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작아그작 뺨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에 잔뜩 몸을 움츠린다. 보드득보드득 눈이 밟히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내 숨이 차오르는 소리와 함께 조금씩 바람도 잦아들었다. 고요하고 사뿐히 내려앉는 눈송이가 내 하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침반을 꺼내 위치를 살피며 가이드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까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것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어두운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마치 까만 하늘의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서 간절하게 원하고 있는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다. 살아가고 있는 나를 위해서 어떤 확신을, 더 정확히 말하면 희망을 보고 싶었다. 나의 홀로서기를 위해 그것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생각하던 홀로서기를 근래에 와서 실행에 옮겼다. 어느 날 문득 주황빛 노을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이 사그라들고 곧 다가올 어둠이 나를 되돌아보게 했던 것이었다. 내 삶이 찬란했던 순간은 기억 저편 어딘가에 묻혀 있고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쉰 노년의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다른 세계에 속할 그때를 기다리는 듯했다. 붉게 빛나는 노을처럼 마지막 빛을 뿜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괜히 눈가가 뜨거워졌다. 육십 평생을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니 왠지 공허했다. 늘 꿈꿔왔던 홀로서기 시간이 다가왔으면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정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독립을 선언했다. 남편은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시간이 흐르니 이해해 주었고 고향 집으로 가고 싶어 했던 마음을 비치며 그는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함께 살고 있지 않으니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혼자만의 공간을 알아본 후에 이곳을 알게 되었다.
나의 보금자리는 ‘월든 타운’ 아이들과 남편이 검증을 끝낸 곳이기도 했다. 이곳은 스머프 ^^마을에서나 나올 법한 작은 단층집들이 송이송이 모여 있다. 여성 노인들만이 사는 곳이었고 외부인은 철저히 차단되어 있었다. 보안이 잘되어 있고 안전했으며 편의 시설이 갖추어진 곳이었다. 원룸 스타일의 단층집은 작고 아담했다. 파스텔톤의 각양각색의 벽과 주황색의 지붕이 동화 속 마을처럼 마음을 달뜨게 했다. 짐을 옮기고 혼자 밤을 보낸 첫날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밤 나는 낯이 설고 허전한 마음에 몰래 눈물지었고 까만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살짝 흥분하기도 한두 가지의 마음으로 갈팡질팡했다. 첫날은 그렇게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밤새 엎치락뒤치락거리며 잠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새벽녘에 잠이 들었고 너무나도 곤히 잤다. 마치 자유를 얻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 혼자 지내며 더 이상 가족들을 위해 청소를 하거나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기뻤다. 빨래를 하고 정리해서 각자의 방에 넣어주는 일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정돈되어 있는 옷장 서랍이나 걸려 있는 옷들이 엉망진창 제멋대로 되어 있다고 상처받으며 가지런히 놓지 않아도 된다. 밥 달라는 소리와 반찬을 뭐해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아주 조용했고 내 마음을 시끄럽게 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가 집안 일과 바깥일을 하며 바삐 움직이고 피곤에 쩔어 있어도 세 명의 남성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불편함만을 토로할 뿐이었다. 나를 배려하거나 일을 나누어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일을 전가시켰다. 그럴 때마다 왜 이렇게까지 감내하며 해내야 하는지 의문만 쌓여갔다. 점점 혼자 늪으로 빠지는 듯했다. 부정적인 마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물었다. 그러나 이제 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저 고요하고 평안하게.
이곳에서 나는 일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나에게 시간을 쓴다. 매 끼니를 하고 먹고 치우고 하지 않는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뭐 꼭 먹지 않아도 되기에 그냥 거르기도 한다. 주방 기구도 그래서 많지 않다. 작은 프라이팬, 냄비, 각각 한 개씩, 그릇 한 쌍과 샐러드 볼, 컵, 수저 세트 하나, 텀블러. 작은 냉장고에는 그날 먹을 야채와 유제품류 몇 개 그리고 달걀뿐이다. 그렇게 나는 단출하게 생활을 한다. 홀가분하게.
홀연히 혼자 여행을 하기도 했다. 홀로 여행을 다니며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을 음미했고 길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홀로 프랑스 미술관 여행을 다녀왔다. 대부분 걸어 다녔고 필요하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한 달 동안 프랑스 미술관을 돌아보며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고 역사적인 건축물들을 돌아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느리게 천천히 하는 여행이 순간들은 내 인생을 멋지게 장식했다.
며칠 전 나는 노르웨이에 왔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 지금 눈밭을 헤매고 있다. 까만 밤하늘이 오로라로 빛을 내는 순간을 보기 위해 온 것이다. 끝나지 않은 시작을 알리는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지지직치지직피익!!!
요란한 압력밥솥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오로라는 사라지고 구수한 밥향기가 거실에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