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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원이 싫다

2023년 9월 12일 화 / 사적인 일은 사적으로 풀자

by 글방구리

이십 년 전, 큰아이를 보낸 어린이집은 주택가 한가운데에 있었다. 부모협동보육시설이 아직 법제화되기 전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그렇듯, 부모들은 발 벗고 나서서 어린이집을 꾸려나갔다. 부모, 교사, 아이가 모두 행복한 어린이집을 꿈꿨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집과 담벼락을 함께 쓰고 있는 이웃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어야 했다. 당시 부모와 교사에게 가장 어려웠던 사람은 바로 옆집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하루 건너 한 번씩은 어린이집 대문을 두드렸다.

"여기 아이들은 잠도 안 재우나? 약이라도 먹여 재워라." 하고 교사들에게 막말을 쏟아붓고 갔다는 말을 들으면 속에서 열불이 나곤 했지만, 그래도 부모들은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만날 때마다 90도 폴더 인사는 물론, 뇌물로 갖다 바친 떡만 해도 한 트럭은 될 게다. 어린이집을 불법적으로 운영한 점이 없으니 사실 '법대로 해라'라고 한다 해도 꿀릴 일은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도 약주 한잔하고 나면 소리를 지르고 갈지언정, 경찰에 신고를 한다거나 민원을 넣는 일은 없었으니, 그렇게 서로 미운 정을 주고받으며 이웃이 되어 갔다.


작은아이가 다닌 어린이집은 내가 교사로 함께 근무한 곳이다. 이곳 역시 주택가에 있고, 이웃과 담벼락을 공유하고 있는 곳이다. 큰아이가 다닌 곳에 비해 규모가 두세 배는 더 컸으니 소음도 그만큼 더 컸을 텐데, 이웃집의 항의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곳을 책임지고 있던 원장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민원'이었다.

단오잔치를 앞두고 공원에서 강강술래를 하면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갔다. 삼교대하는 남편이 와서 자고 있는데 잠을 잘 수가 없다, 아이가 시험인데 공부가 안 된다, 하는 이유들이었다. 가장 황당했던 민원은 코로나 첫 해 때 일어났다. 인근 아파트 놀이터에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갔는데, 마침 놀이터에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끼리는 안에서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는 '밀접접촉자'들이니, 마스크를 벗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아이들에게 잠깐씩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했는데, 아파트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어떤 사람이 우리를 신고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떤 종류든, 일단 민원이 들어가면 경찰차가 출동했다. 어린이집 앞에 경찰차가 서 있으면 아이들은 "와, 경찰차다!" 하고 환호했지만, 민원이 들어갈 때마다 원장의 심기는 매우 불편해 보였다. 민원이 거듭 들어가면 구청에서 감사가 나올 테고, 뭐라도 걸리면 지원금이 끊긴다고 했다. '민원'이라는 두 글자는 떠올리기 싫은 단어였다.


그러던 어린이집에 혜성처럼 나타난 한 교사가 있었다. 그 교사의 별명은 '민원녀'. 아이들이 자주 가는 놀이터의 청소 상태가 불량해도, 아이들이 건너는 건널목의 신호등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도, 공원에 목줄 없이 개를 데리고 나오는 아저씨를 발견했을 때도, 민원녀는 다 해결해 주었다. 어디에 어떻게 민원을 넣어야 빨리 처리되는지 귀신같이 알고 있었다. '일일 일민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민원을 자주 넣는다고 했다. 민원녀의 능력을 알고 난 뒤, 우리는 그녀를 통해 많은 어려움들을 쉽게 해결했다. 민원은 적군의 무기가 아니라, 공권력을 이용할 줄 모르던 우리에게 새로 도입된 최첨단 비밀병기 같았다.

그러나 두 해쯤 지난 뒤, 어린이집 운영 체제가 바뀌면서 서운함이 많았던 민원녀는 상급 기관에 어린이집과 관련된 민원을 넣었다고 했다.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마음을 다쳤다.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 같아도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됐다. 옆에서 보기에는 '그걸 꼭 민원으로 해결해야 했나?'라는 의문이 들었으나, 민원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민원녀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으리라. 나처럼 '관청 울렁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주고 싶지도, 받고 싶지도 않은 게 민원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요구를 가장 쉽게 관철할 수 있는 방법으로 민원을 택한다.


남의 손을 빌려야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물이 새면 배관기사를 불러야 하고, 에어컨에 문제가 생기면 전기 기사나 전문가들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사달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되도록 내 손으로 해결하면서 살고 싶기는 하다. 서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처럼 '마음'이 필요한 문제들을 해결할 때는 더욱더 직접 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교사와 부모간이든, 아이와 교사간이든, 아이와 아이간이든.

이해가 어렵고 만나기 싫다는 느낌이 강하면 강할수록, 당사자가 직접 해결해야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마음의 문제는 고장난 에어컨을 고치는 것처럼 외주로 해결할 수 없기에 그렇다. '마음'과 '민원'은 ㅁ과 ㅇ이라는 같은 초성으로 시작되지만, 서로 가야 할 길이 다르다. 마음은 만나서 마음으로 풀어야 하고, 민원은 공적인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내 아이와 관련된 사적인 일을 민원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최근 있었던 여러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가슴이 아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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