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하면, 5백 원?

연중 제2주일 / 요한복음 1,35-42

by 글방구리

제가 교사로 일했던 공동육아 어린이집에는 '아마 활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마'라는 말은 아빠와 엄마에서 한 글자씩 따온 말로, '아마 활동'이라는 말은 다양한 부모 참여 활동을 일컫습니다. 요즘에는 '열린 어린이집' 등 부모에게 어린이집을 개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부모가 운영과 교육에 직접 관여하는 조합형 어린이집으로 시작된 공동육아가 부모 참여활동에 선구적 역할을 했음에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


아마 활동 중에는 부모가 하루종일 아이들이 지내는 방에서 지내는 '종일 아마'라는 게 있어요. 그날만큼은 자기 아이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 보는 것입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를 친구들과 공유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부모는 자기 아이를 조금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수 있게 됩니다. 시간이 많지 않은 부모들에게는 '반일 아마'라고 해서 하루 중 일정한 시간만 와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교사 입장에서 부모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라서, 아마 활동을 하기 위해 온 부모가 부담스러울 때가 많지요. 부모가 온종일 같이 먹고, 놀고, 낮잠 자고 한다는 것은 교사가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다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사람은 '~척할' 수가 없어요. 친절한 척, 다정한 척, 잘하는 척. 교사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면 가장 민감하게 알아채는 사람이 아이들이거든요.


그런데 부모들이 제발 아마 활동을 좀 했으면 좋겠다고 바랄 때가 있습니다. 부모가 교사를 못 미더워한다든지, 일방적으로 자기 아이의 말만 믿는다든지, 아이에 대한 객관적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경우에 그렇지요.

일반적인 부모들은 아이들이 지내는 일과를 딱 하루만 함께 지내봐도 아이의 성향이나 특성뿐 아니라 그 방의 분위기도 대충은 알게 됩니다. 관찰력이 좋거나 상황 판단력이 빠른 부모는 교사가 어떤 철학으로 방을 이끌어 가고 있는지도 파악합니다. 아이들 간에 일어나는 갈등상황을 해결하는 모습, 아이들이 교사에게 보이는 신뢰와 의존 등 하루의 삶이 제공하는 정보는 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세밀합니다. 그래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시시콜콜 문제를 삼던 부모가 하루 아마 활동을 하고 난 뒤 교사의 든든한 협력자가 된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문지방을 넘어 들어와서 눈으로 보고 나면, 부모들은 분명히 달라지거든요!


오늘 복음의 첫 단락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뭐 이런 동문서답이 있나' 하고 생각했어요. 요한은 예수님을 본 뒤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뭘 찾느냐고 묻는데, 그들은 난데없이 어디에서 묵고 있는지를 물어요. 예수님은 와서 보라고 하고 그들은 함께 갑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왠지 자연스럽지가 않게 느껴졌어요.


요한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으면 제자들은 그게 무슨 뜻이냐고 요한에게 물었어야 했을 것 같은데, 제자들은 무작정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러면 다음 대화는 이런 식으로 이어져야 자연스럽지 않나요?

예수님: 당신들은 요한의 제자들인데, 왜 나를 따라옵니까?
제자들: 우리 스승님이 당신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해서요. 그게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요.
예수님: 그러니까 그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그다음 대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그래서 당신들이 찾는 게 누군데요?
제자들: 저희는 스승님이 당신을 눈여겨보시기에 당신이 뭔가 알고 계실 것 같아서요.
예수님: 제가 당신들이 찾는 그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인가요?
제자들: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당신은 지금 어디 가는 길인데요?
예수님: 그걸 왜 묻죠?
제자들: 당신을 따라가 보면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요.

이런 식으로 서로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행동을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온 그들을 보시고, 무작정 '와서 보라'며 당신이 묵으시는 곳으로 데려갑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고 하니, 하루해가 다 저물녘이었을 겁니다. 그때 갔던 제자 중 한 명은 안드레아였고, 그는 그날의 체험을 형인 베드로에게 간증합니다.


세상에, 이건 '반일 아마'만 하고도 180도로 달라진 상황이에요. 게다가 신입 조합원까지 데리고 온!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부르신 오늘 요한복음의 내용과 공관복음에 등장하는 내용은 사뭇 다릅니다. 제가 각 복음서를 일일이 분석할 능력도 없거니와, 어떻게 다른지 여기에서 비교해 볼 마음도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나의 사건이 여기저기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셀 수 없이 많으니까요.

'도대체 어떤 게 맞는 거야? 뭐가 진짜야?'라는 궁금증이 생긴다면, 그때가 바로 직접 가서 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못 미더우면 와서 보라는 초대를 수락하고, 예수님이 묵으시는 그곳의 문지방을 직접 넘어보는 거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문 밖에서 들여다보는 것과, 그곳에 직접 들어가서 경험해 보는 것에는 어마무시한 차이가 있습니다.


'궁금하면, 5백 원!'이라고 했던 지나간 유행어를 패러디해 봅니다.


궁금하면, 못 미더우면, 직접 가서 보자고요.


첫 제자들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그곳에 다시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Die ersten Jünger
Am nächsten Tag stand Johannes wieder dort und bei ihm zwer seiner Jünger; und als er Jesus vorübergehen sah, sprach er: Siehe, das ist Gottes Lamm! Und die beiden Jünger hörten seine Worte und folgten Jesus. Jesus aber wandte sich um und sah, wie sie ihm folgten, und fragte sie: Was sucht ihr? Sie aber antworteten ihm: Rabbi-das bedeutet: Meister-, wo ist deine Herberge? Er sagte zu ihnen: Kommt, und ihr werdet sehen! Sie kamen und sahen´s und bleiben an diesem Tag bei ihm. Es war aber um die zehnte Stunde. Einer von den beiden, die Johannes zugehört hatten und Jesus gefolgt waren, war Andreas, der Bruder des Simon und sagte zu ihm: Wir haben den Messias gefunden.-Das bedeutet: der Gesalbte.- Und er führte ihn zu Jesus. Als Jesus ihn sah, sprach er: Du bist Simon, der Sohn des Johannes; du sollst Kephas heißen.-Das bedeutet: F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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