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별일, 별 볼 만한 일이!

주님 공현 대축일 / 마태오복음 2,1-12

by 글방구리

사람이 쓰는 용어를 보면 그 사람의 '연식'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서도 그렇고 교회에서도 그래요. '미사 첨례, 묵주 신공, 조과 만과' 이런 용어를 알아들으시는 분은 필경 '구교우'이실 겁니다. '성모여, 너를 천당에까지~'라는 성가 가사가 불경스럽기는커녕 오히려 더 정스럽게 여겨지는 분, 악보가 없어도 연도를 가락에 맞춰 얼추 따라 부르실 수 있는 분들도 교회 안에서는 연식이 되신 분들이죠.


가톨릭에 입교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신 분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요즘 용어도 낯선데 예전 용어는 한술 더 뜬다고 생각하실 것도 같네요. 저도 교회 용어가 '섞어비빔밥'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로마가톨릭'의 혈통을 이어받았으니 라틴어는 기본이고, 일제강점기와 국한문혼용시대를 거치면서 조성된 어려운 한자어들이 많았죠. 성서 공부를 할 땐 희랍어와 히브리어도 종종 등장하고, 교회서적에서는 가장 많은 교황님을 배출하고 우리나라 학자신부님들의 최애(?) 유학지인 이탈리아어도 심심찮게 마주칩니다. 글로벌한 시대이고, 언어마다 가진 뉘앙스에 차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이었던 토착화의 여정이 반영되려면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같습니다(이런 글을 쓰는 저도 독일어 성경을 병행해 읽고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어쨌거나, 오늘 기념하게 되는 '주님 공현 대축일'도 예전에는 '삼왕래조 첨례(축일)'라는 이름으로 지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을 알게 된 동방 박사들이 예물을 들고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것을 기념하는 날인데요. '삼왕래조(三王來朝)'가 세 명의 왕이 예수님께 와서 경배를 드렸다는 데 초점을 맞춘 말이라면, '공현(公顯)'은 예수님이 공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심을 나타내는 데 방점이 찍혀 있는 말입니다. 고향 사람들도 아니고 먼 이방 지역에서 찾아온 박사들에게 공공연하게 나타내 보여주신 것이니, 특별한 의미를 둘 만한 축일이지요.


동방 박사가 찾아온 이야기는 잠 자기 전에 어린 딸내미에게 들려주었던 옛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별을 발견하고 따라온 박사들은 헤로데에게 가서 왕이 태어나신 곳을 묻고, 헤로데는 아기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하고, 박사들은 다시 별을 따라가서 예수님을 만나고, 정성껏 가져온 예물을 바칩니다. 기쁨에 차서 경배를 마친 박사들이 헤로데 왕의 명령을 지혜롭게 패스하고 자기들 고향으로 되돌아갑니다. 왕, 별, 황금 등 귀를 쫑긋 세울 소재에, 가슴을 졸아들게 하는 클라이맥스도 있고, 위기를 넘기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스토리가 잘 구성된 한 편의 동화입니다. 그래서인지, 동방 박사가 뭘 하던 사람들인지, 가져온 선물은 무엇이며 그 안에 담긴 뜻은 무엇인지, 성서에는 나오지 않은, 즉 변형, 과장, 왜곡의 가능성이 충분한 각종 정보들이 덧붙여 전해집니다. 일례로, 성서에는 '박사들'이라고 할 뿐 콕 집어 세 사람이라고 씌어 있지 않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면서 언제부터인가 동방 박사는 당연히 세 사람이었다고 믿게 되었거든요. 그들의 이름은 가스파르, 발타사르, 멜키오르라고도 하고요.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사'라는 표현대로 다방면에 걸출한 학식을 지닌 서생이었는지, 아니면 밤하늘만 바라보던 '천문 연구원'이었는지, 별자리로 점을 쳐서 돈을 모은 '전문 점성가'였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교회가 '삼왕래조'라는 용어를 더는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 지금은 그들을 '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네요. 제가 읽은 독일어 성경에는 '현자(Weisen)'라고 표현되어 있어요. 독일어 성경에서도 헤로데를 칭할 때는 '왕(das König Herodes)'인데 동방 박사들은 현자라고 표현한 걸 보면, 최고 권력자 자리에 있던 왕은 아니었나 봅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최고 권력자인 헤로데의 태도에 주목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몇 번을 읽어도 참 이해할 수 없는 왕이더라고요. 동방 박사들은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2,2) 왔다고 하면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을 찾아요. 만약에 여러분이 그런 말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어요? 저라면 궁금해서라도 "도대체 그게 어떤 별입니까?" 하면서 당장 밖에 나가 하늘부터 봤을 거예요. 그러나 헤로데는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불러 물어보기만 할 뿐, 별을 직접 보지 않습니다. 별을 따라왔다는데도 헤로데는 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나 원 참, 이런 별일이 다 있네요.


성탄절 밤에 이미 증명된 것처럼 구세주를 알아보느냐, 알아보지 못하느냐 하는 것과 사회적 지위는 관련이 없네요. 어디에 사느냐도 상관없고요. 양을 치는 목동은 알아보는데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자인 왕은 알아보지 못하잖아요. 멀리서 온 동방 박사들은 알아보는데 가까이 살던 헤로데는 헛다리만 긁는 걸 보면,

구세주를 알아보느냐 알아보지 못하느냐는
이것 하나에만 달려 있나 봅니다.

"별을 보는 사람인가,
별을 보지 않는 사람인가"


헤로데에게는 별을 볼 기회가 없었을까요? 그럴 리가요. 하느님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고 햇볕을 내리쬐어 주시는 분이신데요. 별이 동방 박사들을 곧바로 베들레헴으로 인도하지 않고,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을 거쳐 가게 하신 걸 보면 알 수 있죠. 하느님은 헤로데에게도 별에 관심 좀 가져보라고 동방 박사들을 보내신 것 같아요. 악인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주시는 것이 우리는 이해하기 힘든, 차원이 다른 '하느님의 그 큰 호의'(로마 2,4)가 아닌가 싶습니다.


별을 찾지 않는 권력자는 별을 보았다는 진리를 듣고도 무시해 버릴 만큼 어리석어지나 봅니다. 새로운 왕에게 권력을 잃을까 봐 불안한 헤로데는 동방 박사들에게 아기를 찾으면 알려달라고 하죠. 어딘지만 알아내면 당장 체포 영장이라도 발부할 모양입니다.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좌불안석인 모습이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네요. 별이 떴다는 것, 구세주가 나셨다는 것도 '가짜 뉴스'로 몰아가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두 살 이하의 모든 아기를 학살하는 잔인무도한 역사가 현대판으로 반복될까 봐 섬뜩해집니다.


그러나 별을 보는 사람들은 별빛이 깃든 사람의 내면까지 볼 수 있게 됩니다. '뭣이 중헌지' 아는 동방 박사들은 별바라기가 되어 힘들고 먼 길을 걷습니다. 마침내 허름한 마구간에서 해산한 어머니와 아기에게서 구세주의 빛을 알아보고 주저함 없이 땅에 엎드려 경배를 드립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별빛을 땅에서, 내 눈앞에서 직접 보면 어떤 느낌일까요? 상상만으로도 참 신비롭고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경에는 그 별이 졌다는 말이 없어요. 사라졌거나 떨어졌다는 말도, 다시 나타났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별은 지금까지도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것은 아닐는지요. 세상일에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하늘을 쳐다보기를 간절히 기다리면서, 우리를 비추고 있는지도요.

날마다는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주변에 밝힌 불을 끄고 별을 바라봐도 좋겠어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지만 일부러라도 별 볼 일 한 번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어 보는 거지요. '주일'이라고 부르는 하루만이라도 그렇게 삶의 항아리에 별빛을 채우는 날로 지낸다면, 인생에 별일, 별 볼 만한 일 하나는 해본 것 아니겠습니까?



동방박사들의 방문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Die Weisen aus dem Morgenland
Als Jesus in Betlehem im Judäa geboren war, zur Zeit des Königs Herodes, siehe, da kamen Weise aus dem Morgenland nach Jerusalem und fragten: Wo ist der neugeborene König der Juden? Wir haben seinen Stern im Morgenland gesehen und sind gekommen, um ihn anzubeten. Als das König Herodes hörte, erschrak er und mit ihm ganz Jerusalem, und er ließ alle Hohenpriester und Schriftgelehrten des Volkes zusammenkommen und fragte sie aus, wo der Christus geboren werden sollte. Und sie antworteten ihm: In Betlehem in Judäa: denn so steht´s durch den Propheten geschrieben(Micha 5,1): Und du, Betlehem im jüdischen Land, bist keineswegs die kleinste unter den Fürchstenstädten in Juda: denn aus dir wird der Fürst kommen, der mein Volk Israel weiden soll.
Da rief Herodes die Weisen heimlich zu sich und erkündigte sich genau bei ihnen, wann der Stern erschienen wäre, und schickte sie nach Betlehem und sagte: Geht dort hin und erkundigt euch genau nach dem Kind: und wenn ihr´s findet, so sagt mir´s wieder, daß auch ich hingehen und es anbeten kann. Als sie nun den König gehört hatten, machten sie sich auf. Und siehe, der Stern, den sie im Morgenland gesehen hatten, zog vor ihnen her, bis er über der Stelle stand, wo das Kind war. Als sie den Stern sahen, wurden sie hocherfreut, gingen in das Haus und fanden das Kind mit Maria, seiner Mutter, fielen nieder und beteten es an, öffneten ihre Schätze und schenkten ihm Gold, Weihrauch und Myrrhe. Und Gott befahl ihnen ihm Traum, nicht wieder zu Herodes zurückzukehren; und sie zogen auf einem andern Weg wieder in ihr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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