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음말 / 작가님들에게 감사를!
전 어릴 때 달리기를 잘 못했어요, 기억에 남아 있는 가장 늦은 기록은 100미터 25초. 달리기를 잘 못한다는 건 또래와 하는 대부분의 놀이에서 빠져야 한다는 뜻이었어요. 운동장에서 아이들끼리 자유롭게 하던 다방구 같은 놀이에는 아예 낄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스탠드에 앉아서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했지요.
놀이야 눈치껏 빠지면 된다고 치더라도, 운동회 때마다 반 대항으로 하는 계주를 할 때면 얼마나 괴로웠는지 몰라요. 아무도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끼는 팀은 필경 저 때문에 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죠. 한 번 형성된 성격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니어서, 지금도 민폐를 끼치는 일은 무척 싫어합니다. 저도 그런 행동을 하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들이 그렇게 눈치 없이 구는 것도 못 견뎌하지요. 그러니, 검증되지 않은, 자신도 없는 제 글솜씨로 브런치의 쟁쟁한 작가들과 함께 릴레이에 참여한다는 게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했겠어요.
[글루미 릴레이]가 태어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오랜문학상'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은 퇴직한 후 뒷방늙은이로 들어앉은 듯한 우울감이 제 삶에 드리워져 있던 무렵에 접했더랬어요. 오랫동안 나름 마음을 나눈 관계였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 끈 떨어진 연처럼 처량한 신세가 된 것 같던 때 제가 할 수 있는 건 브런치에 끄적거리는 것밖에 없었죠.
그럴 때 예정옥 작가님이 주신 실물 없는 '창조의 오렌지컵'은 그 어떤 트로피보다 값졌고, 성우 뺨치는 이원길 작가님의 낭송은 최고의 부상이었습니다. 그러고 몇 개월 후, 같은 기쁨을 만끽했던 작가님들이 연이어 달리는 계주에 초대받게 됩니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같은 팀에 민폐를 끼치는 거나 아닐까, 달리면 뭐 해 어차피 꼴찌일 텐데'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꾹 누르고 못 이기는 척 떨리는 마음으로 바통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랬더니 노란 표지의 화사한 책 한 권이 태어났네요. 그 안에 제 이름과 얼굴을 담고서요.
한 팀이었던 작가님들의 글을 하나하나 정성껏 읽어보자고 결심하며 썼던 이 연재북은 저를 한 팀에 끼워준 작가님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오랜문학상 수상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잣대 하나가 모두를 공평한 출발선상에 세워준 덕분에 서로 잘 알지 못하면서도 믿고 시작하게 된 이 독특한 릴레이. 어느 누구도 민폐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모은 글로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증명해낸 멋진 경험!
한 주간에 하나씩 부지런히 썼다면 네댓 달 정도면 마무리되었을 연재북이 제 게으름 때문에 얼마 전에야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2025년이 다 가기 전에 맺음글을 쓰고 싶어 다 아는 이야기를 반복해 썼습니다. '글방구리의 2025년 십 대 뉴스'를 꼽는다면, 단연코 윗자리를 차지하게 될 [글루미 릴레이]라서요,
초판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절판했으니 우리 릴레이에는 저처럼 100미터를 25초에 뛰는 작가님들이 모였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번개처럼 달리는 저명 작가님들은 우리 릴레이가 달리기가 맞긴 하냐고 흉볼 수도 있겠으나, 전 엉금엉금 기어가며 이뤄낸 이 릴레이를 제 생애에서 단 한 번밖에 없었던 멋진 계주였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우리는 우승한 거예요,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