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밥은 제가 차려 볼게요

프롤로그 / 입맛에 맞으시면 같이 먹어요

by 글방구리

요리에 젬병인 저는 레시피를 봐도 금세 잊어버립니다. 분명히 지난번에는 맛있게 만들어 먹었던 요리였는데도요. '여기에 마늘이 들어갔던가? 고추장으로 간을 했던가, 간장으로 했던가?' 알쏭달쏭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땐 지체 없이 유튜브 영상을 찾아봅니다. 요즘엔 검색만 잘하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음식을 다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영상이 올라와 있네요.


저는 이름난 셰프나 전국 맛집 식당마다 입간판으로 서 있는 유명한 요리사보다는 귀촌한 시골댁이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올린 요리 영상이 더 정스럽고 좋습니다. 재료를 섬세하게 다루지 못할 것 같은 투박한 손의 남자가 유머러스한 말솜씨를 곁들여 올리는 영상도 좋아하고요. 그분들은 발음하기도 어려운 희귀한 양념들이 아니라, 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친근한 재료를 사용해서 쉽게 알려주시거든요.


제 밥은 제가 차려보려 합니다. 저는 태어난 지 사흘 만에 가톨릭 신자가 되어 육십갑자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복음서'라는 요리를 먹고살았습니다. 그런데, '영혼의 양식'이라는 이 말씀들을 제 손으로 차려먹지 못하고 남이 차려주는 밥상만 받고 살았네요. 스스로 해보려 하니 밥물이나 제대로 맞출까, 엉뚱한 해석으로 재료를 버려놓는 것은 아닐까, 서툰 솜씨로 차려내는 이 밥을 누가 먹어는 줄까, 왠지 첫발 떼기가 겁이 나기도 합니다.


재료는 두 가지 언어로 손질할게요.


가톨릭 교회에서는 일요일마다 전례력에 정해진 대로 4 복음서에 나와 있는 복음을 조금씩 나눠 읽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가톨릭 신자들이 먹을 한 끼 밥상의 재료는 똑같이 주어진 것이지요. 복음은 '가해, 나해, 다해'라고 정해놓고 삼 년 주기로 돌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말씀들은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런 맛도 못 느끼겠어요. 맛만 아니라 뭘 먹었는지도 잊어버리곤 합니다. 미사 시간에 분명히 복음을 읽었고, 그와 관련된 사제의 강론도 들었지만 성당 문을 나서는 동시에 제게서 사라지는 거죠. 식당에서 계산하고 나오면서 '내가 먹은 게 뭐더라?' 하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저는 밥상을 차리기에 앞서 재료를 탐색하는 시간을 넉넉히 가져보려 합니다. 방법은 두 가지 언어, 한글과 독일어로 먼저 필사를 해보려 합니다. 여태까지는 듣거나 읽는 데만 치중해 왔거든요. 그런데 한글이야 그렇다 치고, 왜 독일어냐고요? 저는 수십 년 전 독문학을 공부했어요. 전공이라고는 하지만 독일에 가본 적도 없고, 독일어를 말할 줄도 모릅니다. 독일어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독일어가 다른 언어에 비해 조금 더 익숙하기 때문이에요.

중국에 가본 적도 없고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우리 동네 중국요릿집 사장님도 고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짜장면과 짬뽕만큼은 기가 막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을 보면서 용기를 냈습니다. 한글이 제게 너무 익숙해서 놓칠지도 모르는 어떤 말씀들을 조금은 낯선 언어의 도움으로 '새롭게' 바라보고 싶어서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요리사면서,


이 시대에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겸손하신 셰프,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저를 암암리에 도와주시리라 기대합니다. 그분이 발표하신 교서나 회칙, 여러 강론과 대담집 등은 제가 곁에 두고 '갖은양념'처럼 활용할 예정입니다. 감히 셰프의 요리 실력을 흉내 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요리에 대한 그분의 철학과 삶의 태도를 자주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영상이 대중화되기 전에는 요리책을 닳도록 들춰봤던 것처럼요.


제 요리는 비빔밥과 닮았을지도 모릅니다. 냉장고 칸칸마다 숨어 있던 여러 가지 재료들이 한 그릇 안에서 섞여 있다는 점에서요. 사제 수도자들이 날마다 바치는 '시간전례(성무일도)'를 위시하여 교회 안의 각종 기도 방식인 이냐시오 영성수련, 향심기도, 거룩한 독서 등을 귀동냥, 눈동냥으로 들어왔어요. 매 주일마다 영적으로 살찌워 주셨던 여러 본당 신부님들의 훌륭한 강론들까지, 그간 제가 배워온 것들로 재주를 한번 부려 보려고요.


이렇게 성경을 소재로 삼아 글을 쓰기는 합니다만, 제가 특별히 열심한 신자는 아니랍니다. 그래서 연재하는 동안만이라도 좀더 부지런을 떨어 수많은 레시피를 써내신 교회 안의 모모한 학자 신부님들, 수녀님들, 평신도 신학자들의 신학적, 영성적 도움에 기대볼까 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영민하지 못하고 둔한 제 미각도 섬세하게 살아나겠지요.


가톨릭 교회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천연재료 외에도 감칠맛을 내주는 맛 내기 가루들도 가끔은 사용해 보려고요. 좋은 시, 에세이, 그림, 영화 등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알게 하는 고마운 비법들이 제 부족한 글쓰기 실력을 숨겨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밥상을 차린 수고는 식구들이 맛있다며 남김없이 먹어줄 때 기쁨과 보람으로 돌아옵니다. 다음에 또 해달라는 말을 들으면 어깨춤이 절로 나지요. 제 밥은 제가 차려 먹겠다는 각오로, 그리고 혹시 제가 차리는 밥상을 기다리는 분이 있다면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부엌에 들어가렵니다.


무엇을 시작해도 기분 좋고 설레는 대림절이 시작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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