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아이들이 가장 예쁜 때는 '안 보다가 봤을 때'다. 한더위에 한 차례 쉬어가는 휴가 기간이 있었으니 더 새로운 마음으로 아이들과 만났다. 그러니, 수업은 당연히 잘 될 거라고, 기대했으나... 개뿔, 오늘 수업은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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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글쓰기 주제는 '휴가 기간에 만났던 고마운 사람'으로 정했다. 먼저 휴가 기간 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가족과 함께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기도 하고, 바닷가에서 여러 날 캠핑을 하고 온 친구도 있다. 호텔 수영장에서 놀다 온 아이도 있고, 부모님이 휴가를 내지 못해 할머니 댁에서 일주일을 지내고 온 아이도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족이 아닌 사람, 우리가 휴가 동안 만난 '누군가'를 생각해 보고, 그 누군가의 노고 덕분에 우리의 휴가가 무사하고 안전하고 즐거울 수 있었다는 것을 글로 써보게 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글감을 끌어낼 수 있도록 말을 꺼냈다.
"호텔도 가고, 계곡도 가고, 바다도 가고. 재미있었겠네. 그럼 그렇게 가면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가 제동을 건다.
"나는 아무도 안 만났는데요."
아, 그래. 내 설명이 부족할 수 있지. 다시 천천히.
"한번 생각해 보자. 호텔이 어디에 있었어? 차 타고 갔지? 거기에 가면서 만난 사람들이 있었잖아."
"없는데요."
또다시 하나씩 되물었다.
"호텔에 갈 때 차 타고 갔지?"
"차 타자마자 잤는데요."
"도착할 때까지 계속 잤어? 중간에 휴게소는 안 갔어? 휴게소에서 뭐 안 사 먹었니?"
"휴게소에 사람 없었는데요."
"휴게소에 들르긴 했어?"
"네"
"그런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휴가철인데 사람이 없었다고? 식당에 뭐 파는 사람도 없었어? 화장실에도?"
"없었는데요... 아니 아주 쪼오끔."
"그래? 그럼 호텔에는? 너희 가족만 있었던 건 아니잖아?"
"우리 가족밖에 없었는데요."
"계곡에도 정말 너희 식구들만 있었다고?"
"나는 식구라는 말 안 했는데요."
**이는 글을 쓰기 싫은 거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면 무조건 아니다, 없다고 대답했다. 내가 '가족'은 말고 휴가지에서 만난 사람에 대해 쓰자고 하니, 자기가 만난 사람은 모두 가족이라고 우기고 싶은 거였다.
**이와는 일단 말을 멈췄다. 여기에서 한마디라도 더하면 두 마디로 받아칠 것 같았다. 화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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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휴가를 보내면서 만난 고마운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오늘은 가족은 빼고. '나는 휴가로 가족과 함께 캠핑을 다녀왔다. 데려가 주신 부모님에게 고마웠다. 캠핑은 재미있었다. 또 가고 싶다.' 이렇게 틀에 박힌 글 말고. 이런 글은 1학년도 쓸 수 있어. 우린 3학년이니까 조금 다른 글을 써야겠지?"
내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이가 말을 받는다.
"내 동생 1학년인데 그런 글 안 쓰는데요."
기름을 붓는구만. 이제 더는 타오르는 화를 누를 수가 없다.
"아, 정말! 그러면 **이, ##이! 너희는 그냥 너희가 쓰고 싶은 거 써."
분위기가 싸해진 것을 나도, 아이들도 느낀다.
수업은 완전 폭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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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끝날 무렵에 **이를 따로 불렀다.
"**아, 너 혹시 말투 때문에 나한테만 혼난 거니? 그렇게 말해서 학교 선생님이나 엄마한테 혼난 적 없니?"
**이는 혼난 적이 있단다. 그러면 객관적인 것이다. 그런 말투나 태도는 고쳐야 마땅하다. 오늘 일에 대해 부모와 상담을 해야 하나, 잠깐 고민을 했다. 나 아닌 어떤 부처님 가운뎃토막 같은 교사라 할지라도, 교사를 열받게 할 만한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상담을 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두 시간짜리 사교육 선생'에 불과하니까. 아이들과 주 5일, 반나절 이상 함께 지내는 학교 선생도, 방과 후 선생도 아닌, 그저 일주일에 한 번 잠깐 만나는 특별활동 선생이니까. 오랫동안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하나를 보면 열이 보인다. 두 시간을 보면 그 아이의 학교생활이나 친구관계가 눈에 선하다. 그래도 나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음으로 선생으로서 내 책임을 회피하고, 나아가 진짜 '선생'이 되기를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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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던 새내기 교사가 학교에서 생을 마감한 비통한 사건이 있었다. 이십 대 초중반, 그 어리고 앳된 교사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가슴이 참 많이 아팠다. 그러면서 나는 공교육 현장이 그럴진대, 1학년보다 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사는 유치원, 보육교사들은 얼마나 더 힘들지 생각했다. 퇴직한 지 2년이 다 되어 오는데, 지나온 세월 동안 만났던 '힘든 아이, 힘든 부모' 생각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몇 년 전, 내가 맡은 반에 ADHD 진단을 받은 아이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던 그 아이. 아이의 엄마는 첫인사를 나누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내게 두툼한 출력물을 건넸다. 거기에는 ADHD에 대한 각종 자료가 들어 있었다. 공부를 해서 잘 봐달라는 뜻이었다. 그때 우리 반에 교사는 나 하나였고, 나는 그 아이와 함께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을 봐야 했다. 아이는 날마다 거친 말과 포악한 행동으로 다른 친구들을 공격했다. 그를 무서워하는 아이도 있었고, 멋모르고 대항하다가 물리는 일도 다반사. 공룡에 빙의된 그 아이는 친구들을 참 야무지게도 물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어떻게 지냈는지 날마다 상세히 보고받기를 원했다. 그 아이가 하원할 때 나는 그 아이의 일상이 어땠는지 엄마에게 브리핑해야 했고, 다른 아이들이 하원할 때는 그 아이 대신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상처를 낸 것은 그 아이였어도 막지 못한 건 내 죄였으므로. 공부하라 했지만 나는 공부할 시간은커녕, 하루하루 사는 데도 벅찼다(사실 날 공부시키려 했던 것도 기막혔다. 그 엄마에게 나는 전문성을 지닌 교사가 아니라, 자신이 가르쳐야 하는 돌봄 아줌마였던 듯). 출근 시간은 괴로웠고, 몸은 아파왔다. 급기야 심한 우울증으로 삼 개월 만에 퇴직했다. 다 내 잘못인 줄 알았다.
ADHD도 병인데, 아픈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교사로서 역량이 부족한 거라고. 남들은 다 잘하는데 내가 못하는 거라고. 내 탓이라고, 내가 못나 그렇다고, 끝없이 자책했다.
"선생님 잘못이 아니에요. ADHD는 엄마도 힘들어하는 병이에요. 엄마도 못 하는 걸 어떻게 선생님이 해요? 선생님 탓이 아니에요."
내 발로 찾아가 받은 정신과 상담 첫날, 의사 선생님은 내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펑펑 울었다. 그 후 상담은 계속되었고, 치료 종료를 받은 후에 나는 다시 아이들 앞에 섰다. 꼬박 2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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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 집에서 새는 것은 남에게 그리 피해를 주지 않고, 또 대체로 눈 감아줄 수 있다. 똥을 싸도 내 새끼 것은 예쁘거늘, 그깟 물이 샌다고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거나, 흘러넘치다 못해 쏟아붓는 정도까지 된다면 그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이 된다. 그래서 교사는 바가지가 샌다고 말해 줄 수 있어야 하고, 부모는 그것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듣기 싫다고 해도.
그리고 바가지가 새기 시작한 건, 집에서부터라고,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인원의 아이들, 그 아이들 수보다 훨씬 더 많은 부모를 감당해야 하는 선생님들에게는 위로가 먼저여야 한다. 어른도 위로를 받아야 그다음에 '나는 잘못한 게 없나'하고 반성하고 성찰하게 된다. 아이나 어른이나, 그게 순서다.
두 시간짜리 글방 선생의 일이 그저 밥벌이가 아니기 위해서 '의미'가 필요했다. 비로소 의미를 찾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