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일 / 마르코복음 1,29-39
저는 십 년이 넘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집에서 투병하시다가, 호스피스로 옮기신 지 닷새만에 세상을 뜨셨죠. 제 속마음을 뒤집어보지 않은 남들은 요즘 세상에 시어머니 모시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효부 났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아요, 제가 얼마나 고초당초 맵디 매운 '며느리살이'를 시켰는지 말이에요.
며느리살이만큼이나 눈칫밥을 먹는 게 '사위살이'가 아닌가 합니다. 요즘에는 주로 육아 도움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장모님'이나 '장인어른'을 모시고 사는 사위들이 많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딸네 집보다 고된 며느리살이를 감당하신 이유도 아마 보이지 않는 사위살이가 있었기 때문일 거라 짐작합니다. 아, 그렇다고 제 시누이나 그 남편 되는 분이 어머니한테 못되게 했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저 누구에게도 신세를 지고 싶어 하지 않는 어머니가 가장 어려워하던 사람이 사위였다는 거죠.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오늘 복음에서 보면 시몬 베드로의 장모님도 사위살이를 했나 봅니다. 게다가 열병까지 걸려 누워 있으니 장모 입장에서는 얼마나 가시방석이었을까요. 베드로라고 마음이 편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베드로의 부인에 대해 성경에 언급된 바는 없습니다만,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부인을 내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가기로 한 자신의 결정에 대해 고민이 많았겠죠. 부인이 바가지를 긁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수심에 찬 얼굴을 보셨을 테고, 회당에서 나와 곧바로 베드로의 집을 찾으심으로써 베드로의 발목을 잡는 이 곤란한 상황을 정리해 주십니다.
그런데 장모만 고쳐주고 떠나려고 했던 예수님의 계획(성서에는 자세히 씌어 있지 않지만 저는 그렇게 묵상합니다)은 어그러지고 맙니다. 장모의 치유 소식을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이 온갖 병자와 마귀 들린 이들을 데리고 왔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시고 고쳐주십니다. 아마 베드로의 장모에게 하셨듯이,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어루만져 주셨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행동들이 이번에는 베드로가 아닌, 예수님 당신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될 일임을 알지 못하시고요.
얼마 전, 대장암 투병 중인 친구와 문자를 나눌 일이 있었습니다. 열두 번의 긴 항암치료를 마치고 나니 눈에 보이는 암세포는 다 없어졌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게 숨어 있을 암세포 때문에 항암치료를 연장해야 할지 자연요법으로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했습니다. 항암치료를 더 하자니 내성과 부작용이 걱정되고, 자연치료를 하자니 자녀들이 불안해한답니다. 참 어려운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치 앞만 내다볼 수 있어도 결정하기 어렵지 않을 텐데, 우리에게는 미래를 내다볼 능력이 없는지라 선택의 기로에서 난감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알 수 없을 때는 자신의 가치와 인생 목표에 비추어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최선'입니다.
예수님은 미래를 알고 계셨을까요? 당신이 어찌어찌 살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또 부활할 것을 선명히 알고 계셨을까요? 저는 왠지 아닐 것 같아요. 당신이 해야 할 일이나 가치, 인생 목표는 있었겠지만, 예수님도 당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전망만 갖고 계셨다고 생각해요. 그러기에 여기에서 주저앉을지, 바로 떠나야 할지 답을 구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홀로 기도하신 게 아닐까요. 예수님도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요.
인생이 예측한 대로 술술 풀려서, 발걸음을 앞으로만 힘차게 디디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살다 보면 우리 발목을 잡는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예상치 않은 병이 덜컥 걸리기도 하고, 사고가 나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직장을 잃기도 하고, 억울한 누명을 쓸 때도 있습니다. 또 제 친구처럼 삶과 죽음이 오가거나 매우 커다란 고통이 수반되는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점이 오기도 합니다.
'이제 내 발목 잡힐 일이구나' 하고 생각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예수님에게 부탁해 보면 어떨까 싶네요. 베드로의 발목 잡힐 일은 예수님이 단번에 처리해 주신 것을 기억하면서요. 그래도 미진해 보인다면, 이른 새벽에 홀로 외딴곳을 찾아 기도하신 예수님을 따라 해 보는 방법도 있겠네요. 그래요, 기도, 그게 우리에게 최선일 거예요.
시몬의 병든 장모를 고치시다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갔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많은 병자를 고치시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도 여행을 떠나시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Bald darauf gingen sie aus der Synagoge und kamen in das Haus des Simon und Andreas mit Jakobus und Johannes. Und die Schwiegermutter Simons lag zu Bett und hatte Fieber; und sogleich berichteten sie Jesus von ihr. Da trat er zu ihr, faßte sie an der Hand und richtete sie auf; und das Fieber verließ sie, und sie diente ihnen.
Am Abend aber, als die Sonne untergegangen war, brachten sie alle Kranken und Besessenen zu ihm. Und die ganze Stadt hatte sich vor der Tür versammelt. Und er half vielen Kranken, die mit vielerlei Gebrechen beladen waren, trieb viele böse Geister aus und ließ die Geister nicht zu Wort kommen; denn sie kannten ihn.
Und am Morgen, schon vor Tage, stand Jesus auf und ging hinaus. Und er ging an einen einsamen Ort, um dort zu beten. Simon aber une die, die bei ihm waren, eilten ihm nach. Und als sie ihn fanden, sagten sie zu ihm: Alle suchen dich. Er aber sagte zu ihnen: Laßt uns anderswohin gehen, in die nächsten Städte, damit ich auch dort predige; denn dazu bin ich gekommen. Und er ging hin und predigte in ihren Synagogen in ganz Galiläa und trieb die bösen Geister a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