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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에게 삥을 뜯겼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키오스크 앞에서 쫄지 않으니!

by 글방구리

글쓰기 선생 시즌 3가 시작됐다.


시즌 2를 마무리할 때 글방 교실이자 내 작업실로 쓰던 공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비록 4층 꼭대기 원룸이어도 나 혼자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던 곳이었기에 재계약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안에 머무는 시간보다 비워 놓는 시간이 많은 게 마음에 걸렸더랬다. 열심히 살아도 방 한 칸 얻기 어려운 청년들도 있고, 가진 재산 다 날리고 길에 나앉은 노숙자들을 생각하면, 두 개의 집을 갖고 사는 건 왠지 죄짓는 느낌이었달까.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고 해도 필요 이상의 것을 누리지는 말아야 한다.


작업실이 없어 수업을 할 때마다 교재를 바리바리 싸들고 다녀야 하는 수고는 수고랄 것도 없다. 그러나 오늘처럼 갑자기 수업 장소를 쓸 수 없는 사정이 생긴다거나, 방과 후 아이들에게 조금 색다른 경험을 해주지 못하는 것은 아쉬웠다. 작년에는 비록 코딱지만 해도 글방에 오는 것이 3학년만의 특권으로 여겨졌다. 1, 2학년 동생들은 '도대체 형님들은 글방에 가면 뭘 하는 거지?' 하며 3학년의 글방행을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에는 호기심과 부러움이 차 있었다.


그래서 급할 때 사용하자고 생각해 둔 공간이 '스터디 카페'였다.


딸내미 아들내미가 소위 '스카'를 끊는다고 하며 용돈을 타가기도 했지만, 난 그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다. 가 본 적도 없었다. 초등학생들이 조금 떠들어도 양해가 될 만한 스카가 있는지 지인들에게 물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더라. 아이들과 수업하기에 적당한 스터디룸이 있는 스카를 추천받았다. 영어 강사를 하다가 스카 운영만 하신다는 사장님은 소란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특성도 십분 이해하셨다. 오예!


오늘이 바로 그날, 스터디룸을 처음 사용하게 된 날이다. 내친김에 나도 스마트폰 앱으로 자유석 이용권을 끊었다. 오전이라 건물은 매우 조용했다. 밖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인상 좋은 사장님도 출근 전이다. 키오스크 앞에 섰다.

'어떻게 여는 거지?'

딸내미한테 대충 들었으면서도 키오스크 앞에 서니 괜히 쫄린다. QR코드로 스마트키를 발급받았는데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면서 교통카드를 어디에 대는지 몰라 아무데나 대본 것처럼 여기저기 마구 대본다. 삐이~ 하는 소리도 나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대여섯 번 반복하다가, 일단 작전상 후퇴.


오전에는 한적한 도서관 휴게실에서 보내고, 수업 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서 재도전한다. 상황은 몇 시간 전과 다르지 않으니, 할 수 없지. 모르면 물어볼 수밖에. 사장님에게 전화를 하니, 전화를 끊지 말고 키오스크 앞에 가서 서란다.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누르니 문이 열린다(나는 가장 중요한 '결재' 버튼을 누르지 않았더라! 이미 앱으로 결재를 했으니 또 누르면 안 되는 걸로 생각했다.ㅠㅠ). 모르는 걸 물어보는 거지만 왠지 보이스피싱 당하는 기분도 살짝 든다.


조용히 해라, 밖에서 다 들린다, 요 정도 크기는 괜찮다, 부스럭 소리도 내지 마라, 등등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견제를 했다. 이러구러 수업을 마치고 간식을 먹기로 한다. 아이들은 서서 먹는 포차 같은 간이 분식집에서 사달라고 한다. 분식집 앞에는 아이들이 타고 온 자전거가 겹겹이 묶여 있다. 영어 학원, 미술 학원, 수학 학원, 피아노 학원 등 여러 학원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 오가는 아이들도 많다.


"얼마까지 돼요?"

먹고 싶은 메뉴를 먼저 고르기보다 일인당 먹을 수 있는 한도를 묻는다.

'어머나, 이 녀석들이 내 주머니 사정을 염려해 줄 만큼 컸다니!'

살짝 감동. 한 녀석은 옆에 있는 와플가게에서 와플을 먹고 싶단다. 백지수표를 주듯이 카드를 주면서 직접 사 오라고 했다. 나중에 보니 그 녀석은 와플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저렴한) 메뉴로 사 왔더라. 착하기도 하지.


아이들이 사 달라는 메뉴를 듣는데 당최 못 알아듣겠다.

"뭐? 콜팝? 콜떡? 컵볶이? 그거 다 다른 거야?"

"다르죠. 저는 콜팝, 쟤는 콜떡, 얘는 컵볶이요."

주인은 아이들의 복잡한 주문을 척척 받는다. 차라리 내가 빠지는 게 주문에 혼선이 없겠다. 그러는 중에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또 다른 학원으로 가는 아이들이 와서 인사를 한다. 유아 때부터 봤던 아이들이다. 오랜만에 보니 얼굴도 달라졌고, 키가 나보다 더 큰 녀석도 있다.


"어! 종이배! 안녕하세요? 그런데 여기에서 뭐 하세요?"

"으으응, 형님들이랑 글쓰기 하고 간식 먹으려고."

"와아, 저도 사주시면 안 돼요?"

"되지. 뭐 먹고 싶은데?"

"저는~~~"

그러다 보니 또 다른 아이도 있다.

"저도 먹을래요."

"그래, 너도 먹고 싶은 거 주문해."

"진짜요? 와, 신난다!"


아이들은 간식을 먹는 중에도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 이야기도 하고, 학교 이야기도 하고, 학원 이야기도 한다. 아는 사람이 오면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하고, 꼬리 치는 강아지를 쓰다듬어 주며 귀여워하기도 한다. 수영장을 같이 다녔다는 중학생 누나들한테 아이스크림을 한입 얻어먹는 아이도 있고, 잠시를 못 참고 휴대폰 속에 빠져들어가는 아이도 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바라본다.


각각 다른 걸 하고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환하다. 골목을 채우던 봄 햇살만큼이나 따뜻하고 쾌활한 웃음, 작은 간식 하나에도 횡재한 것처럼 즐거워하는 모습들! 아이들의 행복이 내게도 물드는 느낌이다. 비록 초딩들에게 삥을 뜯긴 날이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 삥이라면 자주 뜯겨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배워야 할 것이 천지삐까리인 세상에서 스카 키오스크와 콜팝까지 알게 된 것은 덤이고!


-- 대문 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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