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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Aug 21. 2019

엄마는 왜 '매실 물'을 마시라고 할까?

매실 항아리의 비밀


어떤 가수에게는 흑역사의 상징이라지만 우리 집에선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는 과일이 있다. 싱그러운 여름 과실, 매실이다.      


우리 아빠는 여름에는 가장 더운 곳에서, 겨울에는 가장 추운 곳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다. 폭염이 유난했던 몇 해 전, 얼굴빛이 붉다 못해 검어진 아빠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오랜 시간 옥상에서 작업을 한 데다가 피로를 씻어줄 소주가 두 뺨을 더 상기시켰으리라. 피로에 절은 아빠는 먼지 묻은 작업복을 마루에 벗어두고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주방에서 저녁을 만들던 엄마가 문득 냉장고 문을 열었다. ‘매실액’을 꺼내려고 말이다. 그 순간 욕실에서 울리는 아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여보야 매실 좀 타 놔라~”


엄마는 싱긋 웃으며 매실 원액을 시원한 얼음물에 부었다.


“헐... 엄마, 아빠가 매실물 타 달라고 할지 어떻게 알았어?”

“네 아빠, 술 마시면 매실 찾잖아.”


뭘 그렇게 놀라냐는 듯 태연한 엄마. 30년 넘는 세월을 함께한 부부의 내공이란 이런 것일까? 피로를 풀 때, 갈증이 날 때뿐만이 아니다. 매실은 우리 가족의 만병통치약으로 통한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graindivresse님의 이미지입니다.


“엄마 나 속이 더부룩해. 체했나?”

“매실물 좀 마셔야겠구나.”


언제든지 냉장고에 구비돼있는 마법의 상비약, 그 이름은 매실액. 채 동이 나기도 전에 우리 집은 매년 여름이면 매실발효액을 담근다. 매실과 설탕을 1:1 비율로 해야 한다, 누구는 매실을 좀 더 많이 넣어야 한다, 청매실이 아닌 황매실로 해야 더 좋다는 둥 말들이 많지만 매실의 효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매실은 동의보감에도 나와 있는 약재며 특히 해독작용을 하고 소화를 돕는다고 한다.      


매실은 생각보다 활용도가 높다. 발효액을 걸러내고 남은 매실 과육은 씨를 발라낸 후 장아찌로 만든다. 입맛 없는 여름, 물만밥에 매실 장아찌를 곁들이면 밥이 꿀떡 넘어간다. 매실 발효액을 시원한 탄산수에 섞으면 카페가 부럽지 않은 홈메이드 매실 에이드가 된다. 감기 기운으로 몸이 으슬으슬한 때엔 따뜻한 물에 타 마신다. 원기가 샘솟는 기분이다. 각종 조미료로도 쓴다. 새콤한 겉절이에, 물김치에도 빠질 수 없다. 떡볶이를 만들 때 설탕 대신 넣어보았는가? 신세계를 만날 것이다.     


매실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과일이지만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더해지기에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다. 털이 많은 매실을 꼼꼼하게 씻어 말리고, 항아리를 소독한다. 설탕과 매실을 번갈아 가며 켜켜이 쌓아주고, 한지에 고무줄까지 동여맨 후에야 뚜껑을 덮는다. 이뿐인가. 행여 곰팡이가 생기진 않았는지, 숙성이 잘 되어가고 있는지 틈틈이 확인하고 위아래로 저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3개월 이상 계속한 후 걸러줘야 매실의 새콤한 맛과 건강 효능이 온전히 담긴 귀한 원액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배가 아파 화장실을 들락거릴 때였다.


“배탈 났니?”

“그런가 봐, 점심에 먹은 게 잘못됐나.”

“여기 매실물 좀 마셔봐.”


아까부터 안타깝게 날 주시하던 엄마가 매실물을 건넨다. 정말 만병통치약 매실 덕분일까? 살살 꼬이던 배의 통증이 가라앉는 듯하다.


“좀 괜찮아지는 거 같아! 근데 오늘은 맛이 좀 약한데?”

“응~ 그거 매실액 다 먹어서 항아리 씻은 물이야~”

“... 엄마    


항아리에 묻은 한 방울까지 놓칠 수 없는 엄마의 못말리는 매실 사랑이란!




위 작품은 네이버 FARM과 농촌진흥청이 공동 주최한 제2회 추억의 농산물 이야기 공모전 수상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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