태에서 이런 방식으로 하나하나 정보를 습득하며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거다. 때문에 적절한 훈육이 없으면 커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높다. 그러면서 저자는 적절한 훈육 방법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지난 주말, 여섯 살 난 조카를 보면서 느꼈다. 그는 형아에게 초콜릿을 뺏기자 엄마를 마구 때리며 화풀이를 했다. 아직 '자유의 한계' 범위를 알지 못하는 거다. 이번에 초등학생이 된 첫째 조카(형아)는 다르다. 그는 아무리 화가 나도 엄마를 때리지 않는다. 훈육으로 학습한 것이다. 아쉽게도 동생의 초콜릿을 뺏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하지만.



이 책은 분명 유익하고 유용하다. 하지만 읽으면서 짜증도 많이 났다. 저자는 어린아이가 자유의 한계를 알아내려고 어른들을 의도적으로 짜증 나게 한다고 했지만, 저자는 내 인내심의 한계가 궁금했던 거 같다. 내용이 잘 정돈된 느낌이 아니다. 장황하다. 명언처럼 한 마디로 간결하게 정리한 ‘12가지 법칙’은 굉장히 그럴싸하다. 하지만 다양한 사례와 성경 속 내용이 등장하는데, 뜬구름 잡는 듯 한 느낌이 들 때가 있고 동어반복이 많다. 법칙을 설명하기 위한 글은 산 넘고 물 건너 돌고 돌아 드디어 제 자리를 찾아오는데 문제는 '이 산이 아닌가벼?' 하는 느낌이 들 때가 간혹 있다. 특히 ‘법칙 11’이 그러했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도대체?

저자는 법칙 11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는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에서 인간은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함으로써 성장을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저자는 ‘문화는 남성의 억압에서 비롯된 산물’이라고 가르치는 세태를 비판하며 한 예를 든다. 여성의 불편한 삶을 개선하고자 피임약과 생리대를 개발한 남성의 이야기다. 그러면서 ‘이들도 가부장제에 이바지했는가?’라고 반문한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남성 억압에서 비롯된 문화 산물의 예시를 찾는 편이 훨씬 쉬울 것이다.

     

저자는 급진적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맑시즘을 매우 싫어하는 듯하다. 대량학살 등 잘못된 공산주의로 인한 역사적 사건들을 예로 들며,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는 게 왜 잘못됐는지 정성을 들여 주장한다. 저자의 마음은 알겠는데, 법칙 11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는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와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다. (나의 지식이 부족해서 일수도. 혹시 아시는 분 설명 좀...) 그러면서 ‘법칙 11’을 이렇게 급 마무리한다. ‘남성은 강해져야 한다. 남성이 강한 남성을 요구하고 여성도 강한 남성을 원하기 때문이다.’ 황당하지 않은가.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얻어갈 것이 더 많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지를 만날 텐데, 그때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기준을 세워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인생은 원래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찾고 만들어가는 일이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길이라고 위로한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에는 공통적으로 단호함이 묻어있다. 나를 지키는 건 오직 나뿐이라는 걸 여러 차례 상기시킨다. 너무 냉정해서 때론 불편하다. 마치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알아야 하고 마주 봐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인생을 사는 기준이 모호하거나, 이래도 저래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다.


자, 이제 이 책에서 나를 지키고 인생의 의미를 발견해가는 법칙을 배웠으니,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서는 일만 남았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Q. 12가지 법칙 중, ‘이건 아닌 거 같다’하는 내용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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