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꾹 / 그녀는 지금 어디 있을까?
엄마에게는 생일이 없었습니다. 엄마가 몇 살인지도 몰랐습니다. 주민등록에 올려져 있는 생일은 가짜라고 했고, 어린 저희들이 찾아내기 어려운 음력으로 생일을 쇤다고도 했습니다. 제 기억이 남아 있는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는 아버지와 생일상을 같이 받으셨습니다. 우리들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늘 그렇게 두 분 생일을 같은 날 챙겨드렸습니다. 엄마가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하나 보다,라고만 생각했어요.
베일에 싸인 엄마의 비밀은 그것만이 아니었어요. 엄마의 최종 학력이 서울시내 명문 여대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어요. 돌이켜 보면 엄마 입으로 직접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는 것 같으니, 왜 그런 오해가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엄마는 당신 결혼 스토리를 자녀들이 알지 않기를 바라서 나이를 숨기고 학력을 얼버무렸던 것 같습니다. 스물을 막 넘긴 꽃다운 처녀가 학교도 관두고 아이가 둘 있는 남자에게 시집을 간 것이나, 서로 우애 좋게 자라는 아이들에게 굳이 너희가 이복형제니라, 하고 밝히고 싶지 않았던 거죠. 엄마에게는 평범하지 않았던 결혼이 자녀들은 끝내 몰랐으면 좋을 흑역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글루미 릴레이]가 나오기 전에 발자꾹 작가님을 '용기여사'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작가님이 연재하시는 브런치북 '용기 내 볼까요?'의 애독자였거든요. 일회용품을 당연하게 여기는 현장에서 챙겨 온 용기(容器)를 턱 내밀 줄 아는 용기(勇氣) 있는 분. 그래서 아이들을 재우고 클럽으로 뛰었다는 작가님의 일탈에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작가님은 아이들에게 그간 숨겨온 비밀을 털어놓으셨지만, 비밀이나 흑역사라고 기록되기에는 너무 귀여운 일탈로 여겨졌어요(아니, 찐한 블루스 곡도 부킹당할 뻔한 외간남자가 아닌 동행하신 남편과 추셨다니, 은근히 한방을 기대한 독자에게 살짝 아쉬운 결말 아닙니까?^^).
어쨌든 작가님은 용기여사답게 아이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엄마의 두 얼굴을 내보이셨네요. 저는 아직 그럴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끝내 숨기고 싶은 저만의 흑역사는 그냥 무덤까지 안고 갈래요. 엄마가 인격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만큼 아이들이 크긴 했지만, 작가님 말씀마따나 "아이들에게 엄마는 그냥 늘 엄마였으니까(229쪽)" 그냥 끝까지 지금의 엄마 모습으로만 기억해 주면 좋겠어요. 가뜩이나 부족한 엄마인데 더는 모양 빠지고 싶지 않아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