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는 개미를

2023년 10월 5일 / 신혜정 [이토록 우아한 제로웨이스트 여행]

by 글방구리

자전거는 개미를 보면서 갈 수 있어서 좋다.
화석 연료가 아니라 내 지방을 연료로 쓰는 거라 좋다.(20)
...
여행을 나와 지금껏 자전거를 계속 탈 수 있었던 건 구름과 바람과 나무 덕분이다.
정말 그게 아니었음 불가능했다. 나무 그늘에, 나무와 풀숲이 보내주는 공기와 바람에,
시원한 물에, 사람들에게 그렇게 받아놓고.
그거면 됐지. 그 감사함만으로 계속 갈 수 있지. 차고 넘치지.(91)
...
"괜찮았어. 부자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라 가난해지는 게 목표였거든.
그냥 주고 또 주고 싶어. 받지 않고 주고 싶어. 주는 것이 내게는 실천이야.
그걸로 마음의 화를 없애고 그래."
주고 또 주고 싶다는 것은 아속 마을 사람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포티락 스님의 가르침이자 불교의 정신이다.(138)
...
제로웨이스트 또는 레스웨이스트라는 좋은 말은 현실에서는 사소하고 번거롭고 귀찮고 티도 나지 않는 노력이 된다. 아주 작은 것을 위해서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것, 그것이 내 삶과 터전을 가꾸어가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155)

신혜정, [이토록 우아한 제로웨이스트 여행]


추석 연휴에 자전거를 꺼냈다.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지,

바람이 빠진 바퀴는 계단 앞에서 한숨 쉬는 내 무릎처럼 주저앉아 있고,

새까만 먼지는 더께더께, 구석구석마다 녹이 잔뜩.

대야에 세제를 풀고 철 수세미로 박박 문질렀다.

물을 뿌리고 몸을 닦아주기만 해도 자전거의 나이가 십 년은 젊어졌다.

옛이야기 속에 나오는 '젊어지는 샘물'은 아니어도

때를 씻어주는 물의 힘은 이토록 세다.


젊은 여자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1년 반 동안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게다가 '제로웨이스트 여행'이라니.

이럴 때 쓰는 말이 '넘사벽'이 아닐까?

책을 읽으며 감탄했고, 부러웠고, 존경스러웠다.

엄지가 절로 척척 올라갔다.


책 덕분에 깨끗해진 자전거를 타고 산책길에 나선다.

하지만 거기까지.

십 분도 채 가지 않아, 산 초입에 묶어놓고 나는 내 두 발로 산을 오른다.

개미를 보면서 가기에는 마음이 바쁘다.

오늘은 어디에서 얼마나 만나려나, 반짝거리는 알밤.


며칠 동안 모은 알밤 한 바가지는 쪄서 먹었으니

오늘부터 줍는 것은 청설모의 겨울 양식이다.

나 같은 할매가 샅샅이 찾아 주워가기 전에 내가 거둬다 겨울에 나눠주어야지.


하루종일 입 속에, 마음속에 담고 싶은 이 책 속의 한 구절.

주머니 속에 든 알밤을 만지며 읊어 본다.


"그거면 됐지.

그 감사함으로 계속 갈 수 있지.

차고 넘치지."


나는 자전거로 여행을 갈 수도 없고, 산을 올라갈 수도 없다. 그래도 나는 자전거가 좋다. 자동차 운전면허는 반납할 때가 머잖아 오겠지만, 자전거는 더 오래오래 타고 싶다.
오늘은 요만큼! 설모야, 잘 보관해 뒀다가 눈 올 때 갖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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