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핼러윈을, 나는 위령의 날을

by 글방구리

보이지 않으면서 나한테 막강한 힘을 부릴 수 있는 존재, 그래서 두렵기도 하지만 호기심도 생기는 존재들이 아이들한테도 있다. 귀신과 도깨비 같은 것들이다. 산신령이나 옥황상제, 혹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은 하느님이나 천사들을 떠올릴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괴물이나 도깨비, 귀신 같은 존재에 더 매력과 궁금증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핼러윈데이'라는 날을 아이들은 많이 기다린다. 외국문화, 서양문화보다는 전통문화와 세시절기를 앞세우는 우리 터전에서는 단 한 번도 핼러윈에 대해 말을 꺼내 본 적이 없거늘, 아이들은 마치 크리스마스처럼 그 날을 준비하고 기다린다. 대부분 어린이집 외에 학원을 다니거나, 손윗 형제가 있는 경우 더 잘 알고 있다. '코스튬'이라는 복장으로 소비를 조장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당당하게 사탕을 얻으러 다니게 하는 문화가 나는 별로 탐탁지 않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부모 세대만 해도 생각이 많이 다른가 보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니 모이게 해주려고요."라든지, "재미있는 외국 문화라 해마다 챙겨주고 있어요."라고 하는 반응들이 그렇다.

어젯밤 우리 동네 아이들도 그렇게 몰려다녔다. 호박등을 들고, 각종 옷을 챙겨입고, 집집마다 다니며 초인종을 누른다. '우리집에도 오면 어쩌지?' 하는 내 고민을 아는 듯 아이들이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지는 않았는데, 동네 아이들의 축제가 재미있어 보였는지 창밖으로 보고 있던 딸내미는 일부러 과자를 들고 나가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오기도 했다.

요즘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크리스마스 때 집집마다 다니면서 캐럴을 부르던 문화도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그리스도교에 바탕을 둔 문화다. 우리 문화 중에는 이렇게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복을 빌어주는 문화가 없나 생각해 본다. 문득 떠오르는 것은 정월대보름 날 하는 지신밟기다. 액막이타령에 맞춰 걸판지게 사물악기를 두드리면서 한 해의 복을 빌어준다. 또 섣달그믐날이 되면 '야광귀'를 막기 위해 문 앞에 체를 높이 걸어두는 풍습도 있다. 이런 풍습들도 모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의식하면서 조심스레 살아가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혼자가 아닌, 이웃 사람들과 함께.

11월은 죽은 이들과 통공을 나누는 위령성월이다. 첫 날은 죽어서도 행복한 모든 성인들을 기리고, 내일 위령의 날은 아직 행복한지 어떤지 모르는, 모든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이미 거창하게 치르고 왔을 핼러윈을 나는 오늘과 내일, 뒤늦게 그 의미를 곱씹으며 보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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