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Lee / 완벽한 가면 뒤에
오늘도 호스피스 이야기로 말문을 엽니다.
제가 망설이다 봉사를 하고 있다고 쓴 이후, 몇몇 지인이 호스피스 병동 자원봉사에 대해 물어 왔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거기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힘들지 않은지.
어떻게 시작했느냐는 질문에는 제가 했던 모든 일이 그렇듯, 마음속에 '언젠가 하고 싶다'는 바람을 놓지 않았더니 인연의 끈이 닿았다고 답합니다. 뭘 하느냐는 질문에는, '봉사'라는 말을 사용하기 민망할 만큼 하는 일이 별로 없다고 답합니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딱 그만큼의 체력이 필요해서 괜찮다고 답합니다. 다만 여기에는 사족처럼 한마디를 덧붙이지요. 힘이 들지 않고 도리어 일주일 지낼 힘을 얻어 돌아온다고요.
자원봉사실에 도착하면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우리 병원에서는 봉사자들이 흰 티셔츠와 분홍 가운을 입거든요. 그런 뒤 차를 준비하기 위해 물을 끓이지요.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옥수수차 냄새가 방 안을 채웁니다. 그러다 병실에 갈 시간이 되면 마스크를 꺼내 씁니다. 환자와 함께 상주하는 보호자나 간병인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지만, 외부에서 들어가는 사람들은 환자들을 만날 때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팬데믹 시기를 겪은 우리 모두는 마스크를 쓰는 데 제법 익숙해졌지요. 입모양을 보면서 말을 배워야 할 두세 살짜리 아이들까지도요. 마스크는 마치 살아남기 위해 새로 이식한 피부 같았습니다. 감염병이 진정이 되어 벗어도 되는 날이 되었어도, 억지웃음을 지어야 할 때나 별로 웃고 싶지 않은 상대와 대화할 때 마스크는 요긴하고 고마운 제 얼굴의 일부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전 환자들을 만날 때만큼은 마스크를 벗고 싶습니다. 그분들이 맨 얼굴로 저를 보듯, 저도 표정을 가리지 않은 맨 얼굴로 그분들을 보고 싶거든요.
차 한 잔씩 드리고 나면 그다음엔 발 마사지를 준비합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음 가까이에 이르도록 평생 수고한 발을 바라보거나 만져드리는 것은 손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입으로 바치는 기도도 합니다만, 이때는 말보다 더 오래 촉감으로 남는 손 기도로 하느님의 은총을 청합니다. 가끔은 부끄럽다고 내밀기 꺼려하는 분들도 있고, 살짝만 건드려도 아파하시는 분들이 있기에 마사지를 흔쾌히 수락해 주시는 환우분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이때 우리는 또 하나의 피부를 장착합니다. 얇은 라텍스 장갑이지요.
문득 어린이집 교사 시절이 생각납니다. 제가 맡은 아이들이 가끔 배변실수를 할 때가 있었어요. 어느 반이나 그런 아이들은 있는 법이지요. 제 아이 똥을 닦아줄 때와 마찬가지로, 저는 배변 뒤처리를 하면서 장갑을 끼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똥을 쌌다는 것만으로 수치심을 느끼고 있을 텐데 엉덩이에 닿을 장갑의 불쾌감까지 더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나도 자주 똥오줌을 쌌다고, 평소보다 더 쾌활한 목소리로 얘기하며 엉덩이를 씻어 주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덧대지는 한 겹.
마스크나 장갑처럼 감염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그 두께 이상의 거리가 생깁니다. 그 거리는 라텍스 장갑처럼 얇을 수도 있지만 삶과 죽음처럼 건너기 어려운 먼 거리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흔히 말하듯 '살을 섞고 사는' 부부라고 할지라도 서로 먹고 먹히지 않는 이상 살을 섞을 수는 없습니다. 부부든 부모자녀간이든, 자기 아닌 타인과 완벽하게 하나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온전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고 스며들 수 있는 것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사람은 어느 누구와도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독후감 쓰기를 싫어했습니다. 선생님은 독후감 쓰는 법을 가르쳐주지도 않았으면서 방학 때면 숙제로 내주셨거든요. 책도 읽기 싫은 아이, 글도 쓰기 싫은 아이에게 책과 글을 더한 숙제를 내주시다니! 그 영향으로 여전히 저는 독후감을 잘 쓰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글루미 릴레이]에 벨라Lee 작가님이 독후감 형식으로 쓰신 글 자체가 제게는 놀랍고 신선했습니다. '우울하고 불안한 시대에 주는 위로와 희망'이라는 같은 콘셉트 아래 모은 글들이 시, 에세이, 동화 등 여러 장르를 망라하리라 기대했지만, 책 리뷰까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비하인드 도어]라는 소설을 소재로 글을 써주신 벨라Lee 작가님 덕분에 독후감 쓰는 방법을 이제야 제대로 배운 것 같기도 합니다.
"<비하인드 도어>는 그 어둠의 간극을 잔혹한 방식으로 보여주면서, 현실에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 눈을 감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이 소설에서 느껴지는 우울함은 단지 한 여인의 비극적 결혼생활을 넘어, 현실에도 비슷한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는 씁쓸함에서 기인한다. 완벽해 보이는 미소 뒤에 놓인 폭력, 자신을 구원할 방법이 없을 것 같은 절망.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는 인간의 어두운 자화상."(220쪽)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아니 가면을 써야 하는 때가 있겠지요.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만이 인간관계의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스크를 써서 코와 입을 가리면 눈빛을 더 따뜻하게 하려고 애쓰고, 장갑을 낄 수밖에 없다면 더 부드럽고 예민하게 만지려고 공을 들일 겁니다. 그런 작은 노력들이 인간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우울함의 짐을 서로 나눠서 질 수 있게 해 줄 거라고 믿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