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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어 Mar 29. 2024

낭만을 전하는 글

쓰고 부치는 일이 그립다

두 손에 힘을 잔뜩 주고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다. 편지임에도 떨리고 수줍다. 뭐라고 쓸까? 내 마음을 고백해보려 하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고등학교 시절 독서실에서 마주치는 재수생 오빠에게 고백하려 한다. 재수생이었던 그 오빠는 독서실 근처에서 가끔씩 마주쳤다. 어느새 오빠는 내 마음에 조금씩 둥지를 틀었다. 우수 어린 눈빛과 분위기는 감성적으로 느껴졌고 호기심 많은 사춘기 여자아이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여자아이들 중 적극적인 아이들은 음료수나 과자를 가져다주며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난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쓰기로 했다. 아트박스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골랐고, 사가지고 오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 편지를 써 내려가고 있다. 정확히 무엇이라고 썼는지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좋아한다고 관심이 있다고 썼던 것 같다. 가끔 우연히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주말에는 떡볶이도 같이 먹자고 했다. 공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 발자국만 다가서자고 했던 것 같다. 편지가 전달되고 우리는 가끔 독서실 앞에서 캔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는 손 편지에 감동했다고 했다. 썼다 지웠다 한 자국이 마음에 들었다며 활짝 웃었다. 우리는 좋아하는 음악을 이야기하고 영화를 이야기했다. 독서실에서 그렇게 우리는 낭만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편지에 마음을 담아 써 본 지 오래다. 그때의 그 떨림과 설렘이 괜스레 중년의 나를 그때로 되돌려놓았다. 글자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고 혹시나 비뚤어질까 온 신경을 집중하며 손에 힘을 잔뜩 주고 써 내려갔다. 요즘에는 편지 쓸 일도, 받을 일도 없다. 갑자기 손 편지가 쓰고 싶어 진다. 그런데 누구한테 보내지? 아이들에게는 가끔 쪽지를 쓰기는 하지만 긴 글의 편지를 써서 주지는 않았다. 그럼 누구에게 쓸까? 보낼 곳이 마땅치가 않다. 얼마 전에 <삶을 바꾼 만남>이라는 책을 읽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과 제자 황상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었다. 다산이 유배지에 있을 때와 그 이후의 이야기다. 다산은 가족과 떨어져 홀로 유배지에 있으며 그립고 걱정이 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는 호통을 치기도 했고 때때로 유배지의 생활이 녹록하지 않음을 담기도 했다. 자식들의 공부와 생활을 염려하여 편지를 보내 타이르기도 하고 살림을 꾸리는 방법을 세세하게 알려주기를 그치지 않았다. 제자들과의 소통도, 그곳에서 알게 된 지인들과도 편지를 쓰고, 시를 써서 보내며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견뎠다. 다산에게는 편지는 외부와의 소통이었으며 자신의 존재가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수단이었다.

정민<삶을 바꾼 만남(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문학동네,2012)



지금 우리에게 편지는 이미 잊힌 소통의 창구가 되었다. 부칠 곳이 없는 편지가 되었다. 편지지에 셀레는 마음을 담아 쓸 누군가도, 호통을 치며 조언을 하고픈 이도, 그리움을 담아 나의 존재를 드러낼 누군가도 더욱이 편지를 주고받을 어느 누군가도 없다. 편리한 스마트 기기는 우리의 감성과 글씨를 잊히게 만들었다. 조선시대 다산과 아들 정학연은 강진 산골에 사는 황상과 편지를 주고받지만 어떤 때는 여섯 달 후에 답장을 받기도 하고 해를 넘기기는 일도 다반사였다. 강진과 한양을 오가는 인편이 없으면 소식이 끊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안타까움이 편지에 그대로 녹아있다. 지금은 스마트기기로 써 내려가고 클릭 한 번이면 상대방에게 바로 전달된다. 편리한 만큼 그 마음이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다. 편리하지만 공적인 일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화선지에 붓을 들고 먹물을 찍어가며 글을 쓰지는 않지만 편지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이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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