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조음 / L에게
단추를 채울 수 없는 바지, 뒷 지퍼가 올라가지 않는 원피스, 억지로 끼워 입기는 했지만 벗으며 후드득 솔기가 터져버린 경험. 그런 경험 없는 60대 여성 있으면 손!
지금 손 든 분이 있다면 아마도 큰 병을 앓으셨던 분이거나 그도 아니라면, 자기 관리를 지독하게 철저히 하는 인간미 없는 분이라는 데 한 표!
나이가 들고 갱년기도 지나가고 더는 중년이라고 고집하지 못할 나이에 진입하고 나니, 뱃살은 더욱 두둑해지고 그간 풍성한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두피는 햇빛 보겠다고 허옇게 본색을 드러냅니다. 왜 꼬불꼬불한 파마머리가 할머니들의 국룰 헤어스타일이 되었는지 충분히 공감하겠다는 말씀. 그래서 [글루미 릴레이]의 열세 번째 이야기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 이야기.
해조음 작가님은 S나 M이 아닌 L을 떠나보내며, 해조음이 쓰셨는지 글방구리가 썼는지 모르게 백만 퍼센트 공감되는 글을 쓰셨더이다. "그림의 떡이 된 지 오래"며 "이미 떠나버린 옛사랑의 그림자들"(210쪽)인 S, M, 그리고 L. 그러나 작가님! L이 떠난 게 아니라 X를 데리고 들어온 게 아니던가요?
어느 문호가 말했다지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고. 그러니 작가님 말씀마따나 이미 떠나버린 것들, 없는 것들, 잃어버린 것들은 더 이상 붙잡지도, 찾지도, 매달리지도 말기로 합시다. 이미 지나간 것에 미련을 두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을 테니, 그것이 무엇이든! 쿨하게 잘 가!!!
"L, 좀 전에 화내서 미안. 넌 그냥 가던 길 가. 잡지 않을게. 새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 아니, 이미 친해졌어. 낙낙하고 째이지도 않고 딱 좋아. 사람과 옷은 편한 게 젤이야. 아마도 널 볼일이 없을 것 같아. ... 그동안 고마웠다. 우리 다시 만날 날은 없겠지?
잘 가."(213쪽)