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
하얀 접시에 빨갛게 익은 딸기가 수북이 담겨있다. 남자아이 둘이 책장 앞에 나란히 앉아 딸기를 하나씩 입에 넣어 오물오물 씹는다. 큰 아이 무릎 위에는 그림책이 펼쳐져 있고 옆에 앉아서 딸기를 먹는데 정신 팔린 동생에게 책을 읽어준다. 큰 아이는 책을 읽고 딸기를 먹느라 입이 바쁘다. 작은 입으로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한다. 동생은 듣는 둥 마는 둥 그러나 형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봄이 되고 딸기를 보면 이 사진이 떠오른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이다. 지금은 사춘기를 넘어 묵직한 목소리로 엄마를 타이르고 어르고 달랜다.
어릴 적에 아이였던 모습이 계속 남아있다. 그 아이들도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가는 데 어린아이인 양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의 모습이 피곤한 듯 거부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나의 독립이 요구되는 데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성장하는 아이들과 내가 부딪히게 된다. 나의 의도와 사랑을 몰라주는 것 같아 속상하고 우울하다. 내 맘과 달라지는 아이들에게 섭섭하여 눈물짓는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만 바보가 된 기분이다. 속이 상해 밖으로 나간다. 운동화를 고쳐 신으며 달리다 걷기를 반복한다. 바람을 맞으며 눈물도 땀도 날려 보낸다. 숨이 차오르고 근육이 긴장한다. “그래, 나는 나지, 아이들은 아이들이야. 잘할 테니 미련을 두지 마.”
큰 글라스에 시원한 맥주가 두꺼운 거품 모자를 쓰고 날 기다린다. 한 잔 쭉 들이켜고 집으로 향한다. 괜찮아. ‘나도, 너희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잘할 거야.’라고 마음먹으며 집으로 간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이들도, 나도 서로 다른 존재다. 딸기를 먹으며 책을 읽던 그 꼬마 남자아이 둘은 어느덧 변성기를 지나 나를 내려다볼 만큼 컸다.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 주고 믿어주면 그만이다. 잘하리라. 아들과 엄마가 아닌 서로 다른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이해하는 관계로 발전한 것이다. 각자의 인격체가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나도, 너희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