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정에 '급'을 매겨 본다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 루카복음 2,22-40

by 글방구리

'외짝교우'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부부 중의 한 사람만 성당에 다니는 경우를 일컫는 용어죠. 저는 솔직히 이 용어가 싫습니다. 혼자 성당 다니는 게 뭐 어때서요. 부부라고 생각이 꼭 같아야 한다는 법이 없잖아요. 가족의 종교가 같아야 하는 법도 없고요. 굳이 이런 용어를 만들어서까지 마치 하자가 있는 가정인 양, 그렇게 특정 지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하지만 오늘 글에서는 저도 이 용어를 잠깐 사용할게요. 편의상!


저는 외짝교우는 아닙니다만, 온 식구가 다정하게 손 잡고 주일마다 미사 참례를 가는 그런 가정도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자녀들의 신앙 교육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 신앙을 물려주어야 한다."라는 말을 들으면 좀 찔립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성당에 가라고 등을 떠밀지 않았거든요(제가 제 신앙을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든지, 제가 아이들을 덜 사랑하는 것이든지 둘 중 하나일 텐데요. 어느 쪽이라고 해도 마음은 무겁네요.).


가족 구성원의 이념과 신앙, 신념과 철학이 같다면 대화가 조금 더 잘 통하겠지요. 다른 의견으로 갈등이 일어나지 않고, 서로 죽이 딱딱 맞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명절 밥상머리에서 가장 다툼이 많이 일어나는 주제가 정치와 종교 문제 아니던가요? 외짝교우들은 가족에게 전교하는 것을 누구보다 본인이 원할 거예요. 그러니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데리고 와라, 하고 압박 주지 말고 눈총과 구박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신앙을 지켜가는 것만으로도 아낌없는 칭찬을 해 주자고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이 되면 외짝교우가 아니더라도 죄책감을 느끼는 분들이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저만 그럴까요?). 세 분을 본받아서 거룩한 가정을 이루라는 훈계를 주로 듣게 되기 때문이죠. 동정녀의 몸으로 구세주를 낳으신 마리아,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그리스도의 양부가 되신 요셉이 이루신 가정을 모범으로 삼으라는 말씀인데, 솔직히 그게 가당키나 합니까? 별일도 아닌 걸로 부부싸움을 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녀들이 서운하여 야단도 좀 쳐본 그런 사람이라면(접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표양에 따라 성가정을 이루라는 가르침은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성가정은커녕 가족 간의 문제로 고해성사 볼거리만 쌓여갑니다.


외적인 관계만 걸림돌이 아니지요. 마리아와 요셉이 이루신 가정은 우리네가 이룬 가정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분들은 '동정'이시고 '정결'하시다면서요. 성 호르몬이 뿜뿜 나오는 남녀가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정결한 부부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참 애매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배우자 이외의 혼외관계니,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오는 '음란마귀' 같은 것은 애써 물리치며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거룩한 성가정의 기준을 부부관계를 배제한 가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이렇게 출발부터 다른 예수님의 가정을 똑같이 따라 하라고 성가정 축일을 만든 건 아닐 거예요.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아기를 낳아 기르며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이어가라는 것이 사람의 소명임을 생각할 때, 죄책감을 느끼라고 성가정을 모델로 제시한 것도 아닐 테고요. 그보다는 예수님이 하느님이시기는 하지만, 인간이 되어 사신 어린 시절, 소년 시절, 청년 시절은 우리네 가정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을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는지요. 부모에게 생존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아기로 태어나신 성탄절, 그다음 주일을 성가정 축일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 힘을 보탭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 복음을 읽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네요.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신 것은 모세의 율법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두 분은 당시의 법을 지키신 거예요. '법대로' 사신 거죠. 요즘에 원칙과 법, 공정과 상식이라는 말이 매우 제멋대로 적용되는 바람에 '법'이라는 말에서조차 거부감이 생기기는 합니다만, 두 분은 당시 사회가 정한 법을 착실히 지키려고 애쓰신 분이라는 거예요. 예수님의 가정은 부자가 아니었어요. 어쩌면 굉장히 가난했는지도 모릅니다. 노동자가 일을 접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도, 없는 살림에 산비둘기 집비둘기를 준비해서 봉헌한 것도 그분들이 착실하게 법을 지키며 살아온 분들임을 증명합니다.


시메온과 한나의 예언이 나오는 말씀에서는 이런 상상이 되더라고요. 아기를 안고 주민센터에 출생 신고를 하러 갔더니, 동네에서 존경받던 노인들이 아기를 보며 한 마디씩 축복을 보태는 모습이요.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해요. "어허, 그놈 참 잘 생겼구려. 이담에 큰 인물이 되겠소. 물론 키우는 중에 어려움이 없지는 않겠지만, 아이들은 다 그렇게 부모 속 썩이면서 크는 거라오. 부모는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지켜봐 주면 되오. 부모의 사랑을 받고 바르게 자란 아이들이 세상의 기둥이 되는 게 아니겠소."


예수님의 유년 시절에 대해서는 아주 간단하게만 소개되어 있어요.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2,40)"고요. 독일어 성경에서는 이 부분이 "Das Kind aber wuchs und wurde Stark, voller Weisheit, und Gottes Gnade war bei ihm."라고 되어 있는데, 저는 제 마음대로 이렇게 읽었어요. "아기는 자랐고, 강해졌고, 지혜가 가득 찼고, 하느님의 은총이 그의 곁에 있었다."


아주 짧지만 핵심은 다 들어 있는 문장이에요. 아이를 키워 본 부모들은 아기가 자라고, 튼튼하고, 지혜롭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음을 안답니다. 아이를 '키웠다'고는 하지만 사실 부모들이 한 일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것이지,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가 없음도 알아요. 하느님의 은총이 아이 곁에 있었기에 아이는 자랄 수 있었던 거죠.


저는 제 나름대로 성가정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보고 싶어졌습니다. 물질적으로 부유하지 않지만 탈세만 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법만 지켜도 성가정의 기초는 놓은 거라고요. 게다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가족에게 뭔가 양보하고 참고 사는 게 있다면, 중급 성가정이고요. 그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 덕분에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고, 강하고, 지혜롭다면 예수님의 가정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고급 성가정이라고요.

어때요, 동의하시나요?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라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시메온과 한나의 예언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예수님의 유년시절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Jesu Darstellung im Tempel. Simeon und Hanna
Und als die Tage ihrer Reinigung nach dem Gesetz des Mose um waren, brachten sie ihn nach Jerusalem, um ihn dem Herrn darzustellen, wie im Gesetz des Herrn geschrieben steht.(2 Mose 13,2,25): "Alles Männliche, das zuerst den Mutterschoß durchbricht, soll dem Herrn geheiligt heißen, " und um das Opfer darzubringen, wie es im Gesetz des Herrn heißt:"ein Paar Turteltauben oder zwei junge Tauben.(3 Mose 12,6-8).
Und siehe, ein Mann lebte Jerusalem, mit Namen Simeon: und dieser Mann war gerecht und gottesfürchtig und wartete auf den Trost Israels, und der heilige Geist war bei ihm. Und ihm war vom heiligen Geist eine Offenbarung zuteil geworden, er sollte den Tod nicht sehen, bevor er den Christus des Herrn gesehen hätte. Und er kam vom Geist getrieben in den Tempel. Und als die Eltern das Kind Jesus in den Tempel brachten, um mit ihm zu tun, was nach dem Gesetz Brauch war, da nahm er ihn auf seine Arme, lobte Gott und sprach: Herr, nus läßt du deinen Diener in Frieden sterben, wie du gesagt hast: denn meine Augen haben deinen Heiland gesehen, den duvor allen Völkern bereitet hast, ein Licht, zur Erleuchtung den Heiden und zur Ehre deines Volkes Israel.
Und sein Vater und seine Mutter wunderten sich über das, was von ihm gesagt wurde. Und Simeon segnete sie und sagte zu Maria, seine Mutter: Siehe, dieser ist für viele in Insrael zum Fall und zum Aufstehen bestimmt und zum Zeichen, dem widersprochen wird-und auch durch deine eigene Seele wird ein Schwert dringen.-, damit die Gedanken vieler Menschen offenbar werden.
Und dort war eine Prophetin, Hanna, eine Tochter Phanüels, aus dem Stamm Asser: die war hochbetagt. Als junges Mädchen hatte sie geheiratet und nur sieben Jahre in der Ehe gelebt und war nun eine Witwe von vierundachtzig Jahren: die wich nicht vom Tempel und diente Gott mit Fasten und Beten Tag und Nacht. Die trat zur selben Stunde auch hinzu, pries Gott und sprach von ihm zu allen, die auf die Erlösung Jerusalems warteten.
Und als sie alles nach dem Gesetz des Herrn erfüllt hatten, kehrten sie wieder nach Galiläa in ihre Stadt Nazareth zurück. Das Kind aber wuchs und wurde Stark, voller Weisheit, und Gottes Gnade war bei ihm.


여기까지 써서 브런치에 발행하고 난 뒤, 공지영 작가의 신간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하면서 쓴 작가의 책에서 성가정에 관한 내용이 있어서 옮겨 적어 봅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생각해 보면 요셉 성인은 살아생전 천사를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꿈에서만 보였다. 심지어 가브리엘 천사는 요셉에게가 아니라 마리아에게만 허락을 구하고 두 분이 다 상의, 결정하시고(?) 나서 겨우 요셉의 꿈에서 약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뿐이었다.
요셉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서 저는 뭔가요? 그저 들러리? 심부름꾼? 보디가드? 저는 그저 대체 가능한 익명의 한 남자일 뿐인가요?"
그런데 요셉은 거기에 순종한다. 심지어 성경 전체에는 그가 했다는 말 한마디 기록되지 않았다. 성경을 통틀어 이런 커플은 없다. 설사 있다고 해도 대개 남자는 속세의 권력을 가지고 있고, 아니면 여자는 지혜로운 경우였다. 성경 전체 아니 인류 역사 전체에서 둘 다 모두 훌륭한데도 남자가 작아지고 여성이 이렇게 중요한 기록으로 남는 일은 이들 커플이 거의 유일하게 느껴진다. 요셉 성인은 당연하고 확연한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기득권을 버리고 마리아가 처한 그 모든 운명을 품어 주었다. 그것은 얼마나 크나큰 위대함이었을까. 그는 참으로 하느님 아들의 아버지가 될 모범생이었으며 또 먼 훗날 생겨난 수많은 아버지, 그리고 의붓아버지들의 모범이 될 만한 분이었다.

성가정.
그 거룩한 가정은 실은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와, 미혼모였던 그 엄마, 그리고 그 아이의 의붓아버지가 이룬 가정이었다. 몹시 모던하지 않은가 말이다.
나중에 생각한 것이지만 모든 진리 혹은 진실한 것들은 모던하다. 죄 많은 인간들은 보통 그것에 아직 도달하지 못하기에 그것은 늘 미래의 것이기 때문이다.
(공지영,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해냄, 107-10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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