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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술은 새 다이어리에

포도송이(선율) / 방바닥 블루스

by 글방구리

포도송이 작가님은 평소에 다이어리를 사용하시나요? 아니면 스마트폰에 내장된 일정관리 앱을 쓰시나요? 제가 60대치고는 꽤 스마트한 디지털 인간으로 진화되었다고 자부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아날로그 용품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다이어리입니다. 게다가 이 다이어리를 매우 일찍 구입하는 편이에요. 해마다 11월이 되면 이미 손안에 새 다이어리가 들어와 있지요.


올해도 새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11월은 다이어리와 함께 내년을 어떻게 지낼지 계획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입니다. 몇 학년 아이들과 어떻게 만나게 될까, 커리큘럼은 어떻게 짜야 할까 등 해야 할 일에 대한 아우트라인을 그려보는 것도, 체력과 건강을 어떻게 유지하고 무엇을 배울지 찾아보는 것도, 한 해 동안 주력해야 할 내적인 태도를 다짐하는 것도 모두 11월에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11월 말이나 12월 초 대림절부터 새로운 전례력이 시작되지만, 저는 새로운 시작에 앞서 죽음을 묵상하는 위령성월(11월)부터 새해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제게 허락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계획을 빵빵하게 세운다고 해도 말짱 도루묵일 터! 그러니 하느님이 제게 주신 시간을 다 거두어가시는 죽음을 묵상하며 삶을 계획하는 것이 제게는 여러 모로 유익합니다.


하지만 이맘때 아무리 가슴 설레며 한 해를 준비하고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다이어리가 너덜너덜해질 때면 늘 아쉬움만 남더이다. 의지가 약해 중간에 그만둔 것들, 고치지 못한 악습,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갖가지 결심,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도 허망하게 느껴지고 이루지 못한 꿈같은 것들만 눈에 보입니다. 제가 받은 시간을 옹골차게 챙기지 못해 마치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흘러내리듯 놓쳐 버렸다는 후회만 남습니다.

제 꿈을 일부러 꺾은 이는 아무도 없었고,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던 길을 가지 않은 건 저 자신이었는데도, 괜히 누군가를 혹은 상황이나 환경을 탓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방바닥 블루스>에 왠지 마음이 아렸나 봅니다.


"긴 시간을 지나온 지금에 와서 "엄마처럼 살기 싫어요" 한다면 사춘기 딸보다 못한 투정일지 모른다. 설사 엄마의 삶을 거부한다 해도 그것이 나은 삶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꿈을 이루지 못한 엄마의 삶이 불행했다고 볼 수 없듯이 내가 꿈을 이룬다 해도 그것이 행복한 삶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243쪽)"


"이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내가 무엇을 쓸지, 나도 모르겠다.

쓴다고 해서 잘 쓸지도 모르겠다.

진실은 나는 지금 겨우 방바닥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244쪽)"


작가님, 제게 꿈 따윈 애시당초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꿈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는 하느님이 제게 주신 재능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별로 길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나이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글쓰기 교사라는 부캐를 갖고 있지만 제 재능이 내로라 할 만큼 뛰어나다고 여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형편없이 뒤떨어진다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적게 받았다고 투덜대지 않고, 받은 만큼 나누면서 사는 게 지혜라고 했으니까요. 세상에 이름을 드날리기에는 모자라고, 다 내려놓고 포기하기에는 아쉬운 어중간한 재능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시답잖은 삶이기는 합니다만, 저도 방바닥은 그만 긁고 작가님처럼 벌떡 일어나고 싶어지네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아서 입에서 뱉어 버리고 싶게 하는(요한묵시록 3,16 참조) 미적지근한 태도는 이제 그만 벗어 버리고 싶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삶은 새 다이어리에 담아야 하는 때가 왔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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