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종종 댓글이 달렸다. ‘재미있다’, ‘공감 간다’는 말도 좋지만, 가장 찡한 댓글은 ‘길어도 술술 읽힌다’는 말이다.
아무리 주제가 좋아도 글이 지나치게 어려우면 독자는 포기해버린다. 작가가 의도한 바를 전하지 못하니 글이 태어난 이유를 찾지 못한다. 나는 실용적인 글을 주로 쓰기 때문에 글이 어렵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 쓴다. 독자를 괴롭히지 않으려면 글이 쉬워야 한다고 믿는다. 내 글이 비교적 읽기 편한 데는 이유가 있다.
보통 방송 구성작가는 막내작가-서브작가-메인작가의 단계(드라마는 별개)를 거치면서 글쓰기 역량을 넓혀간다.
막내작가는 글보다는 섭외와 취재력을 키우는데 집중한다. 막내작가가 쓰는 글은 언론에 프로그램 내용을 홍보하는 ‘보도자료’ 정도다. 나는 메인과 막내가 짝을 이루어 작업하는 다큐멘터리 막내작가로 시작해서 사수에게 1:1 피드백을 받았다. 소름 돋지만 2007년에 썼던 보도 자료를 소환해보자.
열일곱. 남들은 꽉 막힌 도서관에서 머리를 싸매고 공부할 때, 광활한 바다 위에서 '키'를 잡은 소년이 있었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13살 때부터 지금까지 반평생 배에 몸을 실은 선장 OOO 씨. 30여 년을 한결같이 봄에는 광어, 가을에는 전어를 잡으러 서해바다를 안방처럼 누려온 '바다 사나이' OOO 씨. OO지역 토박이 어부이자 선장인 그의 거친 일상을 따라가 보자!
피드백을 받은 글 치고 여전히 구린 부분이 많다. 우선 ‘열일곱’, ‘13살’, ‘반평생’, ‘30여 년’ 같이 나이를 뜻하는 단어가 지나치게 많아 어지럽다. ‘안방처럼 누려온’ 건 또 무슨 개떡 같은 말일까. 괜히 들춰냈다. 아무튼 막내작가 때는 이런 식으로 글쓰기 훈련을 했다. 곧 방영할 방송을 글로 생동감 있고 재미있어 보이도록 ‘포장’하는 일이었다.
서브작가로 입봉 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구성안과 대본을 쓴다. 구성안은 피디가 촬영할 때 볼 용도라 글의 완성도보다는 내용과 짜임새가 중요하다.
대본은 리포터나 성우가 읽는 용도로, 시청자가 ‘듣기 편하게’ 써야 한다.문장은 짧고 단어는 쉬워야 한다. 흔히 중학생도 이해할 수준으로 대본을 쓰라고 한다. TV 앞에 앉은 시청자는 눈으로 글을 읽는 게 아니라 귀로 듣기 때문이다.책에서는문장이 길거나 어려우면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겠지만 방송은 다르다.이해하기 힘든 말은 허공에 흩어져버린다.
내글에는 어려운 단어가 없다. 모두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다. (사실 어려운 말을 잘 모른다) 나는 유려하고 우아한 글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려고 10여 년을 훈련한 셈이다.
혹시 자신의 글이 난해하다는 평을 들어 고민이라면 방송 글을 눈여겨보는 건 어떨까. TV에서 성우나 아나운서, 리포터가 어떤 단어를 쓰는지 귀담아 보자. 교양 프로그램 방송을 다운로드하여 멘트를 받아써보는 것도 추천한다. 영어는 잘하려고 그렇게 섀도잉과 받아쓰기를 하면서 글쓰기 실력만 날로 먹을 순 없다.
<연습문제>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칼럼을 찾아서 쉬운 말로 고쳐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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