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야, 인문학이야?

우리말놀이(5) 너희는 바람 풍해라

by 글방구리

"한글을 배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한글을 가르치는 일이다."

이 말은 한글을 창제하신 위대한 세종대왕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고, 내가 한 말이다.


"어이구, 몇 번을 말했는데, 이것도 몰라! 다시! 기역! 니은!!!" 하고 등짝스매싱을 날려본 적이 있는 엄마라면, 이 말에 공감하리라. 그러나 나는 엄마로서 말한 것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앉혀놓고 가르치기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배워 버렸다. 아이들이 유난히 똘똘했던 건 아니고, 엄마가 바쁘다 보니 알아서 제 살 길을 찾은 듯하다.


그렇다고 보육교사로서 말하는 것도 아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십수 년을 함께 지냈어도, 아이들이 한글을 몰라서 내 속이 터져 본 일은 없다. 내 속만 아니라 아이들 속도 터지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면서 행복해하느라, 한글 따위에 신경 쓸 틈이 없었으므로.

어떻게 해야 한글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하며 머리를 쥐어뜯는 건, '특별활동 교사'가 된 작금의 나다. 아이들과 하루종일 생활하지 않으니 내게 주어진 주당 40분의 시간 안에서 수업 계획을 촘촘히 짜야한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흥미를 보이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진행했다. 반대로 아이들이 너무 피곤해하거나 힘들어하면 날짜를 바꾸기도 했다. 지금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40분이라는 시간은 내게 매우 짧기도 하고, 매우 길기도 하다.


하늘, 땅에 이어 사람의 모양을 알아볼 차례다. 사람이 똑바로 서 있는 모양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설명하기도 쉽고, 알아듣기도 쉽다? 진짜??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사람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들(비와 눈, 우박과 번개 등)도 있고,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려는 것들(새싹, 나무, 아지랑이 등)도 있지만, 하늘과 땅 사이를 채우고,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가장 깊은 존재는 '사람'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묻는다. "사람 소리는 어디서 들을 수 있지?"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사람!"

"그렇겠지?"

아이들에게 리본막대를 나눠주고 흥겨운 음악을 틀어준다. 내가 나이를 말하면 높이 흔들기도 하고, 낮게 흔들기도 한다. 백 살! 하면 더 높이, 세 살! 하면 허리를 구부리면서. 아이들은 그저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나 한다. 하늘까지 닿아 보자고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못 걷는 아기처럼 바닥에 누워보기도 한다.

한바탕 춤추듯 놀고 나서는 천지인의 원리로 모음이 만들어졌다는 짧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노랫말을 만들어 노래도 불러보았다.

"동그란 하늘 소리는 동그란 모양~ 널따란 땅의 소리는 평평한 모양~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람 소리는~ 사람처럼 똑바로 서 있는 모양~"


어떤 것은 어른에게는 무지 어렵지만 아이들에게는 훨씬 더 쉽기도 하다. 나는 '사람 소리'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 사람 소리와 사람이 하는 말은 다르다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아이들은 '사람 소리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소리도 사람 소리, 나무가 자라는 소리도 사람 소리라고 말한다면 아이들은 나를 한심하게 볼 수도 있겠다.


아이들은 태생이 영성적이고, 신의 속성에 더 가까워서인지 종종 교사들이 못 듣는 소리를 듣는다. 교사들이 못 보고 지나치는 걸 아이들이 잘 찾아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했던,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소리나 공벌레가 몸을 웅크리는 소리도 다 들었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내가 듣지 못한다고 해서, 사물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겠기 때문이다.

나무들, 꽃들, 새들처럼 살아 있는 생명체가 내는 소리는 물론, 우리 둘레에 있는 사물들도 그들만의 소리를 낸다. 이를 나는 '소리'라고 표현하나, 다루는 학문에 따라 전자기장이라든지, 주파수라든지 하는 그 분야의 전문 용어가 있을 테다. 어쨌거나 내가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해서 그들이 내는 소리를 소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예전에는 사람 소리를 만나는 이 수업 때, 돌박이 정도 되는 아기 둘이 자기들만의 '소리'를 내면서 열띤 토론을 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에서는 기저귀를 차고 한쪽 양말을 손에 든 두 아기가 냉장고 앞에서 뭐라 뭐라 얘기를 한다. 옹알이를 겨우 벗어난, "다다다다다다다!!!" 정도로만 들리는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데, 우리 귀에 들리는 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지만 실제로는 '대화'였다. 아이들 역시 아기들이 내는 의미 없는 소리의 조합 너머로 아기들이 나누고 있음직한 대화의 내용을 유추해 내기도 했다. "야, 저건 자기 양말이라고 하는 거잖아." "아니, 너 뭐 먹고 싶냐고 하는 것 같은데?"라는 등등.


ㄱ,ㄴ,ㄷ으로 자음을 가르치고, ㅏ, ㅑ, ㅓ, ㅕ로 모음을 가르치면 한글 가르치기는 쉬울 테지만. 사람이 내는 소리는 소리를 넘어 말이어야 하고, 그 말은 하늘과 땅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어야 한다는 데 집착을 하다 보니 수업 준비가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진다.

한글을 글자로만 생각한다면, 굳이 스스로 무덤을 팔 필요도 없겠다. 세상의 사물들을 지칭하는 어떤 기호들을 해석해 낼 줄 안다면 그 글자를 배우는 목적은 이루는 걸 테니까. 하지만 외국어는 그렇게 글자만 배운다고 해도, 모국어를 표현하는 한글은 뭔가 조금 더 깊이 있게 배우고 익혀야 하지 않나. 이를테면, 인문학적으로!


"말이야 막걸리야?"

"말이야, 방귀야?"

"뭔, 개 소리야?"

주변에서 참 흔하게 듣는다. 나 역시 간혹 욕설 대신 뱉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이런 말들은 하지도, 듣지도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사람을 존중하는 말은 몸에 밴 인격에서 나오고, 서로 소통할 줄 아는 능력 역시 말을 통해 몸에 깃들 것이므로, 말다운 말만 듣고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바담 풍해도 너는 바람 풍해라 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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