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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3, 그 진전의 과정을 위하여

방과후 글쓰기 수업을 마무리하며

by 글방구리

1년 동안 진행된 방과후 글쓰기 시간을 마무리했다. 작년에는 2학기부터 시작한 데다가 기존에 이루어지던 3, 4학년 글쓰기 교실에 아이들이 합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올해는 3학년들만 따로 모여 학년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시간이라 성격은 완전히 달랐다. 글쓰기 시즌2를 마치며, 일 년의 소감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일곱 살 때 같이 지낸 아이들이지만 1~2학년을 보내는 동안 자주 만나지 못해 아이들과 다시 만나는 데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있었다. 아이들의 평가서를 읽어 보니, 이런 감정은 나만 느꼈던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들도 긴장감과 기대가 공존했다고 한다. 내가 했던 걱정은 아이들 개인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글쓰기라는 시간이 아이들에게(실은 대다수의 어른에게도) 그리 환영받을 만한 시간, 즐거움을 주리라고 기대되는 시간이 아니었던 데 있었다. 학교에 다녀온 뒤 “이제 해방이다!” 하고 느낄 시간에 아이들을 다시 책상 앞에 앉히고 연필을 쥐어주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데 따른 부담감이랄까. 그런 아이들에게 반짝 기쁨을 주었던 한 알의 사탕, 한 봉지의 크래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커리큘럼을 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른 그룹과는 달리 계수 아이들은 같은 경험을 공유할 때가 많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글로 표현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한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그림에서 글로 옮겨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이라, 논리적인 주장을 펴는 글보다는 생활글을 더 많이 쓰게 했다. 방법적으로는 말놀이(끝말잇기, 낱말퀴즈, 십자말풀이, 전래말놀이, 노래 등), 그림카드(카드, 감정 그림 등), 관찰(사물, 날씨, 행동관찰 등) 등을 사용했고, 각자 쓰기, 합동 쓰기 등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을 요소들을 도입했다. 교육소위의 제안으로 시작했던 그림책 서평 쓰기도 나와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


○…장소 평가. 처음에는 방과후 터전에서 수업을 하다가 아이들의 요구에 따라 계속 글방구리에 와서 했다. 나는 자료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수월함이 있어 좋았고, 아이들은 동생들의 방해가 없고 간식을 준다는 이유로 글방구리 수업을 선호했다. 게다가 몇 권 안 되지만, 만화책도 볼 수 있다! 소음 문제도 아이들이 비교적 잘 조절해 주어서 별다른 민원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단지 한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그놈의 계단.


○…특별한 일정이 있거나 글쓰기 시간이 빠듯하지 않을 때, 아이들이 유독 힘들어하지 않을 때는 늘 ‘원고지 필사’를 했다. 필사 내용은 글쓰기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을 발췌하여 정리한 것들이었는데, 아이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가끔은 그 내용을 토대로 잠깐 설명해 주는 수업도 겸했다. 200자 원고지 한 장 분량인데도 아이들은 손이 아프다고도 했고, 보고 쓰는 것을 어려워하기도 했다.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하지만 베껴 쓰는 것만으로도 그 내용이 머릿속에 각인된다고 하니, 콩나물시루처럼 물은 다 빠져나갔어도 아이들의 성장에 어떤 부분에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글’과 ‘글씨’는 다르지만 통하는 데가 있다. 글씨가 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할 때는 타이핑이 필요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아직은 생각의 흐름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찬찬히 글씨로 써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글씨를 보면 마음이 들여다보였다. 쓰기 싫어 휘갈기는 마음,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는 마음 등. 반듯한 글씨가 글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글을 쓰는 태도에는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 또 글씨를 바르게 쓰다 보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 부차적인 효과도 따라온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는 어휘력, 문장력이 눈에 띄게 좋다.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긴 글 쓰는 데도 거침이 없다. 반면, 자신이 옳게 쓰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아이도 있다.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다”라고 아무리 강조를 해도 ‘맞게 쓰는 건지’ 불안해한다. 아이들이 쓴 글을 고쳐주지 않은 것도 ‘맞고 틀림’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 정답이 없다는 말을 곡해하여 제멋대로 대충 적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도 있었다. 또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보다 정해진 답으로 마무리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예를 들면, 모든 경험은 ‘재미있었다, 재미없었다’로 끝난다거나, ‘다시 그러지 말아야겠다’와 같은 영혼 없는 다짐들이다.


○…그래도 글쓰기 선생이라고 가끔 부모님들의 질문을 듣게 된다. “우리 아이는 책을 안 읽어요. 책을 전집으로 사다 놔도 안 봐요.” “우리 아이는 글쓰기를 안 좋아해요.”라고. 나라고 무슨 대단한 해법이 있겠나. 속이 후련한 솔루션을 드릴 수는 없다. 그러나 뒤돌아서면, 퍼뜩 궁금해지는 그 가정의 분위기. 특히 저녁 시간이나 잠자러 가기 전의 거실 풍경. ‘부모님은 아이와 함께 정해진 시간 동안 책을 읽으실까? 아이 옆에서 같이 일기를 쓰실까? 아이가 부모님에게서 책 읽는 기쁨, 글 쓰는 향기를 맡고 있을까?’ 하는 그러저러한 궁금증들.


○…3월이 되면 글쓰기 수업 ‘시즌3’가 시작된다. 글방구리 공간이 없어서 보따리 장사를 해야 하겠지만, 뭐 없어도 괜찮다. 가진 것이 없을 때 더 창의적인 발상이 떠오르지 않던가. 글은 공간보다는 시간과 관련이 깊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렇게 쓰셨다. “시간을 우선시한다는 것은 공간들을 장악하기보다는 진전의 과정들을 시작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시간은 공간들을 지배하고, 밝혀 주며, 쉬지 않고 확장하여 결코 퇴행할 수 없는 사슬을 이루도록 엮어 줍니다.”[회칙, 복음의 기쁨, 제223항 중에서]


○…그러니 시즌3, 그 ‘진전의 과정들’을 힘차게 준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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