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브로맨스?

사순 제2주일 / 마르코복음 9,2-10

by 글방구리

저는 K-드라마를 자주 봅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주 듣습니다. 부엌일을 하면서 틀어놓고 듣다가, 배우의 표정이 궁금해지면 눈을 돌려 화면을 보곤 합니다. 라디오처럼 듣기만 해도 스토리의 전개는 얼추 따라갈 수 있습니다.


요즘 부엌에서 청취하고 있는 드라마는 [세작, 매혹된 자들]이라는 사극이에요. 드라마에서 두 주인공은 바둑판을 가운데 놓고 바둑의 수를 읽으며 대화를 나눕니다. 드라마 중반까지 남자 주인공은 여주인공의 남장을 알아채지 못한 채, 우정인지 애정인지 모를 감정을 쌓아갑니다.


제가 드라마의 완성도를 평할 깜냥도 안 되고, 부엌에서 칼질하며 설렁설렁 보는 드라마인지라 자세한 리뷰를 올리려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오늘 복음을 읽으며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서 오간 스위트한 브로맨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말문을 이렇게 열어봅니다.


'예수님에게 브로맨스라니!' 불경스럽게 들릴 수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억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사실 저도 그동안 오늘의 복음 말씀을 이런 식으로 묵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고, 모습이 찬란하게 변모하셨고,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셨고, 그 모습에 압도당한 베드로는 예수님께 눌러살자고 했다가 하느님으로부터 핀잔을 먹었고,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말라는 함구령을 들었다. 이는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는 와중에 부활을 예견하며 보여주신 비장하면서도 영광스러운 사건이다." 이렇게 정석대로만 묵상하고 이해했죠.


하지만 오늘 저는 이 재료로 다른 요리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같은 소고기라도 오븐에 구워 우아하게 썰어먹는 스테이크를 만들 수도 있지만,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푹 삶는 육개장을 만들 수도 있잖아요. 어차피 이 글은 강론대에서 선포되는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마음 가는 대로 써보는 짝퉁 강론이니까요.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 너머 부활까지를 내다보시면서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열두 제자 중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가시죠. 예수님이 이 삼인방을 편애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에게 더 각별히 의지하셨던 것 같기는 해요. 지금은 특별한 장면을 보여주려고 데려가시지만, 그분이 겟세마니에서 가장 고통스러울 때 당신 곁에서 함께 기도해 주기를 바라셨던 사람도 이 삼인방이니까요(마르 14,33 참조).


먼저, 이런 질문을 해보았어요. '예수님은 이날 처음으로 변모를 경험하신 걸까? 만약에 처음이 아니었다면?'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사람이기도 하기에, 몸이 달라지고 일찍이 돌아가신 선조들을 만나는 '부활'의 경험을 했다면 본인도 굉장히 놀라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복음서에 나온 예수님은 당신의 변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고, 제자들만 겁에 질립니다.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이런 장면을 직접 보여주셨을까요? 예수님은 당신이 앞으로 당할 어마어마한 고통 앞에서 두려우셨을 겁니다. 그 와중에도 그분은 남아 있는 벗들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겪을 때 오늘의 영광을 기억하라고 '부활 미리 보기'를 제공하시기로 마음먹으신 거죠. 고통을 직접 당할 자신보다 곁에서 지켜보는 벗의 고통을 염려하는 마음, 그것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브로맨스가 아니면 무엇일까요.


베드로의 입장에 서 보아도 답은 비슷합니다. 간혹 베드로는 안 나서도 될 때 나서고, 엉뚱한 말을 꺼내서 혼나는 다소 멍청한(?) 캐릭터로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같이 유랑을 다니던 벗이 갑자기 눈부시게 빛나며, 눈앞에 나타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과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어느 누가 제정신을 유지하겠어요. 만약 제가 이런 상황이 된다면 놀라 까무러쳤든지, 눈에 귀신이 씌었나 의심했을 거예요. 그러니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9,6)라 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분들을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경천동지할 상황에서도 예수님(과 그 친구들로 보이는 엘리야, 모세)을 위해 무엇인가 해드리고 싶어 하는 베드로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예수님이 눈부시게 빛나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 영광을 유지시켜 드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부활 미리 보기를 스포 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삼인방은 예수님의 분부대로 오늘 본 장면에 대해 입을 다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다 알아듣고 이해해서 예수님이 시킨 대로 한 것이 아니라, 무슨 뜻이 있으려니 하고 서로 물으면서 말씀을 따릅니다. 시시콜콜 따져 묻지 않고 '무슨 속뜻이 있어 그러려니' 하고 믿으며 벗의 뜻을 존중해 줄 때 우정은 깊어집니다. 저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브로맨스도 이렇게 깊어져 갔다고 짐작해 봅니다.


유안진 작가의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라는 수필이 떠오릅니다. 브로맨스라는 말이 다소 속되고 불경스러워 보인다면, '지란지교'라는 말은 어떤가요. 베드로처럼, 삼인방처럼, 함께 다니던 제자들처럼, 십자가 길을 같이 걷던 사람들처럼, 그분의 빈 무덤 앞에서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는 꿈을 꾸는 지란지교. 저는 예수님과 그런 벗이 되고 싶네요.

...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 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Der Verklärung Jesu
Nach sechs Tagen nahm Jesus Petrus, Jakobus und Johannes mit sich und führte sie auf einen hohen Berg, nur sie allein. Da wurde er vor ihnen verklärt, und seine Kleider wurden hell und leuchtend weiß, wie sie kein Bleicher auf Erden so weiß machen kann. Und es erschien ihnen Elia mit Mose, und sie redeten mit Jesu. Da nahm Petrus das Wort und sagte zu Jesus: Rabbi, es ist gut, daß wir hier sind. Wir wollen drei Hütten bauen, für dich eine, für Mose eine und für Elia eine. Er wußte aber nicht, was er sagen sollte; denn sie waren ganz verstört. Und es kam eine Wolke, die überschattete sie. Und eine Stimme kam aus der Wolke: Das ist mein lieber Sohn; auf den sollt ihr hören! Und mit einem Mal, als sie um sich blickten, sahen sie niemand mehr bei sich als Jesus allein. Als sie aber vom Berge herabgingen, gebot ihnen Jesus, niemand etwas davom zu sagen, was sie gesehen hatten, bis der Menschensohn von den Toten auferstanden wäre. Und sie behielten das Wort un befragten sich untereinander: Was mag das heißen: von den Toten auferste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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