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표, 쉼표, 물음표, 마침표

존재와 존재감

by 파이어


5학년 때, 선생님은 우리에게 매일신문에 있는 기사 중 인상 깊었던 기사를 스크랩하여 친구들에게 발표하는 과제를 내주셨다. 내일은 내 차례다. 신문을 어제오늘 것을 뒤적이며 발표할 내용을 고른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석유냄새를 풍기며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요즘 매번 반복되는 기사 중 하나를 선택한다. 스케치북 두 장을 붙인 하얀 도화지 위에 신문에 있는 사진을 자르고 붙인다. 기사 내용을 보기 좋게 큰 제목과 작은 제목, 내용을 써서 사인펜과 크레파스로 써 내려갔다. 줄이 없는 빈 공간에 내 글씨가 줄을 이탈할까 온 신경을 집중한다. 여지없이 앞으로 나아가던 글자길은 어느 순간 길에서 샛길로 빠져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아~‘하는 김 빠진 탄성이 절로 나온다. 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다. 팔이 아프지만 눈을 질끈 감고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스케치북 두 장을 뜯는다. 이번에는 30센티미터 자로 줄을 긋는다. 그리고 사진을 떼어 붙이고 기사내용을 써 내려간다. 중요한 낱말과 기사내용을 빨간색으로 덧입히며 보기 좋게 꾸민다. 두어 시간 끙끙대며 완성한 스크랩을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내심 뿌듯해한다. 연습 삼아 기사를 소리 내어 읽어본다. 어려운 말들이 많아 읽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끝냈다는 안도감에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1교시가 발표 시간이었다. 돌돌 말린 내 기사는 곧 기지개를 켜고 아이들 앞에서 뽐내리라. 등굣길에는 괜찮았던 내 마음은 조회 종이 울리는 순간부터 두 방망이질을 한다.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다. 심장소리가 짝꿍에게 들킬 것 같아 또 다른 조바심이 난다. 1교시 종이 울리자, 선생님은 오늘 발표할 사람들 이름을 부른다. 모두 5명이었다. 그중 나는 4번째. 평소 발표는 잘하지 않는다. 손을 들고 일어서서 내 의견을 말하면 모든 친구들의 시서니 내 얼굴에 와서 꽂히는 것이 몹시도 부끄러웠다. 작은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하는 부담감은 더욱 발표를 어렵게 했다. 발표는 가뭄에 콩 나듯 아주 가끔만 했다. 그런데 오늘은 앞으로 나와서 발표해야 한다. 내가 준비한 자료를 들고서 말이다. 손이 떨리고 말소리가 꿈틀꿈틀 흔들리며 교실로 퍼진다. 교실에서 나의 존재가 점차 존재감 있게 친구들에게 각인된다. 하지만 다 끝난 후 선생님이 “기사 내용에서 ‘시사한다’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뜻이 뭐지?” “……” 모르는 말은 모르는 말로 그대로 지나쳤더니 선생님이 정확히 짚으셨다. ‘아뿔싸‘ “너희 중에 아는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이제 자리로 돌아가고, 시사하다는 말은 어떤 것을 미리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거야. 기사에서 지선이가 조사했던 그 사건은 우리에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리고 있다는 거지. “ ”네! “ 아이들이 일제히 합창을 한다. 진정되지 않은 내 심장과 붉은 얼굴은 여전히 달음박질하고 있었다. ”오늘 발표자들은 모두 수고했고 잘했어요. 다음에 발표자들은 친구들이 모르는 말이면 아래 그 뜻도 적어오도록 하세요. 알았지? “ 이 말을 지금도 기억하는 걸 보면 꽤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매우 부끄러움이 많았다.(지금도 그렇지만) 교실에서 존재하지만 그렇게 존재감을 내뿜는 편은 아니었다. 적극적이지도 못 했고 나서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시험 때나 뒤 칠판에 알림판 작성 글에서만 존재했다. 선생님은 금요일 방과 후에 늘 내게 다음 주 학습계획을 알림판에 쓰도록 하셨다. 5가지 색의 분필로 적절한 낱말에 강조를 하며 예쁘고 또박또박 쓴 내 글씨는 항상 칭찬받았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선생님의 손길이 지금도 선하다. 그 손길은 내 존재감을 드러내준다. 조용하고 수줍은 나의 존재를 친구들 앞에게 나타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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