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연중 제3주일 / 마르코복음 1,14-20

by 글방구리

책을 읽다가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렴풋이 알듯 말듯하거나,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 확신할 수 없는데, 저자가 그에 대한 확신을 줄 때 그렇습니다. 답을 줄 것 같다는 저자의 책을 일부러 찾아 읽은 게 아니라, 우연히 읽게 된 책일 때 그 흥분은 배가되지요. 나 말고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모르지만 책을 쓴 저자가 그렇다고 하면 내가 틀린 건 아니다, 하는 마음이 들어서겠죠.


요즘은 영적 독서로 읽고 있는 [예수평전](김근수, 동녘)을 읽으며 그런 쾌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복음서 해설'이 아니라 '예수 평전'이라는 접근만 봐도 뭔가 남달라 보이지요? '초대교회'라는 말 대신 '예수 운동'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새롭습니다.

나는 예수의 인간성에 감탄했다. 그렇게 인간적인 분은 신성이 있음에 틀림없다. 가난한 사람을 선택한 예수에게도 감동했다. 인간적인 사람은 가난한 사람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사람만 인간적인 사람일 수 있다.(7쪽)

책을 읽어 가다 보면 무릎을 칠 내용들이 더 많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세례자 요한의 위상에 대해서 확인한 것도 제게는 큰 소득이었어요. 보통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한 사람, 예수님의 인척 정도로 언급되지요. 아마도 성경에 요한이 예수님을 일컬으며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든가,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는 등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는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로 살아가야 할 삶의 철학을 세례자 요한에게 배우셨을지도 몰라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세례자 요한은 공공연히 선포하고 다니셨고,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을 따라다니던 제자였을 수 있다,는 추정을 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세례자 요한에게 직접 세례도 받으신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관련하여, [예수평전]에도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 운동과 복음서 저자들에게 이론적으로 풀어야 할 주제가 적어도 두 개 있었다.
1.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설해야 하는가.
2. 예수에게 스승 세례자 요한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설해야 하는가.(27쪽)

연중 제3주일의 복음은 예수님이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모으고 부르는 장면은 늘 감동적입니다. 파격적이기도 하고요. 부를 만한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고, 다닐 만한 사람과 함께 다니시는 것 같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면 늘 그 부분에 집중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에 앞서, 첫 구절부터 마음에 확 박히더라고요. "요한이 잡힌 뒤에"라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이 존경하고 사랑하고 따르던 스승님이 갑자기 구속되신 거예요. 예수님의 심정이 참으로 참담하셨을 것 같습니다. 스승이었던 분에게서 더는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없게 되었으며,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책임과 역할을 시작해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합니다. 드디어 당신의 '때'가 온 것이지요.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이 촉구했던 '회개'와 함께, '하느님의 나라'와 '복음'이라는 메시지를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그분의 지역구는 갈릴래아였습니다. 갈릴래아는 예수님 자신처럼 열심히, 성실하게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 곳입니다. 사람 냄새가 폴폴 풍기는 곳입니다. 그만큼 상처 입은 사람, 소외당하는 사람, 억울한 사람, 가난한 사람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 지역 토박이들로 어업에 종사하던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에게 손을 내미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나 종, 부하, '꼬붕'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자신과 함께 세상을 바꿔갈 동료가 필요했습니다. 돈도 없고 백도 없던 예수님은 그저 '나 하나만 믿고 따라올 동지'들을 찾으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초대에 주저함 없이 '곧바로' 응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제안한 것이 다른 권력자들과는 달랐기 때문일 겁니다. 돈을 더 벌게 해주는 것도, 안락한 삶을 보장한 것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해 준다는 것도 아니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지금 종사하는 그 일을 의미 있게 만들어 보자는, 그 길을 함께 가보자는 초대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지체 없이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친구처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나선 그들의 행동으로 예수님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힘이 나셨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삼 년 동안 살면서 예수님의 카리스마를 알아보고 그분을 스승으로 모셨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내내 동료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밤이슬을 맞으며 노숙을 하고, 그들보다 더 나은 음식을 혼자 드시지 않았습니다. 체포되기 전에는 공공연히 '친구'라고 부르기도 하셨고(요한 15,15 참조), 동지였던 유다스가 배반할 줄 아셨으면서도 그를 먼저 내치지 않으셨습니다. 마침내 당신도 스승처럼 체포되어 사형당하게 되었을 때는 그들 앞에 무릎 꿇고 발을 씻어주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제자들은 동지이자,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동료 시민'이었습니다.


사족입니다만, 요즘 어느 정치인에 의해 '동료 시민'이라는 말이 저잣거리로 불려 나왔습니다. 그 말의 어원이 어디에서 나왔든, 그리 함부로 사용될 말은 아닌 듯합니다(그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Francis Lee'라는 작가님의 글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한동훈이 말하는 ‘동료 시민’은 어디에 있나? (brunch.co.kr)).

동료 시민이라는 멋진 말이 야욕과 허세로 가득 찬 어느 정치인의 시그니처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말은 예수님처럼 진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지도자,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지도자에 의해 발설될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닐 것입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거짓 예언자, 거짓 지도자의 '동료 시민'이 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오늘 묵상을 마무리하며 저는 제 이름을 걸고 복음을 다시 써 보고 싶어졌습니다. 성경이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는 같은 활자로 박혀 있어도 사람들 개개인의 삶 속에 들어와 다른 꽃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미사 시간에는 '마르코에 의한 거룩한 복음'이 봉독되겠지만, 이 말씀이 제 삶 안에서는 '소피아(제 세례명!)가 전한 거룩한 복음'이라고 다시 꽃피게 되는 거지요.

혹여 '신학적으로' 잘못이 있다 한들 뭐 어떻습니까, 제가 교회의 수장도 아닌데요. 그저 영향력도 별로 없는 일개 브런치 작가의 소설 같은 묵상이라고 하면 그만인 걸요.

존경하고 따르던 스승님이 부당하게 체포되셨다는 소식이 들리자, 예수님은 참담한 마음이 드셨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당신에게 주어져 있던 본분을 드디어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셨다. 예수님이 내세운 기치는 이런 것이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의 지역구는 강남 3구가 아니었다. 육체노동으로 살아가기에 부자보다는 가난한 소시민들이 더 많았던 곳이다. 그곳에는 식당을 하는 사람, 물건을 만드는 사람, 농사를 짓는 사람, 아이를 돌보는 사람 등 성실히 벌어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여러분이 일하는 모습을 보니 삶의 참 가치도 찾으실 수 있는 분들이군요. 저와 함께 그 일을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제가 앞으로 할 일에 동료 시민이 되어 주십시오." 그러자 그들은 흔쾌히 동의하였다. 그들은 곧바로 예수님을 따라나섰다. 예수님도 힘이 난 것처럼 보였다.

갈릴래아 전도를 시작하시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Jesu Predigt in Galiläa
Nachdem aber Johannes gefangen gesetzt worden war, kam Jesus nach Galiläa und predigte das Evangelim Gottes und sprach: Die Zeit ist erfüllt, und das Reich Gottes ist herbeigekommen. Tut Buße und glaubt an das Evangelim!

Die Berufung der ersten Jünger
Als er aber am Galiläischen Meer entlangging, sah er, wie Simon und sein Bruder Andreas ihre Netze ins Meer warfen; denn sie waren Fischer. Und Jesus sagte zu ihnen: Folgt mir nach: ich will euch zu Menschenfischern machen! Sogleich ließen sie ihre Netze liegen und folgten ihm nach. Und als er etwas weiterging, sah er, wie Jakobus, den Sohn des Zebedäus, und sein Bruder Johannes im Boot die Netze flickten. Und sogleich rief er sie, und sie ließen ihren Vater Zebedäus im Boot mit den Tagelöhnern zurück und folgten ihm n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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