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2일 화요일
'나 이제부터 밥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을 거야.'
어린이집 보육교사를 하다가 정년을 2년 앞두고 퇴직하면서 했던 결심치고는 눈물나게 소박하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식탁에서 가장 먼저 밥그릇을 비우고 숟가락을 내려놓는 걸 보면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알겠다.
그리고, 또다른 결심.
'한 달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고, 그 다음엔 글쓰는 노동자가 되겠어.'
마지막 출근을 하고 난 뒤, 이제 꼭 한 달이 지났다.
"이제 그만 하려고요."라는 말을 꺼내는 건 쉽지 않았다. 사방치기를 할 때면 무릎이 시큰거리고, 딱지치기를 신나게 하고 나면 어깨에 담이 드는 체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방치기를 할 때는 말로 훈수만 두고, 딱지치기는 적절히 힘 조절을 하거나 까짓, 다 잃으면 다시 접으면 되니까. 가장 두려운 건, '이 일'을 그만두고 나면 이제 더는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초록지붕 집의 빨간 머리 앤처럼, 가는 곳마다 이름을 붙여 놀던 곳이었다. 아이들이 우다다다 뛰어다니기를 좋아한다고 '우다다 공원', 나이 든 길고양이들이 늘어지게 잠을 자다가 봄볕이 나면 남몰래 해산을 하고 가는 볕 좋은 데크는 '햇볕마당', 낮잠을 자지 않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림책을 읽었던 '다락방'. 그곳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내가 살았던 그 모든 기억들이 더는 현재진행형이 아닌, 추억의 앨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퇴직의 의미였다.
"정년이 아직 남았잖아요. 정년 채우셔야죠."
예순살까지 담임교사를 할 수 있고, 예순다섯살까지 보조교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 일본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보육교사들도 많다는데, 좋아, 정년 채우지 뭐.'
그런 생각으로 살았던 적도 있다. 그런데 막상 정년의 뜻은 그게 아니더라. '그 나이 될 때까지 정말 고생했어요, 참 잘했어요' 이럴 줄 알았던 정년은 '더 일하고 싶지? 그럼 늦게 태어났어야지. 일하고 싶어도 그 나이로는 더 할 수 없는 거야.'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선택했다. 더 하고 싶어도 나이 때문에 더 못해, 라고 조롱하듯 다가오는 정년을 맞기보다는 '나 아직 더할 수 있지만, 순전히 내 뜻으로 그만두는 거야.'라는 쪽으로.
"한 이십 년 공동육아를 했으니, 이젠 공동선(共同善)을 생각해 보려고요."
이 일을 그만두면 뭘 할 거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뭘 하면서 살겠다는 건지 모르겠으나 좀 멋드러진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아예 발길을 끊고 살았던 성당에도 열심히 나가고, 봉사활동도 하고, 성경 필사도 하고 그러는 것일까. 시간도 없고 기운도 없어,라는 핑계로 가공식품을 렌지에 '땡'해서 올렸다면, 이제는 들에 나가 뜯어온 나물을 조물조물 무쳐 올린다는 뜻일까. 사다놓고 읽지 않은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어나간다는 뜻일까. 오분 거리에 있는 뒷산을 날마다 산책하면서 두 발로 흙을 디디고 산다는 것일까. 버려지는 물건들을 활용해서 새로운 쓸모를 만들어내는 일에 몰두하는 것일까. 잘은 모르지만, 그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지 몸으로 실천해 오지 못했던 것을 하겠다는 뜻은 분명했는데, 그것들의 공통점은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는 거였다.
성당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눈을 부릅뜨고 먹을 수 있는 나물을 찾으면서, 묵혀 놓았던 책들의 먼지를 털어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산에 올라 새소리를 듣고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스치는 바람결을 느끼면서, 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그것을 날마다 적어놓는 것, 어쩌면 그것은 곧 육십대를 여는 나의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 있고 가열차게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시작하는 '하루 한 장, 하루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