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 사과의 비밀
나무판자로 성기게 만든 박스 안에는 쌀겨가 가득 차 있었다. 누런색의 쌀겨에 손을 넣어 휘휘 저어 보면 동그랗고 커다란 무언가가 손에 걸렸다. 잡아서 꺼내 올리면 촤르르 쌀겨가 떨어지고 빨갛게 익은 사과가 모습을 드러낸다. 빨간 사과를 바지에 쓱쓱 닦으면 빨간색에 광택이 흐르며 먹음직스럽게 빛난다. 한 입 크게 베어 물면 과즙이 입안으로 퍼져 상큼하고 달큼한 맛으로 입안에서 폭죽을 터트린다. 코 끝으로 번지는 사과향이 입맛을 더 향기롭게 한다. 어릴 때 즐겨 먹었던 간식이었다. 가을 사과철이 돌아오면 엄마는 사과 한 궤짝을 들여놓으셨다. 우리는 놀다가 배고프거나 심심하면 하나씩 집어 들어 우적우적 맛나게 먹었다. 쌀겨 속에 사과를 찾는 재미도 좋았다. 촤르륵촤르륵 파도 소리같기도 하고 어느 때는 금은보화 같기도 했다. 금은보화 속에 숨겨진 루비를 찾아 번쩍 들어 올리면 빨간 루비가 빛을 냈다.
어릴 때 즐겨 먹던 사과는 우리나라에서 흔한 과일이었다. 초록색 아오리, 빨간색 부사, 홍로, 홍옥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초록색 서머킹과 노란색 골든볼이 새로운 품종 개발에 성공해 쉽게 만날 수 있다. 사과는 일교차가 큰 북반구 온대지방에서 자란다. 최근 봄철 저온 현상과 일조량 부족으로 인해 사과 작황이 크게 하락했다. 기후변화는 우리나라 사과재배를 위협하고 있다. 30여 년간 사과를 재배했던 대구, 경북지역은 44%가 줄어들었으며 강원도는 247%가 증가했다. 온난화로 ‘서늘한’ 지역이 계속 북상하고 있는 것이다. 2050년대에는 강원도 산간에서나 지금처럼 맛 좋은 사과가 생산되고 2070년대엔 국산 사과가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기후위기로 인해 어릴 때 즐겨 먹던 과일은 이제 찾아보기가 힘들다. 기후 변화로 열대과일이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다. 예전에는 귀한 대접을 받았던 애플망고, 바나나, 용과, 패션푸르츠, 파파야가 국내에서 만날 수 있다. 수입산 열대과일이 신선한 국내산 과일로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결과다. 이것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안타까운 현상이며 위기이기에 기뻐할 수만은 없다. 최근 국산 과일값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금값의 과일은 파는 상인도 사 먹는 소비자도 울상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과일값이 폭등하지만 몇 년 후에는 어떤 품목의 식품이 폭등할지 알 수 없다. 지구 기후 위기설이 나온 지는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채소와 과일의 폭등은 예고 전일뿐이다. 실제 미국 농무부(USDA)는 지난 6월 태국의 2023~2024년 쌀 생산량 예측치를 전월 전망보다 3.9% 낮춘 1970만 t으로 조정한 바 있다. 작년 곡물이나 다른 품목이 연이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전 지구적 식량대란이 올 수 있다. 그때는 너무 늦는다. 지구의 시그널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