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다! 앵그리 지저스?

사순 제3주일 / 요한복음 2,13-25

by 글방구리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는 화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며 각종 '갑질'을 하기도 했어요. 엄마와 허구한 날 말로 다투다가 마침내 손찌검까지 가는 '남편 갑질'부터, "내가 돈을 벌어 너희들 먹이고 입히니 내 뜻을 따라야 하느니라"라고 했던 '부모 갑질', 직장에서 일하는 사위를 불러 집안 잡일을 시키는 '장인 갑질'까지 편했던 관계가 별로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갑질은 가족에서 끝나지 않았어요. 관청에 일을 보러 가도,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다가도 아버지의 화는 시도 때도 없이 발화되었습니다. 엄마는 아버지가 언제 또 화를 낼까 싶어 전전긍긍했습니다. 엄마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며 대신 사과하고, 달래고, 머리를 조아리곤 했어요. 그런 모습이 제게는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저는 화를 내는 사람을 참 무서워했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그가 내는 화가 제 탓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느끼면서요.


몇 년 전 우울증 치료를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2년 여 이어진 상담을 하면서 제 우울증의 가장 밑바닥에 숨어 있는 감정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라고 하시더군요. 화를 내는 아버지에 대한 화가 내 병의 근원이라니. 화내는 아버지가 그토록 싫었으면서 나 역시 화를 품고 살아왔다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제 속내를 오랫동안 솔직하게 들었던 전문가의 진단이니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제게도 있고, 아버지에게도 있고, 심지어 예수님에게도 있던 '화'라는 감정. 예수님이 성전에서 상을 뒤엎으면서 난동(?)에 가깝게 화내신 사건을 성경에 기록한 것을 보면, 화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예수님이 왜,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화를 내셨는가, 하는 건 잘 생각해야겠지만요.


'성전 정화 사건'이라고 일컬어지는 오늘 복음을 사순시기에 배치한 것은 예수님의 몸을 성전에 비유하셨고 사흘 안에 다시 세워질(부활할) 것을 예언하신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이 진짜 당신 죽음과 부활을 내다보시면서 성전을 정화하신 것일 수도 있지만, 저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 후대 성서 저자들이 이 사건을 돌아보면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닐까, 하는 데 무게를 둡니다.


예수님은 그냥 화가 나신 거예요. 거룩해야 할 성전이 자기 잇속을 차리는 장사치들로 북적거리는 꼴을 보시고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으셨던 거죠. 성전을 성전이지 못하게 하는 상황에 화가 나신 걸 겁니다. 성전은 성전다워야 하고, 사람은 사람다워야 하는데, 개인의 잇속을 챙기느라 성전 안에 포진한 사람들이 성전 본래의 존재 목적을 흐리게 하고 있어서 격노하신 겁니다.


그런 와중에 예수님은 대상에 따라 화를 조절하십니다. 소와 양을 파는 부자 상인들은 무섭게 위협하시고(끈으로 채찍을 만드셨다고 하시만 예수님이 그 동물들을 때려 쫓았다는 말씀은 없어요), 거들먹거리며 돈놀이를 했을 환전상들의 돈은 쏟아버리셨어요. 아마 환전상들은 자신들의 돈을 줍기 위해 무릎을 꿇고 땅바닥을 기어 다녀야 했을 겁니다. 그런데 비둘기를 파는 자들한테 보이는 태도는 달라요. "그것들을 치우라고,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라고만 말씀하십니다.


저희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재래시장 안에 떡볶이를 아주 맛있게 하는 가게가 있습니다. 입소문이 나서 일찍 가지 않으면 맛을 보기도 어려운 곳입니다. 시장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이 좁아서 저는 시장에 가려면 차를 멀찍이 대놓고 걸어가곤 합니다. 떡볶이 집까지 가다 보면 봄나물을 뜯어와 바구니에 넣고 파는 할머니들을 만납니다. 집에서 직접 담근 고추장아찌를 페트병에 넣어 팔기도 하고, 청국장이나 도토리묵 같은 것을 만들어 오는 할머니도 계시죠. 저는 오늘 복음에서 '비둘기를 파는 자들'이라는 말씀을 읽으며 그 할머니들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들판에 지천으로 널린 나물을 뜯어다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할머니들이나, 비둘기 몇 마리 잡아와 성전 앞에 펼쳐 놓고 가난한 이들에게 팔았을 장사치들이나 비슷한 상황 아니었을까 싶은 거죠. 예수님은 그런 분들에게까지 소리를 지르고, 엎어버리고, 화를 내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다시 아버지의 화로 돌아갑니다. 아버지의 화는 누구를 향한 화였나, 무엇을 위한 화였나, 왜 가족들에게 상처를 남기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의 화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주지 않으면, 아버지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아버지 앞에 설설 기지 않으면 여지없이 폭발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고, 아버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화였지, 엄마를 엄마답게, 자식들을 자식답게 지켜주기 위해 낸 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화는 화라기보다는 폭력이었던 거지요.


요즘 뉴스를 보면 화 나는 상황이 많습니다. 특히 정치권을 보면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집니다. 대통령은 자꾸 뭔가에 '격노'한다는데, 그 격노가 과연 무엇을 위한 격노인지 생각해 봅니다. 국민을 국민답게, 나라를 나라답게 지키기 위한 격노가 아니라면 그 역시 폭력이겠지요. 권력자들은 소와 양보다 더 많은 것을 지니신 분들일 테니, '앵그리 예수님'한테 채찍으로 쫓겨나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참으로 걱정입니다.


성전을 정화하시다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모든 사람을 아시는 예수님
파스카 축제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분께는 사람에 대하여 누가 증언해 드릴 필요가 없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
Die Tempelreinigung
Und das Passafest der Juden war nahe, und Jesus ging hinauf nach Jerusalem. Und er fand im Tempel Leute, die Rinder, Schafe und Tauben verkauften, und die Wechsler, die an ihren Tischen saßen. Da machte er eine Geißel aus Stricken und trieb sie alle zum Tempel hinaus samt den Schafen und Rindern und Schüttete den Wechslern das Geld aus und stieß die Tische um und sagte zu denen, die die Tauben verkauften: Trag das weg und macht nicht das Haus meines Vaters zum Kaufhaus! Seind Jünger aber dachte daran, daß geschrieben steht(Psalm 69,10): Der Eifer um dein Haus wird mich fressen.
Darauf fragten ihn die Juden: Was zeigst du uns für eine Zeichen dafür, daß du dies tun darfst? Jesus antwortete ihnen: Brecht diesen Tempel ab, und in drei Tagen will ich ihn wieder aufrichten. Da sagten die Juden: Dieser Tempel ist in sechsundvierzig Jahren erbaut worden: und du willst ihn in drei Tagen aufrichten? Er aber sprach von dem Tempel seines Leibes. Als er nun von den Toten auferstanden war, dachten seine Jünger daran, daß er dies gesagt hatte, und glaubten der Schrift und dem Wort, das Jesus gesagt hatte.
Als er aber am Passafest in Jerusalem war, glaubten viele an seinen Namen, weil sie die Zeichen sahen, die er tat. Aber Jesus vertraute sich ihnen nicht an; denn er kannte sie alle und hatte nicht nötig, daß man ihm Zeugnis über den Menschen gab; denn er wußte, was im Mensche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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