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두 살 위인 언니가 있다. 나는 어릴 때 '언니바라기'였다. 맨날 같이 놀던 언니가 여덟 살이 되어 국민학교에 입학하자 나는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되었다. 심심함을 참다못해 언니를 따라 학교 교실까지 들어갔던 모양이다. 마음씨 좋은 선생님은 쫄래쫄래 따라온 여섯 살짜리 동생에게도 빈 책상을 하나 마련해 주셨다. 그렇게 실감나는 학교놀이(?)를 하면서 1학년 1학기를 보냈다.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학급에서는 국어 시험을 보았다. 맹랑했던 여섯 살 꼬마는 자기도 시험을 보겠다고 했단다. 시험지 칸에 번호를 적는 난이 있었는데, 정식 학생이 아닌 내게 번호가 있을 리가 있나. 선생님에게 "저 번호 몇 번이에요?"라고 물었던 기억이 아스라이 날 듯 말 듯. 어쨌든 그 시험을 잘 보았다고 했다. 한글도 이미 뗐겠다, 선생님은 내친 김에 2학기부터 학교에 다니라고 했다. 초등학생으로서 내 인생은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되고 말았다, 입학식도 해보지 못한 채.
1학년을 마치고 2학년도 언니와 한 반에서 함께 다녔다. 키가 제일 작으니 난 늘 맨 앞에 앉았다. 하교 때 건널목을 건네주는 선생님의 핸드백을 대신 들어드리기도 하고, 학교 급식으로 나오던 빵은 가장 크게 떼어진 몫을 받았다. 작고 어리다는 이유로 총애를 받았으니, 언니는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3학년에 올라가면서 언니와 나는 오빠가 다니던 사립학교로 전학을 했다. 아들이라고 사립학교에 보내고 딸들은 공립학교에 보냈던 데 대해 언니가 강력하게 항의를 해서 얻어낸 결과였다. 언니는 전학을 가면서 동생과는 절대로 같은 학년으로 갈 수 없다고 버텼다. 그래서 나는 2학년으로 내려가 2학년을 한 번 더 다녔다. 다 아는 걸 또 배운다는 건 재미없는 일이었다. 그때 성적도 가장 좋지 않았다. 나는 이때의 경험을 들어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하곤 한다. 선행학습이 얼마나 아이에게 배움의 흥미를 잃게 하는지, 산 표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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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배우는 건 그렇게 쉬운 거였다. 지능지수 검사를 해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닌 내가 여섯 살 때 언니랑 놀면서 어느 순간 저절로 깨달았던 것처럼, 놀멍쉬멍 배울 수 있는 것. 굳이 가갸거겨 쓰인 커다란 포스터를 벽에 걸어 놓지 않아도, 냉장고에 붙인 ㄱ, ㄴ, ㄷ, ㅏ, ㅑ, ㅓ, ㅕ 같은 자석들이 없어도 본인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때가 되면 자연스레 배울 수 있게 되는 것.
어른이 되어 살아가다 보면, 한글이라는 이 추상적인 기호체계 말고도 알파벳이나 히라가나 등 세상에 있는 여러 글자들을 만나고 배우면서 살아가겠기에,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마음으로 느끼는 감각이 예민한 이 귀한 시절을 최대한 오래 즐길 수 있게 해 주자는 것이 어쩌면 공동육아 문해교육의 기본 원칙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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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대해 자세히 배웠던 때가 분명히 있었으리라. 그런데 발성기관인 입의 모양을 따라 자음을 창제했다는 것은 기억하지만, 모음을 만들 때 '천지인(天地人)'의 원리를 적용했다는 사실은 귓등으로 듣고 넘겼던가 보다. 한글 창제 원리를 다시 공부하면서 '아니, 이렇게 깊은 뜻이?' 하고 새삼 놀라워했다(이 과정에서 나의 배움에 큰 영향을 주신 통전교육연구소의 김희동 선생님께 다시금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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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천지인 원리를 어떻게 설명하지? 아니, 소리를 모양으로 표현하는 것을 이해시킨다고? 그게 가능해?'
처음에는 그저 모든 게 불가하다고만 생각했다. 한글을 어떻게든 떼게 하면 되지, 뭐 이렇게 어려운 철학적 원리까지 반영해야 하느냐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하늘, 땅, 사람이라는 우주의 원리는 가면 갈수록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름다웠고, 완벽했고, 조화로웠다. 동양 사상을 넘어,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일체론까지도 천지인으로 이해하고 나니 더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교육과정 안에 적절히 녹여내는 것이 과제였다. 그러나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전달해 보는 건 내 몫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는 아이들 몫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굳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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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시나 '이야기' 속에 비벼 넣기로 했다. 날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땅에서 땀 흘려 일하면서 땅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는 바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알고 있는 어느 평범한 엄마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그게 소금장수 이야기의 후속 편으로 이어지는 [엄마와 네 아들 이야기]다. 하늘, 땅, 사람 소리를 잘 듣는 엄마에게서는 '모음(母音)'을, 자기가 사는 세상의 모든 사물에서 글자의 형태를 찾아내는 아들들에게서는 '자음(子音)'을 만나게 된다.
#하늘 소리
'하늘 소리는 동그란 소리, 동그란 소리는 하늘에 있네. 하늘을 보면서 소리를 들어 봐, 아름답고 고운 하늘 소리 동그래.'
동그란 점으로 표현되는 하늘 소리를 만나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러 나간다. 진짜 하늘을 보기 전에는 여러 가지 하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누워서 본다. 하늘을 보려면 누워서 보는 것이 가장 편한데, 아이들과 밖에 나가서 눕기 적당하지 않아 택한 방법이다.
가끔 아이들은 영상에서 하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상상한다. 노을이 지는 하늘인데, "와, 용암이다!"라고 한다든지, 파란 하늘을 보고는 "바다다!"라고도 한다. 영상에 익숙한 아이들은 "나, 저거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 핸드폰으로 찍어서 만든 거야."라고도 한다. 뭘 상상한들 어떠리.
밖에서는 눈을 감고 손바닥을 하늘로 들어 만져보라고 한다. "하늘이 만져졌어?"라고 물으면 "응, 만졌어."라는 아이들이 반, 잘 모르겠다고 하는 아이들이 반이다. 잘 모르겠다는 아이들은 번쩍 안아서 다시 해보게 한다. 그럼 대체로 "만졌어!"라고 한다. 그리고 손가락 끝으로 아파트 꼭대기를 이어 한 바퀴를 그려 본다. "지금 그려본 하늘 모양은 어때?"라고 물으면 "동그래!"라고 답한다. 백발백중이다!
동그란 하늘 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이제 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차례다. 얘들아, 다음주에는 땅의 마음을 들여다보자꾸나. 땅의 소리는 어떤 모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