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일 전, 그날은 재의 수요일이었죠. 흙에서 왔으니 흙에서 돌아가라는 말씀은 오히려 과분했습니다. '흙'은 다른 생명체에 거름이라도 되니까요. 그런데 올해는 그간 흙으로 들었던 말씀이 흙이 아닌 '먼지'였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네요. 바람에 훅 날려가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를 먼지에 불과하면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살았던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더군요.
당신도 아시죠? 제가 얼마나 큰 잘못들을 저지르면서 살았는지 말입니다. 아무도 제게 뭐라 하지는 않지만, 저 스스로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할 때 당신이 오셔서 제 어깨에 손을 얹고 조용히 말씀하셨더랬죠. 나는 다 잊었다고. 그러니 너도 더는 괴로워하지 말라고요.
그래서 눈물을 닦고 힘차게 사십 일을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당신을 사랑하고, 한 번 더 당신을 생각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면서 말이죠.
'아침에 눈을 뜨면 팔을 뻗어 휴대폰부터 잡던 버릇을 버리고 그 팔로 내 몸에 커다랗게 성호를 그으며 하루를 시작해야지. 이번에는 소설책이나 자기 계발서 같은 책들은 덮어놓고 신앙 서적을 먼저 읽을 테야. 장을 보러 가기 전에 냉장고 안 검정 비닐봉지 속에서 상해 가고 있는 식재료부터 먼저 먹겠어. 단식을 했던 만큼 기부금을 더 내고. 주일을 맞으면서 렉시오 디비나를 하는 건 기본이고. 아, 홀짝홀짝 마시던 캔맥주도 잠시 멈춤!'
어디 이것만이겠습니까? 마치 사십 일이 지나고 나면 나라는 사람이 완전히 리셋되어 있을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크고 작은 결심과 다짐들을 했더랬죠. 잊어버릴세라 일기장에 적고, 휴대폰 첫 화면에서도 볼 수 있게 올려놓고, 가까운 지인에게 말하기도 하면서 큰소리를 떵떵 쳤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나는 달라져 있을 거라고. 나는 더 거룩해져 있을 거라고. 비장한 마음으로 사십 일을 시작했다지요.
세월이 쏜살같이 흐른다는 말은 속담을 넘어 명언이나 진리라고 해도 되겠습디다. 사십 일이 어찌나 빠르게 지나가던지요. '오늘은 못 했어도, 내일은 꼭!'이라는 핑계를 몇 번 대다 보니, 어느새 손에 푸른 성지(聖枝)를 들고 호산나, 호산나 하며 나귀 타고 입성하는 당신을 맞이하고 있더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께 작년에 드렸던 똑같은 말씀을 또 드리고 말았답니다.
"사십일 동안 마음만큼 잘 살지 못했으니, 앞으로 다가올 성주간만이라도 잘 지내볼게요."라고요. 당신이 이 지상에서 지낸 마지막 한 주간을 돌아본다면, 당신이 무엇을 남기고 싶어 했는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한 주간 동안 아침마다 잠깐씩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 동료들의 행동들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지요.
아아, 그리고 마침내 저는 눈치채고 말았답니다. 당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은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당신이 제게 기대했던 것도 제 하찮은 희생과 극기 따위가 아니었다는 것도요. 당신이 지상에서 한 인간으로 살았던 마지막 시간들은 오로지 '사랑'으로만 점철되어 있었다는 것을요. '성(聖) 주간'이라는 이름 안에는 당신이 자신의 목숨과 온 존재를 걸고 끝내 사랑을 완성해 냈다는 의미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 월요일
당신의 인생 굽이굽이에 함께 했던 그 여인, 마리아.
어쩌면 당신도 한 인간으로서 그 여인을 사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랬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일, 또는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일. 그때 느끼는 황홀하고 두근거리는 감정을 당신도 느껴보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을 사랑했던 마리아는 당신에게 다가온 마지막 순간을 예감하지요. 사랑하는 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다 보면 그 정도는 예감할 수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마리아의 슬픔은 당신을 위해서 아무것도 해드릴 게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 비싸디비싼, 그래서 아끼고 아껴 모으고 구했을 향유를 통째로 가져와 당신께 쏟아붓습니다. 당신 역시 그 여인을 말리려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에 사랑의 행동을 기꺼이 받아들일 뿐이지요. 당신이나 여인이나, 서로를 향한 사랑이 그저 애틋하게만 보입니다.
아, 여기에서 자주 마르타를 잊지요. 마르타도 당신을 무척 사랑했던 것 같아요. 당신에게 음식을 차려드리고, 손발을 부지런히 놀리며 당신을 수발하는 그녀의 마음 역시 사랑이었습니다. 라자로가 죽어 당신이 살리러 가셨을 때 마르타는 마리아에게 가서 "스승님께서 오셨는데 너를 부르신다."하고 말합니다(요한 11,28 참조). 그런데 당신은 마리아를 부르신 적이 없었어요. 언니의 눈에는 당신과 동생 마리아가 서로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보였던 게지요. 마르타는 말하지 않았던 당신의 마음도 읽은 겁니다. 그도 당신을 사랑했으니까요.
오늘 마리아가 쏟아부은 향유도 마르타와 공동으로 소유하던 거였을 거예요. 마리아는 언니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비싼 향유를 써버리지만, 마르타는 마리아의 행동을 타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삼자인 유다가 그걸 아까워했죠. 사랑하는 이를 위한 거라면 뭔들 아깝겠습니까, 다 퍼주어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사랑이겠지요.
# 화요일
향유를 아까워했던 유다의 생각이 마음에 걸리셨던 걸까요? 당신은 유다를 생각하며 마음이 산란해지셨더군요. 그가 언젠가 배신할 거라고, 그가 바뀌지 않으면, 그가 변화되지 않으면 당신은 적이 아닌 친구의 손에 고발당해 죽어가리라는 것을 감지하신 거지요.
당신은 마지막으로 마련된 식사 자리에서 친구가 목이 메지 않도록 빵을 적셔 주십니다. 당신이 하신 행동은 결코 변하지 않을 당신의 친구에게 당신이 하실 수 있었던 최고의, 최후의 친절함이었네요. 당신의 친절에 감화되어 그가 변화되라고, 한순간에 마음이 바뀌라고, 그의 가치관이 달라지라고 기대해 보기도 했어요.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을까요? 친구는 일말의 기대를 저버리고 당신을 떠나버리는군요.
그를 향한 당신의 절망을 느끼지 못한 다른 친구들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고 말이죠. 어쩌면 사순절을 시작하던 때의 제 모습이랑 이리 똑같을까요?
# 수요일
긴 세월을 함께했던 관계일수록 그 사이가 틀어졌을 때 상흔이 깊지요. 당신이 집을 떠나 지낸 세월 동안 곁에 있었던 친구이자 동료들이 하나씩 당신에게서 멀어져 갑니다. 밥을 굶어가며 함께 배를 타고, 산을 올랐던 시간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기쁨의 축배를 함께 들었던 기억들. 함께했던 지난 세월들이 얼마나 허망하게 느껴지셨습니까. 한 사람에게 철저하게 배신당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도 의심하게 되지요. 떠난 사람은 잊으면 그뿐이지만 아직 함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리는 것, 어쩌면 그게 더 아프셨는지도 모르겠네요.
# 목요일
당신도 아시겠지만, 저는 아이들의 발가락을 자주 만집니다. 옥수수 알갱이처럼 작았던 때는 너무 보드랍고 귀여워서 입에 넣어보곤 했죠. 하지만 아이들이 크고 나니 엄마의 이런 행동을 변태처럼 보곤 하네요. 제가 발가락을 만져보려 하면 슬그머니 빼버리기도 하고요. 그래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는 거지요. 제가 아이를 낳고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아이 아빠에게도 해산하고 난 뒤의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처럼요.
저도 당신 친구처럼 처음부터 발을 내밀지는 못했을 거예요. 당신이 아닌 사제가 제 발을 씻는다고 해도 저는 끝내 사양을 하고 말았을 겁니다.
'제 발을 씻어주신다고요? 헐, 안 돼요. 더러워요. 부끄러워요.'
당신이 변태도 아닌데 싫다는 사람의 발을 굳이 씻어주겠다고 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그날 그 자리는, 밥을 먹을 때마다, 서로 나눠 먹을 때마다 내 사랑을 기억하라고. 나는 죽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지만 너희와 같아지기 위해서 죽는 거니까, 나를 꼭 기억해야 한다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는 자리였다죠. 하지만 당신은 그걸로 성이 차지 않으셨나 봅니다. 네 더러운 발을 내게 내밀어야 한다고, 아무리 좋은 선물을 해도 받을 줄 모르면 소용이 없다고, 당신의 사랑을 받으라는 뜻이라고, 발을 씻어주신 게 아닌가요?
당신 친구들, 동료들에게 사랑받는 법을 알려주고 나서야 비로소, 당신은 드디어 당신의 길을 가시는군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력한 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신, 갇히고 조롱당하고 매 맞다가 결국 죽어버리는 신이라니. 이제부터 당신을 이해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져요. 당신은 그만큼 더 외로워지고...
# 금요일
미안해요. 이날은 당신보다 다른 이를 더 자주 생각했어요. 사랑해서 그를 생각한 건 아니에요. 단지 그가 왜 그랬을까, 그를 이해하기 위해 생각했어요. 그가 누구냐고요?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남자, 결정장애의 끝판왕 빌라도예요.
아무리 읽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당신 말을 들으면 당신 말이 맞고, 군중들 말을 들으면 군중들 말이 맞고, 그러다 끝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손을 빼버린 비겁하고 무책임한 사람.
요즘이나 옛날이나 지도자라고 다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건 아닌가 봅니다. 진리 자체이신 당신이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라고 분명히 말해주는데도, "진리가 무엇이오?"(요한 18,38)라고 애먼 소리를 하는 걸 보면, 빌라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지 짐작이 가요. 아마 그도 나름대로는 멘붕이 왔겠죠. 하지만 그는 자기가 결정해야 했고, 자기가 책임을 졌어야 해요. 자기 소신대로 행동하지 않은 책임은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라고 두고두고 역사에 남게 되는 거지요.
제가 이렇게 한눈을 파는 사이에 당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죠. 미안해요, 저는 당신의 십자가 아래에 갈 수 없었어요. 너무 무섭고 두려웠어요. 그 자리를 지켰던 당신의 어머니, 당신의 친구들, 몇몇 여인들처럼 당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도저히 눈 뜨고 보고 있을 수가 없네요.
저는 도망가서 숨었어요. 당신을 지켜볼 용기가 없어 도망간 저를, 제 새가슴을 용서하세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p.s 참, 당신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셨던 용감한 당신 어머니께 부탁이 있어요. 9년 전, 이 땅에서도 아이의 죽음을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부모가 있습니다. 그날도 이 거룩한 주간 중의 하루였죠.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그 아픔이 도질 거예요. 같은 아픔을 겪으셨으니 그분들을 위로해 달라고, 그분들의 상처를 낫게 해달라고 부탁드려 주세요.)
# 토요일
같은 스물네 시간인데 특별히 신비로운 날이 있어요. 오전에는 죽은 듯 고요하지만 해가 지는 오후 무렵이 되면 조금씩 생동감이 느껴지는 그런 날이요. 폭신한 흙을 밀어내고 나오는 뾰족한 새싹, 천사의 겨드랑이에서 아이 젖니처럼 돋는 날개, 딱딱한 껍데기에 금이 가면서 아직 젖은 날개를 펴고 나오는 아기새. 그 어떤 이미지로도 표현되지 않지만 간질간질하고 뽀송뽀송한 느낌이 마음을 살금살금 간지럽히는 날.
아마, 한밤중, 새 불을 댕길 때 다시 살아난 당신을 만나기 위한 전조 증상 같은 건가 봐요. 이 날 밤, 도대체 뭐가 터져 나오려고 이렇게 간지러운 걸까요? 둥실 떠다니는 구름을 밟고 다니는 것처럼 기분 좋은 이 설렘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 알렐루야!
가끔 당신이 죽었다가 부활했느냐는 걸 진짜 믿는 거냐고 묻는 이들이 있어요. 당신께 고백하건대, 저도 한때 믿지 못했던 적이 있었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제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이렇게 대답할래요.
"그게 뭐가 이상해? 하느님이 다시 살아가는 건 식은 죽먹기보다 쉬운 것 아니야? 다시 살아나는 걸 못하면 그게 신이야?"라고요.
당신이 부활했다는 것, 너무도 당연해요.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요. 당신은 하느님인데 뭘 못 하시겠어요.
당신의 부활보다 더 신비로운 건, 하느님인 당신이 사랑 때문에 죽었다는 것, 죽을 만큼 저를 사랑했다는 거예요.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도망간 겁쟁이 저를. 당신을 제 '정배'라고 고백한 적이 없는 쌀쌀맞은 저를. 못 본 척하기 일쑤이고, 배반하기를 밥 먹듯이 하는 저를. 먼지 같은 저를. 죄인인 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